나는 이렇게 퇴사를 감당할 선을 정했다

계획 없이 퇴사한 직장인의 일기

by 예슬

만약 내가 두통을 앓지 않았더라면,

만약 내가 이직에 성공했더라면,

만약 내가 또 한 번 진급했더라면,


나는 퇴사를 하지 않았거나, 퇴사까지 몇 년의 시간이 더 걸렸을 것이다. 그동안 열심히 자기계발을 해왔지만, 그 궁극적인 목표가 오로지 '퇴사'였던 것은 아니기에, 돌아보면 나는 아마 자유로운 삶을 '꿈꿨다'기보다는 '궁금해했다'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엠제이 드마코의 『부의 추월차선』을 읽고 나서부터 회사원이라는 서행차선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해왔지만, 용기와 결심이 섰던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이직이든 퇴사든 변화가 간절했던 시기의 나는 꽤 감정적이고, 다소 극단적이어서, 이직에 실패한 나에게 남은 답안지는 퇴사뿐이었다. 퇴사한 사람들의 삶을 늘 부러워해왔으면서도, 막상 퇴사라는 선택지가 현실로 다가오니 당혹스러웠고 기대보다는 불안이 앞섰다. 사람들은 그럼에도 나의 결정을 용기 있다고, 대단하다고 말한다. 어쩌면 그들은 '열심히 이것저것 하더니 결국 퇴사해서 뭔가를 도전하려고 하는 사람'으로 나를 바라봤을지도 모른다. SNS에서 보던, 퇴사 후 성공한 인생을 살아가는 몇몇 사람들처럼 말이다.

'퇴사'라는 사건이 실제로 벌어지고 나니, 마치 자기 계발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한 번쯤 마주하는 함정에 빠진 듯한 기분이었다. 퇴사는 나에게 긴 회사 생활의 결말 같은 사건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이제 회사 밖에서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각본도, 정답도, 결말도 정해져 있지 않은 백지 같은 하루하루를 채워가야 했다. 실패하거나 혹은 크게 성공하는 재밌는 스토리를 기대하지만, 퇴사 후 지금까지는 딱히 대단한 에피소드 없이 조용하고 지지부진했다. 이런 나의 이야기가 재미없을까 봐, 그리고 지금 나의 상항과 고민을 공감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 한동안은 친구들을 만나지도 않았었다.


퇴사를 조금 더 늦게 했다면, 그때의 일상은 어쩌면 지금보다는 더 준비되고 멋있는 모습이었을까. 그래도 책임감 없고 충동적인 타입은 아니라, 퇴사를 하며 나를 지키기 위한 몇 가지 바운더리를 설정했었다.


첫 번째는, 대단한 사업 계획을 갖고 퇴사한 것이 아니기에, 퇴사 후 내가 하는 시도들을 '실험'이라 부르기로 한 것이다. 도전이라는 말은 너무 거창했고, 부담도 컸고, 또한 주변 사람들도 내가 잘 되길 바라겠지만 '실험'이라고 하면 실패할 수도 있고 그 과정도 흥미롭게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두 번째는 이 실험을 할 수 있는 기간을 정하는 일이었다. 퇴직금과 모아둔 돈으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기간을 생각해야만 했고, 그 기간을 6개월로 정했다. 사실 그 돈을 쓰기엔 마음이 너무 무겁고 아까웠다. 그래서 올해 주식 투자로 벌어두었던 돈을 쓰기로 했는데 딱 6개월 정도의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세 번 째는, 이 실험이 실패했을 때의 회복가능성이었다. 회사에서 하던 직무는 공급보다 수요가 많은 일이었고, 평소 헤드헌터의 오퍼를 종종 받아왔기에, 원하는 조건은 아니더라도 다시 회사로 돌아갈 수는 있을 거라 판단했다.


그렇게 나는 6개월간, 내가 궁금해왔던 '퇴사 후의 삶'을 직접 살아보며 여러 시도들을 해볼 수 있겠단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지금까지 5개월이 지났고, 그 사이 크고 작은 시도와 경험들이 있었다. 나는 여전히 헤매고 있고, 생각보다 빠르게 어떤 결론에 도달하지도 못했다. 아직은 결과보다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은 시기이지만, 분명한 건 '퇴사 후 삶'에 대해 품고 있던 막연한 궁금함과 동경이 어느 정도는 해소되었다는 점이다. 적어도 이 시간을 직접 살아보지 않은 채, 상상만 하다 흘려보내지는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지금의 시간은 나에게 충분한 의미를 갖는다.

제주 워케이션

돌이켜보면 퇴사라는 선택 역시 기록 속에서 내 목소리를 들으며 내가 원하는 방향을 발견한 결과였다.


이제는 퇴사 후의 삶을 기록하며 다시 방향을 알아가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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