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한 장부터 팔아보기로 한다

계획 없이 퇴사한 직장인의 일기

by 예슬

퇴사 후 몇 달 동안은 당장 돈을 벌기보다는 쉬면서 몸과 마음을 회복하고, 그동안 미뤄두었던 청소나 운동을 하며 하루를 보냈다. 이제 6개월 차에 접어드니, 그래도 경제활동은 해야 된다는 불편하지만 현실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무렵 김수영 작가님의 『멈추지 마, 꿈부터 다시 써봐』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도전에 관한 책이었지만, 내게는 여전히 인생을 더 재밌게 살고 싶다는 강한 동기부여로 다가왔다. 그러다 보니 나도 따라서 꿈목록을 적어보게 되었고 그중 하나가 '달력 만들기'였다. 특별한 목적이나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았고, 연말에 지인들에게 선물하면 꽤 특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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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디자이너도 아니고, 잘 만들어야 할 이유도 없었기에 부담 없이 작업했다. 그렇게 대충 만든 달력이 생각보다 마음에 들고, 꽤 괜찮아 보였다. 선물용으로 몇몇 친구들에게 보냈더니 다들 감동했다며 좋은 반응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달력을 한 번 판매해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재미로 시작한 일인데, 우연히 잘 될 수도 있겠단 희망이 생기면서도 동시에 왠지 모를 거북한 감정도 함께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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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업을 할 때도 늘 돈을 벌기 위해 무언가를 상업적으로 판매하는 일이 어려웠다. 사람들에게 가치 있는 경험과 제품을 제공하기 위해 그렇게 애썼으면서도, 정작 내 노력에 가격을 높게 매기는 일은 쉽게 하지 못했다. 커뮤니티를 운영하면서도 돈을 벌지 못했고, 운동복을 판매하면서도 큰 마진을 붙이지 못했다. 가격 때문에 내 진정성이 흐려질까 봐, 혹은 사람들에게 부담이 될까 봐 겁이 났다. 그때는 직장인이었기에 '부업으로 돈을 안 벌어도 된다'며 스스로를 합리화할 수 있었다.


어쩌면 나는 내 노력과 결과물이 얼마나 값어치가 있는지 확신하지 못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운동복 제작과정을 블로그에 기록했을 때, 수백 개의 댓글과 문의를 받았는데 나는 시간 들여 하나하나 성실히 답변했지만, 결국 지쳐 그 과정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누군가는 나처럼 무료로 답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컨설팅이나 전자책으로 돈을 벌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장사꾼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던 마음도 있었지만, 나는 장사를 할 줄 몰랐기에 돈을 벌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애초에 돈을 잘 벌 줄 모르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치만 지금의 나는 돈을 벌어야 한다. 그러려면 내가 가진 무언가를 잘 팔 수 있어야만 한다. 돈을 벌고 싶으면서도 '무엇'을 팔 지만 고민하고, 어떻게 하면 '잘'팔 수 있는지는 잘 알지 못했다. 판다는 행위 자체가 어색하고 좀 더 고상하게 돈을 버는 일을 하고 싶었지만, 그전에 나는 일단 달력 한 장이라도 팔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았다. 이 종이 한 장 조차 팔지 못한다면, 그보다 더 값어치 있는 것은 어떻게 팔 수 있겠는가.


아무도 사지 않을까 봐 겁이 나지만, 그래도 해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안 산다면 매력적이지 않거나, 판매 방식이 잘못된 것이니 고치면 된다. 그 과정에서 분명 나아지는 것도 있을 것이다. 달력의 가격을 정하면서도 자신이 없었다. 내가 좋아서 만든 달력이지만, 비싸게 하자니 그만한 값어치가 있는지 확신이 없었고, 너무 싸게 하자니 내 노력에 미안해졌다.


어쨌든 종이 한 장이라도 팔아보려 한다. 더 그럴듯한 일로 멋지게 돈을 벌고 싶지만, 아무리 가치 있는 일을 하더라도 그것의 값어치를 알릴 줄 모른다면 소용이 없다. 내가 앞으로 만들어나갈 가치를 세상에 더 잘 전달하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그 가치를 팔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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