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시절, 초코우유에 초코 맛 시리얼을 타 먹는 친구를 사이에 두고 같은 반 친구들이 한데 모여 괴식이냐 아니냐로 논쟁을 벌인 적 있다.
초콜릿에 애착 증세가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초코 맛을 즐기던 음식의 당사자는 전혀 괴식이라 볼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연갈색 우유 위에서 주변을 조금 더 짙은 갈색으로 물들이며 흐물흐물 떠다니는 시리얼 덩어리를 보고는 그 맛을 떠올릴 겨를도 없이 괴식 편에 손을 들었다.
괴식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억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일곱 살 동생과 거실에서 개최한 요리 대회다. 나는 요구르트에 조미김을 잘게 부숴 넣은 요리를 만들었고, 동생은⋯ 기억하기로는 김치를 신문지에 돌돌 말거나, 신문지를 김치에 돌돌 만 음식을 만들었다.
우리는 각자 출품한 음식(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을 맛보고 진지하게 의견을 나눴다. 서로의 음식에 대해 어떤 말을 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확실한 건 대회의 승자는 언제나 나였다는 사실이다. 심사를 하는 사람 역시 나였기 때문에. 참가자와 심사위원을 같은 사람이 맡는 게 얼마나 큰 비리인지 깨닫기에는 당시 동생은 너무 어렸다.
아무튼, 이런 괴식 경험 때문인지 다 큰 어른이 된 지금도 상차림을 구성하는데 아방가르드(?)한 편이다. 내가 집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대원칙은 선입선출(先入先出). 편의점에서 일하면 가장 먼저 배우는 바로 그 법칙이다. 맛의 조화는 잠시 미뤄놓고(맛을 포기한다기보다는 사실 아무거나 잘 먹는 편이다) 유통기한이 임박한 음식부터 찾아 먹는다.
그러다 보면 전날에 술안주로 먹다 남은 닭발을 밥반찬으로 먹을 때도 있고, 치킨무를 김치 대신 밥 위에 올려 먹을 때도 있다. 아내는 그런 내 상차림을 보며 기겁을 하지만, 어렸을 때 우리 집 거실에서 열린 요리 대회의 출품작에 비하면 양반이라는 사실을 아내는 모른다.
초코 맛을 좋아하던 중학교 친구가 오랜만에 떠오른 김에, 처음으로 그 친구를 따라 초코우유에 초코 맛 시리얼을 타 먹어 봤다. 예상보다 맛이 괜찮았다.
어쩌면 괴식이라는 건, 시도조차 해 보지 않고 남의 입맛을 섣불리 정의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로 순살 닭발을 밥 위에 올려서 한번 드셔보시기를⋯!
이미지 출처: SIC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