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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앵날 Jan 18. 2022

편의점에서 미성년자에게 술을 팔았다



어느 가을 저녁, 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미성년자에게 술과 담배를 팔았다. 학생들은 같은 날 편의점을 두 번 방문했다. 먼저 담배를 사러 왔을 때 나는 신분증을 검사했다는 이유로 그들이 술을 사러 다시 왔을 때 신분증을 대충 검사했다.


저녁에 술을 사간 학생들은 편의점 근처에서 술을 마시다가 순찰을 돌던 경찰의 눈에 띄고 말았다. 코로나 때문에 순찰이 잦아진 경찰의 상황과, 이 시국에도 신분증을 위조하여 술을 먹겠다는 청소년의 의지와, 나의 부주의가 모여서 완성된 환상의 콜라보였다. 학생들이 나에게 보여준 신분증은 당연하게도 위조신분증이었는데, 경찰에게는 신분증을 위조한 사실이 들킬 것 같았던지 학생들은 진술서에 처음부터 신분증이 없었다고 진술하면서 경찰에게 순순히 술을 구입한 곳을 알려주었다.


경찰은 학생들을 데리고 편의점으로 찾아와 나에게 신분증 검사를 했는지 물었는데, 나는 당연히 검사를 했다고 대답했고, 여기서 중대한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단골손님으로 북적이던 편의점에서 바쁘게 일하던 나는 학생들이 먼저 담배를  갔다는 사실은 그만 까맣게 잊고 술을 구입한 CCTV 영상만을 경찰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영상에는 학생들이 신분증을 제시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한마디로 멘붕이었다.


앞서 담배를 샀을 때 신분증을 검사했다는 이유로 나는 학생들이 술을 사러 다시 왔을 때 슬쩍 내미는 신분증을 대충 보고 넘겼는데, CCTV에는 담배광고대에 가려서 그 모습마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나는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진술서를 쓰게 되었다.


여기서 잠깐 술ㆍ담배 판매법에 대해 얘기해보자면, 식품위생법과 담배사업법이 2020년에 개정되어서 청소년이 위조신분증으로 술이나 담배를 구입할 시 판매점은 영업정지나 과징금 처분을 면할 수 있게 되었다. 위반행위의 원인이 청소년에게 있는 경우 위반행위의 책임을 판매자에게 묻지 않겠다는 것이다. 당연한 얘기 같은데,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청소년이 신분증을 위조한 책임을 판매자가 고스란히 부담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내가 카운터에서 구부정한 자세로 진술서를 쓰는 동안, 학생들이 세 시간 전에 담배를 사 갔다는 사실을 떠올리기만 했어도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두고두고 남았다.




이후 나는 경찰서의 경제과 조사실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겪어본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많지 않을수록 세상에 이롭다), 현장의 공기와 조사실의 공기는 많이 다르다. 현장이 경찰차의 사이렌 불빛과 여러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특유의 긴장감으로 인해 뜨거운 느낌이라면, 조사실은 키보드 치는 소리와 전화벨 소리, 조사관의 낮은 목소리 등 사무적인 분위기로 인해 차가운 느낌이다. 나는 조사실의 그런 차가운 기운을 물리치기라도 하듯이, 조사관에게 학생들이 담배를 구입할 때 신분증을 제시한 장면이 담긴 CCTV 영상을 제출하면서, 학생들이 신분증위조는 물론이고 진술서를 거짓으로 작성했다는 사실을 강하게 어필했다. 그러나 조사관은 주류판매법(식품위생법)과 담배판매법(담배사업법)이 다르기 때문에 학생들이 담배를 구입한 사건과 술을 구입한 사건은 별도로 처리해야 한다고 답했다.


억울하면 학생들에게 민사소송을 거는 방법도 있다는 대답이 덧붙여 돌아왔지만, 조사관의 이러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아직까지 해소되지 않은 의문이 남아있다. 학생들은 진술서에 ‘신분증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썼고 나는 ‘학생들이 신분증을 제시했다’고 썼기 때문에 경찰은 교차검증을 할 필요가 있었지만, 학생들은 몸수색 하나 받지 않고 훈방조치되었고 나는 스스로를 끈질기게 변호한 후에야 가까스로 집행유예 처분을 받을 수 있었다. 나는 학생에게 담배를 팔 때는 신분증을 검사했기 때문에 담배판매법에는 혐의가 없지만, 같은 날 같은 학생에게 술을 팔 때는 신분증을 검사하지 않아서 주류판매법을 위반한 사람이 될 뿐이었다. 그렇다면 학생들은 신분증을 위조한 혐의로 처벌을 받았는지 궁금해진다.




청소년보호법을 비판하고자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다. 당시 나는 스스로의 미흡한 대처로 인해 벌어진 사건이라는 사실에 가장 힘들었다. 그리고 현장의 경찰과 조사실의 조사관이 같은 사건을 왜 이렇게 다른 성격으로 다루는지에 대한 의문이 남았다. 이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그때 현장에서 순발력 있게 대처할 걸’ 하는 후회가 거듭 밀려왔다. 잠깐의 방심으로 일으킨 나비효과는 큰 대가로 돌아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진술서와 반성문을 썼고, 경찰서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어려운 일은 딱히 없었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리스크 관리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몸소 깨닫게 되었다. 크게 터진 일일수록 초기대응이 중요하다는 사실 또한 깨달았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내가 얻은 큰 교훈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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