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 열풍이 한창 불던 겨울날, 지인들이 치즈떡볶이ㆍ국물떡볶이ㆍ매운 떡볶이 등 다양한 떡볶이를 가리지 않고 찾는 것을 보면서, 떡볶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는 사람들이 왜 그리 떡볶이를 좋아하는지 한동안 의문을 가졌다. 내가 생각하는 식사의 범주에서 떡은 멀찍이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나는 한 끼 식사를 위해 돈을 주고 떡볶이를 사 먹은 적이 거의 없다.
사람들은 떡볶이를 왜 좋아할까. 떡볶이가 맛있어서 먹는 사람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떡볶이에 대한 기억 때문에 떡볶이를 찾는다.
수색대에서 힘들게 군 생활을 하신 나의 아버지는 휴가를 나올 때마다 가장 먹고 싶었던 음식이 단팥빵이었다고 한다. 군 복무를 하던 20대 초반의 아버지가 가장 염원했던 일은, 첫 휴가를 나와 단팥빵을 방에 쌓아두고 혼자서 원 없이 먹어보는 것이었다. 요즘도 아버지는 빵집에 들르면 단팥빵은 꼭 한두 개씩 사서 드신다.
떡볶이와 단팥빵은 우리나라 어디를 가든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음식이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이러한 음식에 대한 강렬한 기억이 하나쯤은 담겨있다. 아버지 또한 어렸을 때부터 먹었던 단팥빵에 대한 기억이 마음 한편에 겹겹이 쌓였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떡볶이를 좋아하지 않는 나는 단팥빵은 썩 좋아한다. 아버지가 사 온 단팥빵을 따뜻한 우유와 함께 입 안에서 녹여 먹었던 달콤한 기억이 있다. 반면 떡볶이에 대한 가족과의 기억은 나에게는 없는 것이다.
이처럼 음식의 맛에는 단순한 ‘맛’ 이상의 의미가 담겨있다. 우리는 지금 먹는 음식을 통해 과거의 기억을 떠올린다. 맛과 함께 그때의 소리와 냄새 등의 감각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낀다.
단팥빵 말고도 나는 잔치국수를 먹을 때면 이러한 공감각을 느낀다. 추워서 집에 꼼짝없이 박혀 있던 어느 겨울날, 퇴근한 아버지의 연락에 귀찮은 듯 불려 나가 찬바람을 겨우 막아주는 포장마차 안에서 먹었던 따뜻한 잔치국수를 기억한다. 하얗고 둥그런 플라스틱 그릇의 달그락거리는 소리, 옆에서 잔치국수와 함께 소주를 드시던 아버지의 옷 냄새를 기억한다.
십여 년 동안 타지에서 공부하다가 결혼을 하면서 고향으로 돌아온 지 일 년 남짓 되었다. 잔치국수에 대한 추억 때문인지, 동네마다 으레 있었던 포장마차가 요즘은 자취를 감춘 게 아쉽다.
누군가 동네에 있는 떡볶이를 먹고 싶다고 했을 때, "거기 맛있어?" 하고 친구가 물으면 그는 정말 맛있는 집이라고 답할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그는 맛있다는 표현에 맛과 더불어 어렸을 적 드나들던 떡볶이집의 추억을 담는다. 우리는 맛있다는 표현을 이토록 넓은 의미로 사용한다. 서로의 맛에 대한 오해는 이러한 방식으로 생겨난다. 내가 떡볶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이해 못 했던 것처럼 말이다.
음식에는 기억이 새겨진다. 나는 단팥빵과 잔치국수를 먹을 때면 아버지를 떠올린다. 어렸을 적 음식에 대한 기억은 마음속에서 켜켜이 쌓여 추억으로 남는다. 맛뿐만 아니라 소리와 냄새, 분위기까지 함께 남는다. 감각은 이처럼 모순적이고 다채롭다. 오늘 먹는 음식은 미래의 추억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