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채식주의자> 독서 후기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읽었다.
<채식주의자>의 주인공은 언제나 중간만 하자는 신념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평균주의형' 인물이다. 평범함을 신봉하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지극히 평범한 아내와 결혼하여 일상을 이어가던 어느 날, 주인공의 아내는 자신이 채식주의자가 되었음을 고백하면서 <채식주의자>의 이야기는 고조된다.
이 소설에서 가장 강렬하고 눈에 띄는 부분은 바로 아내의 기행이다. 아내는 어느 날 갑자기 검은 비닐봉지와 플라스틱 용기를 집안 바닥에 빼곡히 깔아놓기도 하고, 밖에서 젖가슴을 드러낸 채 새를 산채로 뜯어먹기도 한다. 주변 인물들이 비교적 특징이 뚜렷하지 않은 평범한 캐릭터이기 때문에 아내의 이런 기행은 소설 안에서 더욱 부각된다.
감당하기 어렵다는 느낌이 드는 소설을 오랜만에 만났다. <채식주의자>의 이야기를 따라갈수록 어쩐지 마음이 조금씩 불편해졌다. 이런 불편한 감정은 소설의 어느 부분에서 온 걸까. <채식주의자>에서 느껴지는 불편함은 아내의 유별난 기행에서 오는 것도 있지만, 독자의 입장에서 어느 쪽에도 답이 없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느끼는 불편함도 있다.
아내의 기행은 물론 대단한 수준이긴 하지만, 아내의 기행에 대처하는 아버지와 남편의 행동 역시 예사롭지 않다. 남편은 아내가 어느날 갑자기 채식주의자가 된 이유를 단 한 번도 묻지 않는다. 그저 예전처럼 아내의 본분을 다해주기를 강요한다. 아내의 아버지 역시 고기를 안 먹겠다는 딸에게 이유를 묻지 않는다. 그저 손발이 묶인 딸의 입에 탕수육을 우겨넣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아내의 아버지와 남편의 초점은 언제나 본인에게 맞춰져 있고 그들이 행사하는 가부장적 압력에는 어딘가 모순이 있다. 공감능력이 결여된 인물들에게 도구처럼 다뤄지는 아내를 보면서 나는 아내의 기행을 볼 때와 마찬가지로,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불편함을 느꼈다.
<채식주의자>는 2016년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수상하면서 유명세를 탄 작품이다. 맨부커 상은 영국에서 최고권위를 자랑하는 문학상이다. 그중 맨부커 인터내셔널 부문은 영어로 번역되어 출간된 외국 문학작품에 주는 상이다.
독자들을 불편한 세계로 이끄는 이 작품은 어떻게 해서 맨부커 상을 받게 되었을까. 어쩌면 <채식주의자>는 오늘날 사라져가는 질문을 세상에 던졌기 때문에 문학계의 주목을 받은 게 아닐까.
사라져가는 질문을 세상에 던져서 주목받은 작가가 또 한 명 있다.
데미언 허스트(Damien Hirst, 1965~)는 골드스미스 대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yBa(young British artists)에서 활동한 영국의 현대미술가이다. 데미언 허스트는 “혐오스러운 것도 예술이 될 수 있는가”라는 고민을 했고, 여러 작품을 통해 이러한 고민을 실행에 옮겼다.
데미언 허스트가 예술계에 던진 질문은 신속하게 답이 내려졌다(혐오스러운 것도 예술이 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데미언 허스트는 포름알데히드 용액 안에 뱀상어를 담아 보존처리한, <살아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육체적 불가능성>이라는 다소 괴기해 보이는 작품을 당시 유명한 컬렉터였던 찰스 사치에게 1억 원에 파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 작품은 10년 뒤에 열린 경매에서 140억 원에 낙찰되었다.
데미언 허스트와 마찬가지로 한강은 <채식주의자>를 통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문학계에 던졌다.
“불편한 감정을 유발하는 글도 문학이 될 수 있는가”
데미언 허스트가 평론가들에게 “혐오스러운 것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답을 받은 후 스타덤에 오른 것과, 한강이 독자들에게 불편한 메시지를 던진 작품으로 세계적인 문학상을 받은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채식주의자>는 읽는 이를 불편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그리고 불편한 감정으로 독자를 흔들기 때문에 문학이다. 사람들이 <펜트하우스>나 <오징어게임> 같은 막장 드라마(?)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곳에서는 누군가의 일상이 사정없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 생생하게 흔들리는 현장을 마주하기 위해 이야기를 찾는다.
불편함은 우리에게 충격을 준다. 그리고 불편함을 유발하는 문학은 전략적이다. 충격적인 감정은 다른 감정보다 마음속에 훨씬 오래 남기 때문이다. 한강은 소설에서 불편함이라는 감정을 독자에게 충격을 주기 위한 장치로 이용한 것이다.
나의 마음에도 <채식주의자>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오랜만에 강렬한 소설을 만나서 반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