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드 쥘리앵, <완벽한 아이> 독서 후기
<완벽한 아이>는 광신도였던 아버지의 잘못된 신념으로 인해 15년 동안 집에만 갇혀 지내다가 성인이 되어 세상으로 탈출한 프랑스 출신 심리치료사 모드 쥘리앵(Maude Julien, 1957~)의 논픽션이다.
논픽션은 넓은 의미에서는 픽션이 아닌 모든 장르를 의미하지만 오늘날에는 보다 좁은 의미로, 사실을 픽션의 형태로 표현한 글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실화인데 등장인물이 있고,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 구조를 가지고 있으면 논픽션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완벽한 아이>의 이야기는 모드 쥘리앵이 직접 경험한 일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1957년, 모드는 프랑스 릴과 됭케르크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카셀 근처의 한적한 마을에서 태어났다. 부유한 아버지와 교육학을 전공한 어머니 밑에서 자란 그녀는 겉으로 보기에는 이상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란 것으로 보이지만, 프리메이슨 일원이었던 아버지의 잘못된 신념으로 인해 모드는 세 살이 되던 해에 철책으로 둘러싸인 집에 감금되었고, 열여덟 살에 그 집에서 스스로 탈출할 때까지 15년을 갇혀 지냈다.
모드의 유년기는 기이한 훈육 방식과 그로 인한 공포로 얼룩진 시간이었다. 모드의 아버지는 자신의 딸을 초인으로 만드는 것이 신성한 의무라고 믿는 광신도였고,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에 대비해 생존 기술을 익혀야 한다는 믿음을 가진 강박적 인간이었다.
인간으로서의 약점을 제거해야 한다는 이유로 모드는 어린 시절부터 말도 안 되는 훈련을 강요받았다. 쥐들이 들끓는 깜깜한 지하실에 갇혀서 명상을 하거나, 전기 울타리를 움직이지 않고 몇 분 동안 잡고 있기도 했다. 독한 술을 마시며 알코올을 견디는 훈련도 받았다. 이 모든 게 초등학교를 입학하기 전 나이에 일어났다.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 모드가 집에서 탈출할 용기를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모드의 집에는 책이 정말 많았다. 서재에 꽂혀 있는 수많은 책 중에는 모드가 부모님 허락 없이는 읽을 수 없는 금서들도 있었다. 금서의 대부분은 서정적인 연애소설이나 아버지가 반대하는 사상을 가진 책이었다(그런 책이 어째서 서재에 꽂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버지는 모드가 철저하게 이성적인 인간이 되기를 바랐지만, 선천적으로 풍부한 감수성을 가지고 태어난 모드는 기회가 될 때마다 아버지가 지정한 금서들을 몇 페이지씩 반짝이는 눈으로 읽어 나갔다. 이런 경험으로 세상을 보는 안목을 넓히고 자신만의 꿈을 키웠기에 모드는 집에서 스스로 탈출할 용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모드가 집에서 탈출하기 전까지 그녀의 인간관계는 아버지와 어머니만이 전부였다. 때문에 모드는 성인이 되어 독립을 하고 나서야 기초적인 사회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너무나도 기초적인 경험이어서 읽는 내 마음을 아프게 할 정도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거리에서 자연스럽게 걷는 법, 여러 사람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밥을 먹는 동시에 대화를 이어 나가는 법, 거절하기 어려운 부탁에 자연스럽게 대처하는 법(집에서는 명령과 이행만이 있었다) 등을 모드는 성인이 되고 나서야 힘겹게 익혀나갔다.
내가 주기적으로 참여하는 독서모임이 있다. 거기서 <완벽한 아이>를 주제로 여덟 명의 독서모임 멤버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내가 놀란 점은, 이 책을 주제로 독서모임에 참여한 멤버 중에 가족에게 큰 상처를 받은 사람이 대다수였다는 점이다.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나눴던 사람들 중 큰 상처를 고백한 사람들의 근본적인 원인이 대부분 가족에게 있었다.
아버지가 왼손잡이인 자신에게 강제로 오른손만 사용하게 해서 결국 양손잡이가 되었다는 군대 후임, 아버지가 여러 가지 이유로 자신을 인정하지 않아서 되도록 집에 연락을 하지 않는다는 대학원 선배, 어머니에게 어릴 때 받은 정신적ㆍ육체적 학대를 떨리는 목소리로 고백한 독서모임 멤버까지⋯. 이들 모두 가족에게 받은 아픔을 타인에게 용기를 내어 고백한 사람들이다. 그런 아픔을 밖으로 꺼내지 않고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는 사람까지 포함하면 내가 만난 사람들 중 가족으로 인해 고통을 겪은 사람은 얼마나 많을까.
결국 피는 못 속이는 법이다. 외모로, 성격으로, 서류상으로 우리는 가족과 끊임없이 연결된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과의 관계가 너무도 지긋지긋해서 연을 끊기로 다짐한 순간에도 마음속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저항감이 일어난다. 나를 낳았다는 이유로, 나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나와 오랜 시간을 부대꼈다는 이유로 우리는 그 굴레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다가도 거스를 수 없는 불가항력을 느끼며 다시 굴레 안으로 떨어진다.
그럼에도 나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가족이라는 굴레를 끊고자 하는 사람들을 응원하고 싶다. 그것 또한 삶이라는 길 위에서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방향일 뿐이다. 그런 선택을 포기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족의 의미는 가족 구성원 개개인이 각자의 역할에 충실할 때 단단해지는 법이다. 만약 자신이 가족에게 유대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 도리어 가족으로 인해 큰 고통을 겪고 있다면, 가족이라는 굴레를 벗어던지고 세상에 두 발로 서는 것은 포기가 아닌 용기가 되는 거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