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

요정들이 사는 곳

by Terry

승원의 시선으로 만들어진 우리의 여행 브이로그를 계속 돌려보느라 웃느라 눈물 마를 날이 없다. 예를 들어 플리트비체에 오는 버스에서 책 읽는 나를 1초, 한참 후 잠든 내 모습을 1초 촬영해 붙인 악의적인 편집은 그의 영상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요소이다.


플리트비체 호텔. 국립공원에 걸어서 접근할 수 있다는 막강한 장점 하나만으로 이번 여행 중 가장 비싼 값을 치르게 했다. 하지만 그것은 주변에 아무 편의시설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미 우리가 도착했을 땐 당일 입장표를 살 수 있는 시간이 지나, 그냥 주변 산책이나 나가기로 했다.


걷다 보니 의도치 않게 국립공원에 안에 들어와 있다. 혹시 들킬 것을 대비해 영어를 못 알아듣는 사람 연기를 연습한다. 막을 수 있으면 막아봐라. 벤치에 앉아 스웨덴 전통음악을 들으며 분위기에 취하려는데 벌레가 너무 많아 이내 돌아간다. 호텔 테라스에서 앉아 마저 여유를 즐긴다. 저녁 대신 노을(+α)을. 달리 갈 데도 없다.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내에는 각자 입맛대로 돌 수 있는 수많은 코스가 있다. 서로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말을 꺼낸 코스는 놀랍게도 둘 모두 18km의 가장 긴 D코스다. 역시 내가 사람 보는 안목이 있다. 이를 위해 내일 스플리트까지의 직항을 포기하고 자다르 경유와, 물집 세 개를 손톱으로 찢어 터뜨리는 것을 감행해야 했다. 아픔보다는 어른이 된 기분이 더 크다.


다음날 아침. 어제저녁에 노을에 곁들여 먹은 과자와 젤리들은 모두 소화되었고, 호텔에서 제공되는 조식을 먹으러 지하 식당으로 내려갔다. 이곳에서 아예 점심까지 싸가려 했는데 앉을자리까지 지정해주는 생각보다 엄격한 분위기다. 어쩔 수 없이 여기서 점심까지 먹을 셈으로 차분히 위장 가장 아래부터 채워나간다.


하지만 방으로 돌아가는 내 주머니 속에는 노골적인 형태로 바나나와 요구르트가 들어있고, 통화하는 척 귀에 갖다 댄 핸드폰 뒤에는 헤이즐넛 스프레드를 바른 호밀빵이 담긴 지퍼백이 있다. 능청스럽게 연기하며 카운터 직원을 지나치다 미처 못 본 다른 직원 앞에서 무너지고 만다. 어느새 승원은 저 멀리 서서 웃고 있다.


단단히 각오한 만큼 국립공원 안을 휘젓는다. 자연경관에 눈이 팔린 나머지 표지판을 몇 번 지나치긴 했지만 그로 인해 아무도 가지 않는 길도 갈 수 있었다. 쨍쨍한 햇빛에 승원과 나는 더욱 먹음직스럽게 골고루 익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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