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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스톡홀름 관광: 시청사와 노르딕 박물관

사대주의자의 변명

by Terry

빗방울이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뜬다. 승원이는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 핸드폰을 수십 분 동안 노려보다 공항에서 가져온 팜플렛을 읽어보기 시작한다. 오늘도 역시 주말이라 선택의 여지없이 관광을 하기로 한 날이다.


오늘 날씨는 “typiskt svenskt väder”. 전형적인 스웨덴 날씨로 다른 해석으로는 종 잡을 수 없는 날씨라는 뜻이다.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우리를 사방에서 우리를 반기는 빗방울은 왜 과거 승원이가 우비를 구입에 열을 올렸았는지 이해시켜준다.


오늘 아침 팜플렛에서 본 시청사로 가 바로 전망대로 향했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스톡홀름의 모습이 예술이라고 쓰여있었다. 스톡홀름은 분명 14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도시인데 위에서 내려다보지 않으면 그냥 강을 끼고 있는 도시처럼 느껴지는 곳이다. 위에서 바라보는 스톡홀름의 전경도 전경이지만 올라온 만큼 더 거세진 바람에 창살 사이로 몰아치는 굵은 빗줄기는 눈을 뜰 수 없게 했고, 창틀의 씹다 버린 껌을 보고 달팽이라며 호들갑을 떨며 내려오기에 이른다.


배울만큼 배운 우리는 철저히 각 건물의 폐장시간에 맞춰 관광일정을 짠다. 다섯 시에 문을 닫는 Nordiska Museet. 1526년부터 현재에 이르는 스웨덴의 의식주 생활양식을 엿볼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해 찾아가기로 한 곳이다. 개인적으로 스웨덴을 향한 맹목적인 호감이 있지만, 어떻게 그런 긍정적 이미지가 내 안에 자리 잡게 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명예 웁살라인이 알려준 바로는 스웨덴이 여유로운 복지국가로 거듭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며, 100여 년 전에는 고흐의 ‘감자 먹는 서민들’ 느낌의 가난한 농업국가였다고 한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성공적으로 중립의 위치를 지켜냄으로써 다른 나라들과 달리 전후 사회기반시설을 복구하는데 막대한 돈을 쏟아붓지 않아도 되었고, 전시에 독일 해군, 영국에 물자 등을 공급함으로써 이익을 취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성장은 1930년에서 1965년까지 사회민주당이 선전했던 Folkhemmet(people’s home, welfare state), 상호 이해를 기반으로 하는 계층 차이 없는 평등사회 설립을 가능하게 하는 바탕이 되었다. 이 선전은 스웨덴판 새마을운동으로 이 사회 안에서는 시민 모두 품위 있는 집을 가질 자격이 있으며 이를 갖도록 노력해야 했다. 품위 있는 집의 조건 중 하나는 온수가 나오는 것으로 당시의 열악함을 떠올려볼 수 있게 한다.

천천히 둘러보다 마지막 층을 관람하려는데 폐관 시간이어서 들어갈 수 없었다. 겨울철 춥고 해가 거의 없다시피 한 날씨로 인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은 생활방식을 반영하여 만들어진 오래 보아도 쉽게 질리지 않는 스칸디나비아 디자인, 이 역사와 발전을 가장 보고 싶었는데, 시간 배분에 실패한 대가로 쓰라린 마음을 부여잡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박물관 앞 그림 같은 강가를 바라보며 매운 과콰몰리와 연어를 넣은 샌드위치를 먹는 것으로 달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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