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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스톡홀름 관광: 감라스탄과 포토그라피스카

과거와 현재

by Terry

감라스탄은 중세시대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구시가지로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자갈길이 인상적이다. 감라스탄의 중심에는 대광장(Stortorget)이 있고, 이곳은 덴마크 왕이 자신을 죽이려던 스웨덴 귀족들에 분노하여 이들을 학살했던 스톡홀름 피바다 사건의 살아 숨 쉬는 현장이다. 감라스탄 초입에서 검은 천을 뒤집어쓴 채 건물에 몸을 숨기고 부르르 떨고 있던 남자의 정체가 학살을 피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떨며 숨어있는 걸 표현한 거라면 굉장히 적절했으며, 눈물 나게 웃어재낀 나 자신은 그렇지 못했다고 생각된다.


골목골목을 기념품샵들을 구경하다가 스톡홀름에서 가장 오래된 길(Köpmangatan)도 찾아가고, 가장 좁은 구간은 폭 90cm를 자랑하는 감라스탄에서 가장 좁은 길(Mårten Trotzigs gränd)을 지나가 본다. 폭이 너무 좁아서 계단을 오르는 동안 승원이는 내 엉덩이밖에 볼 수 없었다.


비도 내리고 날도 춥지만 20시에 마감하는 닫는 아이스크림가게에 가보려고 발걸음을 재촉하는 길, 멀리서 마주오는 두 청년은 뭔진 모르겠지만 하지 말라는 신호를 수신하지 못하고 몰상식한 발언을 해댄다. 길을 헤매다 다시 그들이 시야에 들어왔고, 한마디 상의도 없었지만 우리는 똑같은 방식으로 대처하고 있었다. 못 배운 두 사람이 아니라 한두 번 해본 게 아닌듯한 노련함이 약자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Stikkinikki. 바깥은 쌀쌀하지만 이 아이스크림 가게를 시일 내에 다시 올 수 없다는 사실에 두 스쿱을 시켰고, 북유럽답지 않은 후한 인심에 오랜만에 아이스크림을 배부르게 먹었다.


역에서 내려 다음 목적지인 포토그라피스카를 걸어가는 길에는 터널형의 육교가 있는데, 내 허벅지 언저리에 동그란 구멍이 나있다. 원가절감을 이유로 꼽는 나의 뒤통수를 때리는 승원이의 설명이 이어진다. 작은 아이들이 걸어가며 답답하지 않게 바깥을 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작은 창문들이었다. 같은 맥락으로 버스 출입문에도 ‘아이들이 먼저 내릴 수 있도록 배려해주세요.’와 같은 안내문을 들 수 있다. 아이들이 설계에 참여한 게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게 할 정도의 세심한 배려에 스웨덴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늘어간다.


Fotografiska(Fㅋ). 평일에는 새벽 한 시, 주말에는 밤 열 한시라는 유럽에서 도통 찾아볼 수 없었던 폐장시간이다. 할리우드 셀럽들의 꾸미지 않은 모습을 담은 사진전에는 흥미가 없는터라 잠시 들어가기를 망설였으나 그 외에도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도 있다기에 들어가기로 한다. 사실 들어가야만 했다. 곧장 엘리베이터로 직진해 카페로 올라가 콘센트를 찾아내야 했다. 내 핸드폰은 이미 방전된 지 오래며 승원이 핸드폰도 의식을 잃기 일보직전이었다. 따뜻한 방 안에서 지지고 있을 보조배터리가 눈에 선하다.


바쁜 일정으로 우리의 육신도 충전할 겸 스웨덴 생맥주 한잔씩을 선물하기로 한다. 도수가 1도 높아질수록 가격도 철저히 올라간다고 들었는데 정말인지 비싸지만 취기가 돌기 시작한다. 심지어 어두운 전시관에 들어가니 어떤 작품이든 열린 사고로 받아들일 수 있는 최적의 상태로 관람할 수 있다.


탐나는 기념품들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섰는데 아직도 훤한 하늘이 안전한 귀갓길을 밝혀준다. 웁살라 역사에서 버스 시간에 정확히 맞춰나가려고 앉아 추위에 떨고 있는데 바로 옆에서 한 아저씨가 사랑노래를 하며 춤추기 시작한다. 결국 이어폰을 끼고 마는 우리와 달리 부인은 그저 온화하게 미소 지을 뿐이다. 만약 그 부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작작하라며 그의 머리통을 후려갈겼어도 우리는 그녀가 한국어를 할 줄 안다는 사실에만 조금 놀랐을 것이다.


추위에 떨며 돌아와 새벽이 되어서야 먹는 저녁. 오늘 저녁은 스웨덴 대표음식 미트볼. 전 세계 이케아에서 만나볼 수 있는 식단이다. 매쉬드 포테이토는 없지만 감자튀김과 감자 샐러드가 있고 링곤베리 잼은 없지만 라즈베리 잼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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