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으로 가는 길
3월 4일
3월 1일에 이사를 하고 처음 맞는 월요일이므로 외국인청으로 가 거주지 변경을 했다. 볼일을 마치고 후다닥 들어와 빨래를 돌렸다. 궂은 날씨에 빨래가 내일까지 마르지 않을까 걱정이다. 새 집, 새 플랫 메이트, 새 학기에 시작되자 다시 낯선 곳에 뚝 떨어진 기분에 우울함을 느꼈다. 그 우울함을 없애고자 그리고 북유럽 물가에 대비해 위장을 가득 채우고 잠이 들었다.
3월 5일
험난하다. 프랑크푸르트-코펜하겐-오슬로-트롬쇠, 세 번의 환승. 환승을 할 때마다 내 마음의 문은 점점 더 굳게 닫히는 중이었다. 하지만 트롬쇠에 착륙하자마자 비행기 창문 너머로 비행기 날개 위에 흩날리는 눈바람을 보자 여행의 설렘이 다시 찾아온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재빨리 바지 한 겹을 더 입는 것. 공항 밖으로 나오니 올 겨울에 보지 못했던 눈을 한 번에 보는 듯했다. 아직 이른 오후 시간임에도 해가 조금도 보이지 않고, 종아리 높이까지 하얀 눈이 쌓여있어 하늘과 땅의 경계가 모호하다. 버스정류장을 찾으려 주위를 둘러봐도 하얀 모자를 쓴 정류장은 보이질 않는다.
결국 십여 분간 공항 리무진을 타고 시내에 도착했다. 차가 다니지 않는 길은 지형이 전혀 보이지 않았고, 언덕 위 숙소를 찾아가는 길은 인적이 드물어, 혹여 눈 속에 감춰진 층계나 장애물을 밟을까 한 발 한 발이 조심스럽다. 이 길이 등굣길이었다면 도중에 화가 나 집으로 돌아왔겠지만, 지금은 차가운 공기와 하얀 눈이 만들어낸 풍경이 나를 설레게 만든다.
종아리까지 쌓인 눈보다 무서운 북유럽 물가에 외식은 꿈도 꾸지 않고, 마트에서 장을 봐다가 저녁을 해 먹으러 곧바로 재료 사냥에 나섰다. 다들 같은 생각인 건지 숙소의 공용 부엌은 사람들로 붐빈다. 재빠르게 조리도구들을 사수하며 저녁을 해 먹었다. 방에 들어와 빵을 먹은 기억을 마지막으로 눈을 뜨니 새벽 3시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나도 승원이도 북유럽 물가에 굶주릴 것을 예상하고, 이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첫날부터 그 예상은 빗나갔으며, 오늘 산 가성비 최고의 감자와 달걀은 여행이 끝나고 비행기를 독일까지 오게 되는 호사를 누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