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이 무지개 모자 보신 분?
3월 6일
귀찮지만 부엌으로 올라가 그릇과 포크를 공수해, 마치 전날 굶은 사람들처럼 요거트와 그래놀라를 먹고, 내복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섰다.
트롬쇠는 노르웨이 북쪽에 위치한 섬으로 3월까지 오로라를 볼 수 있다는 말에 오게 된 곳이었다. 축축한 눈을 맞으며 발자국과 섞여 더러워진 오르막길을 올라 투어리스트 인포메이션에 도착했다. 젖은 생쥐 같은 모양새 때문인지 선뜻 다가오지 않는 직원들. 다행히라 여기며 "오로라 헌팅"에 관련한 모든 팜플렛을 들고, 한 카페에 들어가 오로라 헌팅 업체를 선정했다. 개인부터 업체, 그룹 크기도, 차량 크기도 제각각이다. 오로라는 온다 간다 말이 없기에 오로라를 한 번 보기 위해 여행 기간 내내 투어를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말이 쉽지 그 비용이 하룻밤에 한화로 십만원이 넘어 우리가 쏠 수 있는 총알은 한 발뿐이다. 날짜와 업체 선정에 신중에 신중을 기한 후에, 눈물을 머금고 결제를 마친다. 이제 지친 몸과 마음을 편히 재정비한다.
작은 시내를 둘러보며 이 가게 저 가게를 기웃거리면서 구경하고 다닌다. 오로라 헌팅 업체, 기념품 가게, 골동품 가게들이 많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 전날 만들어 둔 감자 달걀 샐러드와 빵을 점심으로 먹었다. 으깬 감자와 달걀, 마요네즈에서 멈추지 못하고 마지막에 넣기로 결정한 참치캔에서 나는 비릿한 인간의 욕심밖에 입안에서 느낄 수 없다.
생각보다 여기저기서 시간을 많이 소요한 터라 서둘러 Polar Museum을 방문했다. 이곳은 북극지방에 사는 동물들, 극지방으로 가는 항해 길을 개척했던 사람들, 특히 아문센, 그리고 북극 동물들을 사냥한 역사에 대해 전시하고 있었다. '사냥을 위한 사냥'에 죽어나간 동물 더미 앞에서 자랑스럽게 웃고 있는 사람들의 사진들, 박물관 곳곳에 있는 머리와 다리가 그대로 보존된 채 바닥이나 허공에 전시되어 가죽들에 숙연해진 채 관람을 마쳤다.
승원이 머릿속에서는 ‘Polaria’라는 수족관을 가고 싶다는 생각과, 좁은 공간에서 물개 두 마리가 사육당하고 있는 추악한 곳에 돈을 쓸 수 없다는 생각이 충돌하고 있었다. 거기에 살짝만 바람을 넣어 수족관 외관만 보고 오기로 결정 내렸다.
수족관은 도심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눈이 아닌 모든 것에 주의를 빼앗기며 걷다가 어젯밤 숙소에 비치되어있던 트롬쇠 가이드북에서 봤던, 1928년에 개업한 트롬쇠에서 가장 오래된 맥주집의 상호를 발견했다. 머릿속에서 다음 계획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하얀 도미노가 쓰러진 모습의 수족관, 그리고 그 앞으로는 트롬쇠 다리가 한눈에 들어오는 야경이 펼쳐져있었다. 가방 속 대용량 초콜릿을 나눠먹으며 배고픔을 달래며, 우리가 주인공인 청춘 영화 한 편을 감상한다.
맥주집은 평지에서 1m 정도 계단을 내려가면 입구가 있는, 폭설이 오면 영락없이 갇혀 즐길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가게 안은 붉은 조명에 나무가 주를 이루는 안락한 인테리어를 가진 곳이었고, 이른 시간 때문인지 한산했다. 각종 특별한 선택지가 든 두툼한 메뉴판이지만 가장 싼 맥주가 한화 8000원을 넘는 것을 확인한후에는, 그 페이지를 벗어 날 필요가 없었다. 각각 가장 싼 맥주, 그다음으로 싼 맥주를 들이켠 우리는 눈이 번쩍 뜨여 그 자리에서 아직 문을 연 마트를 찾아보고, 자리를 박차고 편의점으로 돌진했다.
승원이가 시켰던 곡물 맛이 풍부한 흑맥주 식스팩과 노르웨이 감자칩을 구입해서 만족하며 숙소로 돌아갔다. 가게 밖으로 나오자 무언가 허전함을 느꼈는데 이는 하루 종일 내리는 비에 마를새 없던 상반신이 마르는 느낌이다. 비가 그쳤다는 기쁨도 잠시 이 허전함은 하루 종일 쓰고 다니던 내 모자가 사라진 것도 크게 한 몫했음을 깨달았다.
아까 편의점에서 계산할 때, 내 무지개 모자가 왠지 창피하게 느껴져 벗어 주머니에 욱여넣었는데, 그때 떨어뜨린 듯해 가게로 돌아가 찾아보고, 가게 점원에게 물어봤지만 찾지 못했다. 내 의심의 촉은 그 점원을 향했지만 돌아설 수밖에 없다. 그 사이 블라인드가 내려진 냉장고를 보며 간발의 차로 맥주를 샀다는 것에서 위안을 삼는다.
숙소로 돌아와 저녁으로는 또 연어 구이를 먹었다. 어제도 먹었지만 다시 먹어도 입안에서 녹아내리는 연어에, 어제 간장에 재워둔 생양파와 곁들이니 금상첨화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