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츠를 떠올리며...(1)

그 컵은 찬장으로부터 날아와 싱크대에 부딪힌 뒤 나에게로 달려들었다

by Terry

Möritz, 그는 나의 픽업 버디로 내가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내려 처음으로 통성명을 나눈 사람이었다. 밝은 색상 또는 강렬한 색상의 깃을 세운 폴로셔츠, 청바지에 큼지막한 챔피언 벨트, 뾰족구두,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백. 그의 시그니처 패션 아이템들이다.


일본에서 1년 동안 교환학생을 지낸 그는, 일본을 좋아했다. 공항에서 나를 제외하고도 아시아권 지역의 학생들을 담당하여 나왔던 그는 목록에 있는 일본 여학생이 나타나지 않자 몹시 아쉬워 보였다.

1. 애초에 일본에서 온 학생들도 매우 드물며

2. 그중 여학생은 거의 없다시피 하므로

그는 그녀는 유니콘 같은 존재라고 칭했었다.


그렇게 우리의 인연은 끝나는 듯했으나 그가 다음날 독일 거주 허가를 받기 위해 필요한 업무를 도와주는 버디로 다시 등장하면서 계속되었다. 그리고 이때 독일의 유니콘도 만나 볼 수 있었다. 정말 유니콘 말굽을 가지기라도 한 듯 홀에 울려 퍼지는 또각 구두 소리의 주인공 마이카. 그녀는 캐주얼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 같았다. 마치 태어날 때 검은색 원피스를 입고 태어났다고 자신을 소개해도 거짓말 치지 말라며 손사래 치면서도 한편으로는 ‘설마...’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첫인상.


조원들과 함께 멘자에서 점심을 먹었다. 나의 첫 외식. 영양분 섭취라는 측면에서는 나무랄 데가 없었으나 다른 측면은 고려하지 않는 듯했다. 한국의 맛에 길들여져 있었던 내 혀는 이 음식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 자리에서 마이카는 매트리스 커버를 사야 하는데 어디서 사야 할지 모르겠다며 현재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털어놨고, 마침 나도 수건이나 접시와 같은 물품들이 필요했던 터라 함께 시내로 나섰다. 하지만 백화점 안 수많은 매트리스 커버 중에 그녀의 엄격한 기준에 부합하는 커버는 없었고, 옆에서 더욱 초조해진 모리츠는 도시 외곽의 다른 매장들을 데려가 주겠다고 한다.


원칙적으로는 자신이 통솔하는 학생들을 사적으로 만나서는 안되니 오후에 다시 만나자는 모리츠. 독일인답지 않은 모습이다. 하지만 마이카는 쉽게 승낙하지 못하고 입으로는 나에게 같이 갈 거냐고 물으며, 눈으로 같이 가달라고 말한다. Warum nicht?


당시 나는 기술적인 문제(한국 여권을 못 읽는 괘씸한 우체국 기계)로 유심 활성화가 불가능한 상황이라 기숙사 방문을 나서는 순간 문명과 단절되어있는 상황이었다. 약속 장소는 버스 정류장이 있는 출구. 시험지를 걷기 3초 전에 답을 바꾸는 그 심리를 알고 있는가. 우리 기숙사에는 두 개의 출구가 있으며 둘 다 , 내 기숙사 기준, 약 500m 거리에 버스 정류장이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리고 나는 둘 중 하나로 향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그 출구로 간 내 결정은 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위해 공항으로 오라고 말에, 김포 공항으로 가는 것과 유사했다. 하지만 당시 나는 무지했다.


약속시간이 넘었는데도 오가는 사람 하나 없었고, 다른 출구로 갔을 때 길이 엇갈릴까 봐 메시지를 남기기 위해 기숙사로 뛰어들어갔다. 우렁각시를 처음으로 본 나무꾼이 이런 마음이었을까. 기숙사 부엌 싱크대 앞에 뒤돌아 서있는 남학생. 친절하기까지 한 그.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는 나 자신이 싫다. 그렇게 난 첫 룸메이트를 만났고, 인터넷 문명에 의지한 후에야 모리츠의 차에 오를 수 있었다.


안도감도 잠시 그의 작고 귀여운 렌터카의 스피커는 한국말로 신나는 댄스 비트로 사랑과 이별을 노래하고 있다. 가사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냥 듣는다고 한다. 부디 배려심에서 나온 선곡이길 바란다.


마이카의 매트리스 커버를 찾아다니며 들른 여러 가게들. 실망하며 나오는 마이카와 달리, 내 두 손에는 접시, 컵, 발매트, 목욕가운, 수건 6장이 들려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들른 대형마트(REWE Center)에서 마이카가 매트리스 커버를 찾았는지는 더 이상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해는 저물고 마이카는 그릇을 사지 못했다며 아쉬워하는 내색을 비쳤고, 모리츠는 마치 굶주린 물고기처럼 미끼를 덥석 물며 자신의 집에서 남는 그릇을 가져가라고 한다. 모리츠 집 앞, 같이 올라가겠냐는 모리츠의 말에, 도미노처럼 마이카는 나를 보고 올라갈 거냐고 묻는다. Warum nicht?


모리츠의 집은 아늑한 원룸이었다. 집 안은 침실에 고이 모셔놓은, 척 보기에도 값이 썩 나가 보이는 에스프레소 기계를 극진히 아끼고 있다는 느낌을 제외하면 실용주의를 최고 가치로 삼는 듯했다. 마이카에게만 주는 게 살짝 민망했는지 병풍처럼 서있는 나에게도 정말 관대하게도 유리 물컵 하나와 포크 한 개, 마트 행사 때 받은 게 확실한, 손잡이 부분에 자신의 애칭 'Mo'와 켈로그 로고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는 숟가락 한 개를 준다. 물론, 컵은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갈 때 다시 돌려줄 것을 요구한다. 그 컵은 어느 아침 찬장으로부터 날아와 싱크대에 부딪힌 뒤 나에게로 달려들었다.


술을 한 병 챙긴 모리츠. 모리츠의 집, 마이카의 기숙사, 내 기숙사는 지도상에서 정삼각형 모양으로 비슷한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고, 모리츠는 심각한 얼굴로 몇 초 생각하더니 아무 말이나 대충 이유로 내뱉고 예상대로 내 기숙사로 향했다.


빠르고 편하게 집에 도착해서 기쁜 마음이 드는 것도 잠시, 닫히는 문 틈 사이로 보인 마이카의 눈빛이 어쩐지 마음 한 켠을 불편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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