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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그리스 서부: 케팔로니아

인프라의 소중함

by Terry

겨울 학기 동안 함께했던 교환학생들이 모두 귀국하고 다음 교환학생들이 오기 전 고독의 시간. 당시 내 마음은 잠금장치가 고장 나 어떤 제안에도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3개월이 지나 그 당시에 구입해둔 케팔로니아행 항공권을 사용할 날이 다가왔다. 과거에는 모든 것이 퍼즐처럼 척척 맞아떨어졌건만 다시 검토하니 산 넘어 산이다.


2019년 5월 5일

(1) 케팔로니아에서 자킨토스까지의 직항 배편이 수요일부터 재개한다는 희소식을 받았다. 비록 하루에 한 척이지만. 우리는 수요일에 배를 타야 한다.


2019년 5월 6일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여행지의 날씨를 확인했지만 20도를 넘지 않는 기온에 속상하다. 구릿빛 피부를 기념품으로 가져오고 싶었는데 다음을 기약해야 한다.


2019년 5월 7일
어제 먹다 남은 거대 아보카도 반쪽까지 캐리어에 챙기고 나서야 짐 싸는 걱정을 내려놓는다. 걸어서 공항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아시안 마트에 들러 열라면 두 봉지를 구입했다. 확실히 오후 비행기여서 여유롭다. (2) 공항 보안검색대에서 우리 뒷사람 뒤로는 다른 줄 맨 뒤로 보내버린다. 아찔하다.


비행할 때는 역시 책을 보다가 자다가 다시 일어나면 다시 보다가 잠드는 게 최고다. 나름대로 그리스 신화를 읽어나가는데 이름만 몇 번 되뇌어도 잠이 솔솔 온다. 옆사람에게 민망한 기분이 들 정도로 자다 일어나니 도착을 10분 앞두고 있다는 방송이 들린다. 보통 이쯤 돼서 창문을 내다보면 육지가 보이기 마련인데 끝없는 바다와 구름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갑자기 섬이 나타나고 비행기는 착륙한다.


일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새로운 풍경에 다소 차분하게 설레어온다. 작은 공항을 지나 버스가 있다는 구글 맵만 믿고 버스정류장을 찾아 오르막길을 올랐다. 멀리 서 있는 버스 한 대. 싸늘하다. 한낮이지만 마지막 버스는 이미 떠난 지 오래다.


공항에서 숙소까지의 거리는 10km. 그리스에서 한 번 택시를 타려면 50유로는 기본으로 낼 각오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 난 걸어갈 결심을 했지만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도로 택시를 타러 내려간다.


‘기껏 기어 올라왔는데 다시 내려가야 한다니!’ 그 순간 올라오는 택시 안 기사와 눈이 마주치고, 찰나의 순간 나도 모르게 보낸 신호를 읽은 택시는 멈춘다. (3)”One five.” 15유로? 생각보다 괜찮은데? 51유로가 아닌지를 재차 확인한 후에 택시에 오른다. 알고 보니 버스비에 비해 3.75배 더 받으셨지만 친절•신속•봉사 삼박자를 갖추신 분이었고, 야간 할증이라고 생각하면 적당한 가격이다. 처음으로 만난 그리스 사람.


케팔로니아의 주도 아르고스톨리. 오늘의 할 일은 여행사에 들러서 투어 프로그램을 알아보고, 저녁을 먹는 일. 한산한 거리. 지금은 비수기에서 성수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시기이다. 여행사 팜플렛에 있는 투어 프로그램들은 성수기를 기준으로 제작된 것으로 지금은 토요일에만 투어가 하나 있다. 혼자서 앞서 나간 나는 바가지요금을 낼까 걱정했었는데, 바가지 요금은 커녕 요금도 낼 기회조차 없다.


여러 여행사를 돌고도 원하는 답을 못 얻어 좌절하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검색한 결과, (4) 투어 프로그램 없이도 다음 숙소로 이동할 수 있다는 방법을 찾아내고는 마음의 안정을 되찾는다.


내면의 평화를 얻자, 본능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꼬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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