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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그리스 서부: 케팔로니아 디바라타

솟아날 구멍 찾기

by Terry

어젯밤 배고픈 상태로 잠에 들었고, 잠도 시간도 그건 어찌할 도리가 없나 보다. 오히려 밤새 독기가 오른 둘은 식사를 제대로 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밖으로 나선다. 이른 시간에도 재수 없지만 입맛은 썩 괜찮을 것 같은 십 대들이 붐비는 비스트로로 들어갔다. 예상하지 못한 사이드까지 함께 나오는 푸짐한 터키 샌드위치. 또한 스타벅스가 아니어도 아이스커피를 마실 수 있는 나라다운 후한 얼음 인심에 만족스럽다. 조금씩 빗방울이 떨어지지만 할 일이 남았다. 숙박비가 가장 비쌌던 것으로 미루어 봤을 때 물가 또한 비쌀 것을 대비하여 비 사이로 빠르게 걸어가 장을 보고 버스 터미널로 갔다. 든든한 양식으로 마음만 풍성해지면 좋겠지만 양 손 또한 매우 무겁다.


버스 정류장에서 2분 거리에 위치한 숙소. 그냥 아무것도 없는 시골이다. 외면과 내면 둘 다 시원시원한 리디아가 반겨준다. 집 앞 정원에 핀 라벤더 향기, 깜짝 선물로 제공되는 수제 잼들과 수제 와인에 시작부터 플러스 점수를 얻어갔다.


이 숙소를 예약하자마자 리디아는 메일로 차를 렌트했는지 물었었다. 안 했다는 말에 계속해서 렌트를 권유했고, 우리는 자전거를 타겠다, 걷겠다, 택시를 타겠다 등으로 응수하며 거절했었다. 사실 나는 법적으로 운전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동승자가 있는 경우에는 어떠한 일이 일어나도 나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한 가지 조건이 더 붙는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큰 이 친구는 나에게 운전대를 허락하지 않았다.


리디아가 렌터카를 권유한 것은 숙소 주인의 도리를 다한 것이었다. 이곳은 차 없이 여행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차 하나가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시간, 돈, 자유 세 가지를 골고루 빼앗겼다. 투어 프로그램을 예약해도 이곳으로 픽업이 안되고, 중간에 합류하는 것도 안되고, 직접 가려해도 하필 그 날은 아예 버스가 없는 날로 안된다. 리디아를 앉혀놓고 함께 머리를 굴리는데, 자신이 데리고 다녀줄 수 있다며 제안을 해온다.


(9)리디아가 자기와 같이 아기아 에프티미아에 가고 싶으면 가도 된단다. 그리스에서의 첫 그릭요거트를 먹고 늦게까지 밖에 있을 것을 대비해 어제 못 먹은 열라면을 먹고 기다리다 보니 리디아의 목소리가 들린다. 알고 보니 이 길은 리디아의 퇴근길이다.


요트가 즐비한 해변가. 뜨거운 햇볕 때문인지 바다 때문인지 울렁거리는 부정적인 기운에 휩싸인다. 야경투어를 예약하고 기다리는 동안 이곳저곳 서성이며 사진을 찍으려고 웃다 보니 어느새 실제 기분이 좋아져 있다. 하얀 조약돌 위로 출렁거리는 맑은 바다를 눈 앞에서 마주하니 오후 일정을 무시하고 뛰어들고 싶다. 이성을 되찾고, 발을 담그는 것으로 마음을 추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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