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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그리스 서부: 멜리사니 호수와 드로가티 동굴

시간이 돈이다

by Terry

오늘은 일기예보 상 그리스에서 머무는 일주일 중 가장 좋은 날씨다. 아침에 일어나 혼자 아침을 든든히 차려먹고, 나갈 준비를 마친다. 아침을 깨우는 수탉의 울음소리의 부재를 내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대체해본다. 이상하게 여행만 오면 생체리듬이 2시간 정도 앞당겨지는 탓에 나의 아침은 항상 여유롭다.


11:00 am
1시간에 25유로. 목표는 두 시간. 일일 가이드 겸 운전기사 리디아와 함께하는 투어다. 계획된 장소가 아닌 미르토스 해변에 먼저 차를 대는 그녀를 보며, 투어를 시켜주는 그녀의 오늘 하루 목표는 무엇일지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11:40 am
멜리사니 호수. 드디어 첫 번째 목적지이다. 요정 멜리사니가 신인 팬에게 거절당한 후, 익사했다는 둥 여러 전설이 있다. 이 호수는 동굴 안에 위치하는데 이 동굴은 천장에 원형의 구멍이 나있고, 이 구멍을 통해 햇빛이 동굴 속 호수에 반사된다. 단지 신비한 느낌을 조성하기 위해 뱃사공들이 부는 휘파람, 큰 소리로 울리는 지상에서 지저귀는 새의 울음소리는 어쩌다 전설에 요정이 등장하게 되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10분도 안돼 최대 인원수를 태운 보트를 타고 동굴을 한 바퀴 돌면 끝나는 동굴 투어 프로그램은 그 값어치를 하는지 의심스럽다. 그리고 뱃사공이 한 사람씩 찍어준 사진을 확인하니 그 의심은 더욱 합리적으로 여겨진다.


12:10 pm
멜리사니 호수로 흘러들어가는 물의 근원지 중 하나인 카라보밀로스 호수. 일반적인 호수를 맞닥뜨린터라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리스어로 된 표지판 앞에서 사진을 찍어보는데 뒤에서 지켜보던 리디아는 사진을 다 찍자 그 표지판에는 ‘돌이나 쓰레기를 호수에 버리지 마시오’라고 쓰여있는 표지판이라며 일러준다. 뜻을 모르는 그리스어는 뒤로한 채 나무에 박힌 생선 모형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사진을 다 찍자 리디아는 또 그 생선은 모형이 아니라 호수 맞은편 레스토랑 주인이 잡은 생선 박제란다. 은은하게 풍겨오는 비린내까지 재연해낸 하이퍼 리얼리즘 퀄리티에 감탄하고 있던 나는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12:30 pm
300여 년 전 강력한 지진으로 인해 그 입구를 내보인 드로가티 동굴. 일억 오천년이라는 긴 시간이 만들어 낸 거대하지만 어느 한 곳 그냥 생겨난 게 아닌 섬세한 예술 작품이다. 연중 내내 18도의 서늘한 온도가 유지되는 동굴 안. 그곳은 암흑세계답게 원칙적으로는 사진촬영이 금지지만 자신이 커피 한 잔 마실 만큼의 팁을 준다면 허용하겠다는 비리 관리인이 입구를 지키고 있다. 몇 없는 사람들의 온기로 이곳을 덥히기는 턱없이 부족하고, 공간은 너무나 많이 남아 작은 소리는 동굴 전체에 울리고, 다들 괜스레 속삭이며 다소 엄숙한 분위기가 지속되고 있었다. 나가는 길에 관리인은 친절히 자신의 팁 바구니를 후레쉬로 비춰준다.


13:05 pm
Sami에 위치한 Antisamos 해변가. 이미 두 시간을 넘긴 터라 마음이 조급하다. 이를 알 리 없는 리디아는 저쪽에 괜찮은 카페가 있다며 뭐를 사다 줄지 묻는다. 가난한 형편에 발레학원을 보내달라는 철없는 아이를 지켜보는 부모와 같은 나는 눈물을 머금고 거절했다. 재촉하는 우리로 인해 리디아는 금세 다시 운전대를 잡아야 했다.


돌아가는 길에 큰 마트에 갈 기회를 얻었다. 계산대에서 어젯밤 피스카르도를 안내해준 가이드를 마주쳤다. 아는 얼굴은 항상 반갑다.


14:00 pm 이후
집으로 돌아와 리디아의 세 시간에 대한 대가를 정산하기 위해 차 옆에 모여 선다. 얼마냐고 물었고, 대답을 기다리는 우리의 눈동자에서 어떤 간절함을 읽어낸 것일까 그녀는 잠시 고민하더니 1시간에 20유로라고 말하는 리디아. 이 말은 아침부터 내내 품고 있었던 의구심을 풀기에 충분했고, 그에 더하여 그녀의 의도를 의심했던 모난 나의 성품을 점검하는 시간을 갖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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