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생각했다. 오랜 시간 생각해 봐도 딱히 답이 나오지 않는다.
엄마의 눈에는 조금 예민한 딸일 것이고, 지하철에서 만난 사람의 눈에는 그냥 지나치는 사람 중 하나, 또 선생님의 눈에는 어울리지 못하고 겉도는 아이, 하늘의 높은 별들의 눈에는 작게 보이는 점에 불과하겠지. 타인의 시선이란 건 참으로 나를 얄팍하게 만든다. 내가 아무리 깊은 우물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사람들은 그것을 보지 못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나도 다른 사람의 우물을 보지 못한다. 그것은 참으로 당연한 사실인데 때때로는 나를 슬프게 만든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뭔가 되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우리는 평생을 뭔가를 이루기 위해서,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서 살아간다. 다들 뭔가를 채우고 싸아가려고 한다. 그 행위의 이유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라거나, 생존을 위한 1차원적인 발버둥이라면 차라리 안심이 된다.
하지만 그 발버둥이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라면 조금 슬퍼지는 것이다. 내 발버둥은 단순히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함이었던 것 같다. 유명한 작가가 되고 싶고, 책을 내고 싶고, 그림을 그리고, 예쁜 옷을 입고 싶어 한다거나, 예쁜 옷을 입는 것들. 내가 꿈이라고 지칭했던 것이 사실은 전부 사람들에게 우와-하는 소리를 듣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내 마음은 나를 정말 볼품없는 존재로 만든다. 사람들에게 인정받을만한 성과를 내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만 내 인생이 시작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외의 시간은 전부 이도저도 아닌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 말이다. 그런 건 없는 거다.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유명해진다면 물론 좋다. 내 글이 유명세를 얻고 내가 원하는 것을 다 가지면 좋을 거다. 근데 그러지 않아도 된다. 삶은 일정하게 유지되는 게 아니니까. 그런 날이 오면 좋겠지만,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노력한다. 우리는 우리를 어둠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지만, 우리는 이미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이미 삶이라는 무대 위에 올라와 있으니까. 시간이 지나면 어제가 되어버리는 나날들을 의미 없이 만드는 것은 나 자신이었일 뿐이다.
그래서 경계한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노력하는 시간들을.
신경 써서 아낀다. 의미 없다고 쉽게 버려지는 어제와 오늘과 내일들을.
올라가는 것 같아도 사실은 추락하는 것과 같고, 잘 가는 것 같아도 멀리 돌아간다. 단단해 보여도 그래봤자 모래성이다. 조금 물을 머금어서 단단해 보이는 것뿐이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 사는 삶이란 이런 거다.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내 삶의 마지막 숨결을 받아줄 사람은 누굴까 생각한다. 내 삶의 마지막 시야에 가득 차는 것은 어떤 풍경일까 생각한다. 그 풍경은 나를 사랑할 수 있는 내가 자리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해도, 내가 바라는 것들을 이루지 못해도 나를 아껴주고, 사랑해 주고, 이 순간을 의미 있게 생각하는 나였으면 좋겠다.
사랑할만한 이유가 있어야 사랑하는 껍데기 사랑 말고, 진짜 사랑을 간직한 채였으면 좋겠다. 사람이 하는 고민과, 그 사람만 가진 이야기와, 그 사람만 가진 눈빛과. 그 우물을 깊게 들여다볼 수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하는, 그런 사랑을 간직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