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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의 다지 Jul 23. 2021

Ep.8 내가 싫어서 하는 말이 아니야

상사의 차디찬 피드백 속에서 생존하는 방법.

졸업을 하고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상처를 받는 일도 꽤 많이 생겼다. 특히나 회사 창립이래 처음으로 들어온 문과 출신 인턴이자, 마케팅 팀의 첫 멤버로서 나는 항상 고군분투했다. 수많은 지원자들 중 적지 않은 나이와 인턴경험이 전무하다는 사실은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고. 친구들은 그런 나를 보고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발악하는 동물 같다며, "인턴이 왜 그 적은 돈을 받겠어? 배우라고 간 거잖아. 돈 준 만큼만 해."라고 나를 달랬다. 하지만, 내가 일하는 곳은 한 사람이 3인분을 거뜬히 해야 간신히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곳이었고 입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도 그런 압박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항상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눌려 살면서 동시에 눈치도 많이 보았다. "내가 잘못하면 어쩌지? 사수님에게 피해를 끼치면 어쩌지? 나를 왜 뽑았는지 후회하시면 어쩌지."라고 혼자 온갖 상상을 다 하면서 말이다.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업무를 혼자서 처리하고 엄청난 경력 차이가 나는 사수님께 확인을 받는 상황에서 수정해야 할 부분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데, 스스로 완벽하게 처리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화가 났고,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고맙다고, 수고했다는 그 말 한마디 없이 "노라님, 스스로 파이널 검토자가 될 능력을 길러야죠. 1번부터 5번 다시 수정하고, 아이디어는 매장 상황 파악해서 다시 가져오세요."라는 차가운 피드백만 날리시는 사수님께 서운함만 들었다. 


그런 와중에 세일즈 팀에 새로운 매니저님이 들어오셨다. 사무실에 놓을 맥주를 옮기면서 친해질 수 있었는데 내가 사수님과 함께 있을 때마다 긴장한 나머지 내가 보이지 않는다면서 진심 어린 조언을 해 주셨다. 


"노라님, 일을 하다 보면 혼나는 일이 많아요. 저도 그렇고, 본부장님도 그럴 거고 아마 대표님도 혼날 때가 있을 거예요. 그럴 때마다 감정을 배제한 채, 오직 사실만을 받아들이려고 해 보세요. "


매니저님은 20년 경력 차이가 나는 본부장님과 일을 하고 있었는데, 사업 팽창을 위해 꼭 필요한 업체 번호를 따오지 못해서 혼났다고 했다. 그러면서, "점심 이후에 해당 업체 건물 앞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들을 노려. 그리고 사원증 이름을 기억해서 업체를 방문해봐. 그게 내가 했던 방법이야."라는 말과 함께.


좋지 않은 방법이고, 너무 구닥다리 방식 같지만, 꽤 해볼 만한 방식이었다. 1시간 동안의 기나긴 감정싸움과 큰 목소리가 오가는 세일즈 미팅이었지만, 매니저님은 그 안에서 교훈을 찾았고, 이제 이건 매니저님의 또 하나의 무기가 되어줄 것이다.


매니저님과의 대화를 한 후 한참을 생각했다.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이 사수님의 차가운 피드백이었는지, 아니면 그 피드백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약한 나 자신이었는지 말이다. 얼음을 가득 담은 맥주를 밤새도록 홀짝거리며 입사 첫날부터 7개월 차가 되었던 당시까지의 피드백을 다시 읽었다. 그리고 그동안 사수님이 얼마나 나에게 짧은 시간 내에 최대한 많은 것을 가르치고 스스로 깨닫게 하기 위해 노력했는지를 볼 수 있었다.


'고맙다.'. '수고했다.' 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었다. 어딜 가나 들을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이 부분이 부족하니 이렇게 수정하는 게 좋겠다. 좋은 마케터가 되려면 감성뿐 아니라 분석력과 논리력을 길러야 한다. 일의 우선순위를 매겨서 꼼꼼하게 처리해라.'라는 차갑지만 디테일한 피드백은 정말 나를 아끼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말이었다.


이 중요한 사실을 깨닫기까지 나는 수많은 번아웃을 경험하고 수많은 눈물을 흘리고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아쉽게도 퇴사를 하기 몇 주전에야 배우게 된 교훈이지만, 첫 사회생활에서 앞으로의 내 삶을 지탱할 수 있는 부분을 알게 되어 나는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회사에서 상사가 당신에게 쓴소리를 하거든 '아 이 사람이 용기를 내고 나에게 도움을 주려고 하는구나. 나를 아끼는구나."라고 생각해보자. 그리고 그 속에서 나와 다른 세대의 생존법을 찾아보자. 혹시 모른다. 그것이 내가 가지고 있는 무기의 새로운 칼날이 되어 줄지. 물론, 인신공격이 가미된 것은 말고. 그건 신고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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