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통의 다지 Jul 12. 2021

Ep.7 사수님 앞에서 세 번을 운 이유

내가 닮고 싶은 마케터, 그리고 인생 선배를 만나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상사 앞에서 눈물을 보인 사람은 별로 없을 다. 그것도 10  마케터인 사수님 앞에서 8개월 동안 무려 3번이나. 남들이 들으면 '창피하지도 않니?'라고 반응할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성장을 이끌어냈던 눈물이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눈물은 자존감에 관한 것이었다.

26살의 끝자락에 간신히 얻게 된 첫 번째 사회생활이라는 기회. 예상보다 더 화려한 경력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업무를 하다 사수님 (= 마케팅팀 팀장님) 이 '내가 인턴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경영진들을 설득한 PPT를 보게 되었는데, '트렌디한 디지털 마케팅' 그리고 '남다른 인사이트'와 더불어 '글 쓰는 것에 탁월한 능력이 있는' 인턴을 통해 과중된 업무를 분담하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안 그래도 잘난 사람들 속에서 너무나도 평범한 내가 있는 것에 숨이 막혔는데 이 자료를 보고 나서 식은땀이 물 흐르듯 쏟아졌다. 호주를 다녀온 뒤, 수많은 거절과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오래 놓여 있었던 탓인지 쉽게 극복하기 어려웠다.


이때 사수님이 나에게 해 주신 말은 내가 회사 생활을 조금 더 자신감 있게 할 수 있던 큰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노라님, 수많은 사람들 중 노라 님을 뽑은 건 다 이유가 있어서에요. 이력서 꼼꼼히 봤어요. 그리고 그 다양한 경험들, 뭐든 쉽게 거저 얻어진 거 없다고 생각해요. 잘하고 있어요. 앞으로 더 잘할 거고요."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며 나는 비로소 안심했다. 자존감은 스스로 찾는 거라지만, 이때 나는 누군가의 인정이 절실히 필요했던 것 같다. 내가 내 인생을 바치고 싶은 업계에 있는 누군가의 인정이.



두 번째 눈물은 솔직함에 관한 것이었다.

다른 에피소드에서 언급했지만 당시 나는 극심한 우울증과 불안장애에 시달리고 있었다. 큰아빠의 갑작스러운 죽음, 3개월 만에 대화가 단절된 나의 연애, 과중된 업무에서 안에서 완벽해져야 한다는 스스로에 대한 압박. 마음이 안 좋으면 몸에도 병이 생긴다고 하던가. 아무리 건강한 삶을 위해서 발악하려고 해도 나는 자주 아팠고, 위염-장염-피부염-생리불순-질염-방광염 등 평소 같으면 3년에 한 번 걸릴까 말까 하는 이 최악의 사이클이 나에게 찾아왔다. 회의를 할 때 조금이나마 불안하면 식은땀을 흘렸고, 너무 긴장한 나머지 화장실에서 구토를 해 태어나 처음 병원에서 강제로 수액도 맞았다. 하지만 이 모든 상황 속에서도 안 그래도 바쁜 사수님의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철저히 내 상황을 숨긴 채 일을 하고 있었는데, 내 상태가 일에 점점 지장을 주는 듯해서 몇 주간의 고민 끝에 결국 사수님께 말씀을 드렸다.


줌으로 하는 통화에서 왜 그렇게 많은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무서움 때문이었던 것 같다. 겉으로는 누구보다 활발하고 행복해 보이는 내가 이런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믿어주지 않으실까 봐 무서웠고, 일을 줄이고 싶어 하는 핑계로 들릴까 봐 무서웠다. 하지만, 사수님은 예상보다 더 멋지고 이해심 넓은 사람이었다. 입으로는 "저 잘 견디고 있어요. 문제없어요." 하면서도 꺽꺽거리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나에게 사수님은 "혹시, 경력의 차이 때문에 나를 어려워한다면 그러지 않아도 돼요. 힘든 이야기인데 먼저 용기 내줘서 고마워요. 제가 도와줄 부분이 있다면 말해주세요. "라는 대답을 해 주셨다. 이 대화 이후로 업무량이 조금이라도 줄은 것은 아니지만 (나 역시 이를 원한 것이 아니다) 이때 솔직하게 내 상태를 털어놓은 덕분에 회의는 조금 더 편해졌고, 관련해서 해 주셨던 많은 조언들 덕분에 건강한 회사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세 번째 눈물은 감사함에 관한 것이었다.

8개월의 내 인턴 생활은 낭떠러지에 서 있는 작은 돌멩이 같았다. 늘 내가 생각했던 나의 능력보다 몇 배는 더 많은 노력을 투자했고, 해 본 적 없던 것들도 어떻게든 되게 만들었던 시간들이지만 항상 불안했다. 3개월 계약으로 들어온 이후 나는 2번이나 연장 계약을 했고, 그 사이에 다른 꽤 많은 인턴들은 정규직이 되었기 때문. 심지어 나보다 늦게 들어온 사람들도. 물론, 그 사람들을 질투하거나 원망하는 것은 아니지만 회사에 서운함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난달을 끝으로 회사와 이별을 하게 되었다. 너무나 빠르게 커져가고 있는 회사에서 마케팅 팀에 나와 매니저님 둘 뿐이었기에 당연히 이번에는 나의 차례가 올 줄 알았던 나는 사실 probation 미팅 자리에서 충격에 빠졌다. 그날 일이 되지 않아 옥상에 올라가 가만히 앉아 있는데 이후 사수님이 올라오셔서 이런 이야기를 해 주셨다.


"항상 너무 고맙고 미안해요. 주니어들이 있었으면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을 텐데 10년 차 팀장급인 나와 일을 하느라 10개가 궁금해도 1개밖에 질문 못 한 거 알아요. 그런 상황에서도 언제나 최선을 다해준 거 감사해요. 이 회사도 너무 좋지만, 나는 노라님이 더 큰 곳에 갔으면 좋겠어요. 마케팅 팀을 고마워하는 곳, 노라님의 그 편견 없는 아이디어를 다 받아줄 수 있는 곳으로요." 몇 백통 몇 천통의 레퍼런스 레터도 써 줄 수 있으니 언제든 연락하라는 사수님의 마지막 말에 눈물을 숨길 수가 없었다. 첫 회사, 비록 원하는 정규직 전환은 되지 않았지만 나의 노력을 알아봐 주고 나의 능력을 인정해주는 소중한 사람을 만났으니 말이다. 물론, 일에도 후회 없고.



인턴 생활 8개월 동안 나는 이렇게 3번을 울었다. 당시에는 너무나도 창피했지만 돌이켜 생각하니 그 많은 번아웃과 스트레스 속에서도 잘 견디고 성장할 수 있었던 터닝 포인트가 되었던 것 같다. 사수님 말씀대로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고 엄청난 부담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때로는 서운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자신이 맡은 일의 200%를 해 내면서 마케팅 선배로서 그리고 인생 선배로서 많은 조언을 해 주었던 사수님을 만나서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배우고 느꼈던 모든 것들을 토대로 나도 사수님처럼 멋진 마케터가 되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우연히 실무자로 다시 뵙고 싶다. 나와 내가 가진 능력을 믿으면서, 모든 것에 감사하면서 그리고 내 상처를 때로는 보여줄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면서.










매거진의 이전글 Ep.6 동료 말고 진짜 친구가 생겼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