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통의 다지 Jul 11. 2021

Ep.6 동료 말고 진짜 친구가 생겼다

회사에서도 맥주 한 잔에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첫 회사생활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나는 굉장히 행운아인 편이었다. 

너무나도 자유로운 출퇴근 시간에 서로를 배려하는 모범생적 회사 문화. 설날에는 대표님이 직접 인턴의 직무에 맞게 책을 골라서 선물하는 회사. 이런 곳을 첫 회사로 택할 수 있다는 건 굉장히 선물 같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회사 생활 초반 3개월간 나는 외로웠다. 자율적으로 재택근무를 할 수 있어서 직원들의 90% 이상이 사무실로 출근을 하지 않았고 입사 후 8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한 번도 얼굴을 뵌 적이 없는 분도 있다. 또한, 내 또래의 인턴들이 있었는데 모두 엔지니어이기에 마케팅 인턴인 나는 어울리기 쉽지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함께 일하는 유일한 팀원인 매니저님은 경력 10년 차, 그것도 엄청 바쁘신 분. 이런 이유로 나는 너무나도 따뜻한 곳에서 너무나도 외로운 사람이 되었다. 8개월 동안 3번 있던 회식은 내 엄청난 E성향을 충족시키기 어려웠고. 



그러다 한 분이 들어왔다. 매장에서 로봇의 맵핑과 업그레이드 등 기술 전반과 사후 서비스를 책임지는 필드 오퍼레이터로. 다른 엔지니어들처럼 공대 출신이었지만 첫날부터 환하게 인사를 하고 한 번도 남을 미워해 본 적도 미움을 당해 본 적도 없어 보이는 해맑은 그가 굉장히 신기하고도 반가웠다. 


그럼에도 먼저 다가가기란 참으로 어려웠는데, 기회가 생겼다. 그가 속한 팀이 담당하는 매장에서 시식을 해 볼 기회가 생겼는데, 나를 초대해 준 것이다. 그 자리를 통해 그가 학부시절 거의 매일 운동을 하러 가던 옆 학교를 졸업했다는 것과, 5분도 채 걸리지 않은 같은 동네에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비슷한 추억과 취미를 공유하면서 우리는 그렇게 회사의 베프가 되었다. 



나도 안다. 회사에서 아무리 친한 사람이어도 회사 이야기는 최대한 하지 않는 것이 좋고, 그게 힘든 일이라면 더더욱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또한, 남자 직원과 친하게 지내면 안 좋은 소문이 돌 수도 있다는 것도. 태권도를 오랫동안 다니며 초등학교 시절부터 여자보다 남사친들이 많았던 나는 대학 때 오랫동안 몸 담았던 동아리 활동에서까지 많은 오해를 받았으니까. 하지만 그만큼 나와 이야기가 정말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나기란 정말 쉽지 않다는 것도 나이가 들면서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그 지겨운 남들의 눈치에서 벗어나 어쩌면 오래 지속될 나의 인연을 놓치지 싫었다. 


생각보다 길어진 인턴 생활 속에 될 듯 말 듯 되지 않은 정규직 전환의 불안함을 유일하게 알아준 사람이면서, 정신과를 다니며 피폐해진 내가 회사를 스스로 그만두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내 자존감을 올려준 친구면서, 결국에는 전환이 되지 않아 앞으로는 "괜찮아요, 다 잘 되겠죠."라고 말하고 뒤에서는 혼자 울고 있는 나 대신 회사 욕을 해주며 내 밝은 미래를 응원해 준 동료. 


지금은 회사에서 함께 일을 할 수 없고, 또 바쁜 스케줄로 인해 자주 즐기던 맥주 한 잔에 치킨 한 마리도 같이 하기 어려워졌지만 그래도 언제나 나에게 소중한 동료, 아니 진정한 친구로 오래 인연을 이어나가고 싶다. 유일한 문과 출신 인턴이라는 타이틀 안에 외로웠던 나의 회사 생활을 아주 즐겁게 만들어 준 사람이니까. 


그리고 이 친구 덕분에 나는 이제 믿는다. 회사에서도 동료 아닌 진짜 친구를 사귈 수 있다고. 다음 회사에서도 희망을 가져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Ep.5 일찍 올 필요 없어요,진심이에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