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미리 체험해보는 엄마 노릇, 나는 매일 시험대에 올려졌다.
호주에 도착한 지 일주일 차, 나는 브리즈번시티에서 50분 떨어져 있는 골드코스트에서 세 아이의 오페어가 되었다. 나의 업무는 아침 7시에 일어나 8시까지 아이들 점심 도시락을 싸주고, 아이들을 책임지고 등교시키는 것이었다. 그 후 30분 정도 집안 청소를 하고, 아이들이 하교를 하면 간식 등을 준비하면서 1-2시간 정도 놀이를 하는 것. 주 150불의 용돈과 함께 숙식을 제공받고 이 정도 노동을 제공하는 것은 꽤 괜찮다고 느껴졌다.
내가 선택한 이 가정은 특이점이 있었다. 싱글대디인 아빠는 11살과 7살 아들 둘을 키우고 있었고, 아이들의 엄마는 생후 10개월이 된 막내딸을 데리고 30분 거리의 부모님 집에서 따로 살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의 엄마는 매일 아침 집에 왔고, 나는 원래 계약에는 없었던 아이 셋을 보게 되었다. 이런 악 조건 속에서도 내가 불평하지 않고 이 집에 머물기로 선택한 것은 집의 분위기와 사랑스러운 아이들 때문이었다. 나와 몇 살 차이가 나지 않던 아이들의 부모는 비록 따로 살지만 (호주는 결혼을 하지 않고 동거인을 인정하는 파트너 제도가 더 자리 잡혀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사실혼이기에 양육권 등과 관련해서 법적으로 해결할 문제가 있다) 이렇게 쿨해도 되는 것인지 사이가 좋았고, 갑작스러운 엄마의 부재의 외로움을 느끼던 아이들은 처음 보던 나를 잘 따랐다. 호스트 대디는 나를 위해 이곳저곳을 많이 데려가 주었고, 가끔 바비큐 파티도 열어주었다.
하지만, 그 어떤 곳보다 즐거워 보였던 이 가정의 문제를 인식하는 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첫 번째로 내가 경악했던 것은, 돌도 지나지 않은 막내를 포함해 어린아이들이 있는 집에서 쉼 없이 담배를 피우던 엄마와 할머니의 모습이었다. 아이 의자에 앉아 안아달라고 찡얼거리는 아이에게 설탕만으로 만들어진 아이스크림을 물린 채 1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끊임없이 연기를 뿜어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조용히 막내를 안고 안으로 들어와 아이스크림을 뺏고 과일을 갈아주었다. 가끔, 담배뿐 아니라 대마초를 즐기는 이들의 모습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조용히 아이를 안고 산책을 나가는 것. 그것뿐이라는 사실이 너무 힘들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두 아이들은 이러한 방임 환경에서 원하는 것만 먹고살았는지 건강한 음식은 입에도 대려 하지 않았다. 길고 길었던 방학이 끝나고 처음 도시락을 싸기 위해 호스트 맘에게 물어보았을 때, 그녀가 준 리스트는 충격적이었다. '뉴텔라 or 땅콩잼을 바른 화이트 식빵' , '과일 주스', '사과 반쪽', '미니 과자 4-6개' , '젤리 5개', '푸딩 1개' 그리고 물. lucky country라고 불리는 이 잘 사는 나라의 아이들이 이런 것을 먹고 자란다고? 물론, 모든 아이들이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노력할 마음이 1도 없는 그들의 태도는 고개를 젓게 만들었다. 냉장고에는 아이들의 입막음을 해 줄 군것질 거리와, 수많은 가공식품들이 대부분이었고 이미 이것에 몇 년간 길들여진 아이들은 내가 만들어준 건강한 요리에 손도 대지 않았다.
어쩌다 보니 첫날부터 너무나도 아끼게 된 아이들의 엄마 노릇을 하면서, 나는 항상 시험에 든 느낌이었다. 편안하게 오페어 생활을 할 수 있는 선택지와 이 아이들의 건강한 미래 사이에서. 그리고 나는 건강한 미래를 택했다. 나라도 이 시스템을 깨지 않으면 이 아이들에게는 변할 기회가 오지 않을 것 같아서.
하지만, 이 선택은 결론적으로 망했다.
가족들 중 그 누구도 나를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않고 방임 육아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나는 길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그리고 바란다. 그들이 내 방식을 보고 조금이나마 흔들림이 있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