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 노는 게 노는 게 아니야

호주 도착 이틀 차,우리의 믿음에 경고음이 울렸다.

by 보통의 다지

호주에서의 첫 여정은 워홀러들에게 유명한 브리즈번 시티에 있는 한 호스텔에 입성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전 세계 수많은 나라에서 온 워홀러들이 섞여 정신이 없던 호스텔. 스태프들과 함께 밥을 먹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는 장기 투숙객들도 아주 많은 느낌이었다. '아, 내가 살아남아야 하는 곳이구나. 그리고 이들은 나의 일자리 경쟁자들인가.' 입구부터 숨이 막혔다.


다행히도 H와 나는 이미 입국 전 전화 면접을 통해 오페어 일자리를 구해 놓은 상태였다. 오페어란 쉽게 말하면 유모(Nanny)인데, 하루 중 특정 시간 아이들을 케어해 주면서 숙식을 무료로 제공받는 시스템이다. 여기에 일주일에 약 150 - 200불의 용돈도 더해진다. 맞벌이 부부도 많고, 기본적으로 다둥이 가족이 많은 호주에서는 오페어를 구하는 곳이 아주 많았다. 문제는 많은 워홀러들이 살고 싶어 하는 시티가 아니라 대부분 근교 아니면 외딴곳에 위치한 집들이 많다는 것. 이 때문에 나는 일주일 간의 자유를 만끽하고 골드코스트 근교로, H는 브리즈번 외곽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워홀 초기 현지인 가족들과 생활하면서 언어와 문화를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느꼈기에 우리는 오페어를 선택했다.


이렇게 일자리를 이미 구해 놓았지만, 여행자가 아닌 여기에서 돈을 벌고 살아남아야 할 워홀러로서 시티에서의 자유시간은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우선, 호주인들의 지나치게 건강한 삶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대부분의 카페와 식당이 새벽 6시 - 아침 8시 사이에 오픈을 해서 오후 3시가 되면 문을 닫았고 (펍 제외) 저녁 8시만 되어도 거리가 한산했다. 밤 문화를 즐기는 H와, 수많은 팀플로 인해 아주 오래전부터 올빼미가 된 나는 이 생활에 쉽게 적응을 하지 못했다. 또 놀랐던 것은, 대중교통. 호주 3대 도시라는 곳이 이렇게나 열차 간격이 길고, 버스가 안 온다는 것에 충격이었다. 거기에 비싼 대중교통 요금은 (가장 짧은 1구간, $2.75) 돈 없는 워홀러인 우리를 긴장시켰다. 후에, 외곽에 살면서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시내로 나온 우리는 대중교통 때문에 지갑이 정말 가벼워졌다. (골드코스트 - 브리즈번 시티 50분 구간: $9.25). 그리고 마지막은 바로 영어였다. H와 나는 미국에서 교환학생을 하면서 영어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기에, 영어로 일자리를 구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거라고 생각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구사하는 건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그 영어가 아니었다. 호주식 영어였다.


이틀 차 아침, 호스텔 옆 분위기 좋은 카페에 브런치를 먹으러 갔던 우리는 주문을 확인하는 직원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3번이나 천천히 직원이 말해준 뒤에야 "That's right"라고 말하며 머쓱하게 웃음을 짓고 돌아온 우리는 앞으로의 호주 생활이 꼬일 거라는 걱정에 하루 종일 넋이 나가 있었다. mosquito(모기)를 Mozzi로 발음하고, barbecue(바비큐)를 Babi로 줄여 발음하는 것을 고사하고,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도 다른 단어를 쓰는 것 이외에도 가장 우리를 괴롭혔던 것은 R발음을 생략하는 것이었다. How can you get there? 의 there(데얼 -> 데)로 발음하는 데, 생각보다 이런 문장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호기롭게 도착한 호주, 이렇게 우리는 브리즈번에서 겨우 이틀 만에 패닉 상태가 되었다. 너무나도 다른 생활패턴들, 불편한 대중교통, 그리고 그나마 자신 있던 영어실력에 대한 회의는 우리가 이곳에 오길 잘했다는 확신을 옅어지게 했다.


이제는 미국에서처럼 우리를 보호해 줄 학교도 교수님도 멘토들도 없었다. 우리는 우리 힘으로 가장 밑바닥서부터 우리에게 닥친 문제들을 해결해야 했고, 우리의 선택을 믿어야 했다. 그렇게 가장 자유로웠지만, 마음은 자유롭지 못했던 워홀 첫 주가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주의 마지막 날, 나는 홀로 호스트 패밀리가 있는 골드코스트로 떠났다. 설렘 30%와 두려움 70%를 안고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오기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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