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 처음으로 극강의 가려움을 경험했다. 그것도 타국에서.
벅벅벅벅...
새벽 5시, 온몸이 간지러워 일찍 눈을 떴다. 아니 이게 뭐람? 사춘기 시절 여드름으로 한창 고생한 적은 있지만 그 뒤로는 무난했던 나의 피부 상태에 비상이 걸렸다. 그것도 한 번도 나를 귀찮게 하지 않았던 몸에 팔과 다리에 작은 모기 군단이 열을 맞춰 밤새 피를 빨아먹은 것처럼 그 형태가 요상했다.
도대체 뭘 잘못 먹은 것인가?라는 생각과 함께 한 번도 알레르기 반응 검사를 받지 않았던 것을 후회했다. 그리고 그 즉시 호스트 맘에게 증상을 알리며 혹시 이런 것을 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묻는 와중에도 긁는 것을 멈추지 못하면서. 호스트 맘은 호주가 사막지역이 많기 때문에 바다에 갔을 때 샌드 플라이에 물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해 주었다. 그러면서 별거 아니라는 듯 웃었다. 스트레스를 풀 작정으로 매주 2번씩 바다에 갔던 것이 원인이었을까? 구글링으로 찾은 샌드 플라이는 호주 영토만큼이나 징그럽게 거대했다.
그 즉시 약국에 가서 증상을 설명하고 약을 처방받았었는데, 약사가 하는 말. "혹시 배드버그 (빈대)에 물렸던 적이 있니? 샌드 플라이랑 증상이 비슷하긴 한데 배드버그 같아 나는. 우선 가려움을 완화하는 크림이랑 약을 처방해 줄게. 3일이 지나도 안 가라앉으면 꼭 다시 와야 해. "
에이 설마. 21세기에 빈대라니. 내가 오래된 숙소에서 잔 적도 없고... 아... 있다. 불현듯 일주일 전 호스트 가족과 함께 물람빔비로 여행을 갔었던 것이 생각났다. 그때 정말 우리나라 시골 모텔보다도 못한 침대가 삐그덕 대는 숙소에서 잤었는데 그때 배드버그에 물렸던 것인가. 불안했다.
그러고 보니, 하얀 침대 시트에 자꾸 좁쌀만 한 검은 물체가 있어 잠결에도 몇 번이나 손으로 치웠던 기억이 났다. 끔찍했다. 약사의 말대로 배드버그가 맞는 것 같았고 3일이 지나도 더 심해지기만 하고 가라앉을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배드버그라고 확신이 들었던 것은 따로 살지만, 물람빔비 여행을 함께 갔던 루시언니의 증상 때문이었다. 나와 한 침대에서 같이 잤는데, 언니는 조금 늦겠지만 나와 같은 자리에 똑같은 증상이 나타났기 때문. 소름이 끼친 우리는 배드버그를 박멸하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그때 입은 옷을 몇 번이나 빨았고, 집 안에 화학 밤을 터트려 혹시 남아있을지 모르는 배드버그 알들을 없앴다. 너무나 쉽게 다른 곳에 옮겨 붙고, 심해진 경우 집 전체를 비워야 할지도 몰라서 무서웠다.
다행히 우리가 성체가 되기 전의 작은 배드버그에 물린 탓인지 새로 처방받은 약을 꾸준히 먹고 몸에 발라주니 가려움증은 오래가지 않았다. 배드버그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긁는 것을 죽을힘을 다해 참은 것도 큰 영향을 끼쳤다. 참고로, 성체 배드버그에 물리면 최대 6개월까지 증상이 있고, 그 흉터는 1년이 넘게 가기도 한다.
우리는 의문이 생겼다. 우리만 그곳에 머무른 것이 아닌데 왜 우리만 이렇게 고생해야 하는 것이냐고. 그 답은 어이가 없었다. '호주인은 내성이 있으니까.' 이미 어릴 때부터 겪어 내성이 생긴 탓에 배드버그에 똑같이 물려도 아예 반응이 없거나 모기 물린 것처럼 작게 올라오고 만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가족들에게 아무리 배드버그 같다고 말해도 '그럴 리 없다.' 고 했구나...
마치 호주의 풍토병처럼 나타나는 배드버그.
검색을 해보니 특히 항상 깨끗하게 생활을 해온 한국인들이 취약하다고 하는데, 정말 내 생에 가장 억울하고도 어이없는 약국 방문기였다.
만약 호주에 방문하게 된다면 혹시 모를 배드버그에 대비하자. 그리고 간단한 팁을 알려준다면, 1. 나무로 만들어진 오래된 침대가 있는 곳에서 자지 말 것 2. 라벤더 향을 가까이 두고 자기 전 침대에 고루 뿌려줄 것 (배드버그가 싫어함)
나처럼 고생하는 사람이 더 이상 나오지 않기를 바라며... 내성 같은 거 바라지도 않으니 다시는 만나지 말자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