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의 경계를 없앤 곳에서, 처음으로 경계의 필요성을 느끼다.
호주에서 나는 오페어 일을 하면서 남은 시간은 풋볼 경기장 딤섬 푸드코트에서 일을 했다. 일주일에 적으면 1번 많으면 4번 정도로 시간을 많이 잡아먹지 않았고, 시급도 $23로 꽤 짭짤했다. 가장 좋았던 것은 호주인들과 일을 하면서 손님들도 100% 호주인이라 호주식 영어를 빠르게 습득하기에 최적화된 장소였다는 것이다.
호주에 온 지 3일째, 브리즈번에 위치한 게스트 하우스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인 루시 언니와 함께 일을 했었는데 사장은 게으름 한번 피우지 않고, 악조건 속에서도 위생을 지키려는 우리를 예뻐했다. 한국에서는 식당에서 일하면서 당연하게 가져야 할 수칙들을 호주인 아르바이트생들은 전혀 지키지 않았고, 눈살을 찌푸릴 정도로 게을렀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모든 호주인들이 그러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지만, 내가 일을 하면서 봤던 사람들은 모두 그랬다) 또한, 재료의 특성상 이미 한번 데웠는지 팔지 못한 딤섬들은 맛이 현저히 떨어졌는데 이 부분에 대해 개선안을 낸 것도 우리였다. 단골 유치에 좋은 경기장에서 음식을 파는 상황에서 우연히 이런 딤섬을 맛 본 고객들이 생긴다면, 그 고객들이 늘어난다면 장기적으로 정말 큰 손해였다. 우리는 영업 종료 1시간 전 4개 $10에 팔던 것을 50% 할인해서 팔자고 건의했고, 이미 한번 꺼내놨던 것들은 걸러냈다. 그전까지 소스도 사람들이 다니던 곳에 널브러져 있던 것도 통에 차곡차곡 담아 아주 조금의 돈을 받고 팔았다.
위생부분과 재고 부분에서도 큰 개선이 이루어지고 단골손님도 생기자 사장은 우리를 큰 페스티벌에 데려가기로 결정했다. 3박 4일 동안 진행되는 아주 큰 행사였는데 5000명의 히피들이 모여 다양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춤추고 노래를 하기로 유명했다. 행사 며칠 전부터 우리는 호주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에 잔뜩 들떠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 페스티벌은 굉장히 신선하고도 흥미로웠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던 것들을 보았고 경험했기 때문이다. 핸드폰은 거의 작동을 하지 않아 마치 살지도 않던 90년대 초로 돌아간 느낌이었고, 남녀의 '성'을 구분 짓지 않아 메이크업과 치마를 입은 남성들과 상의를 모두 벗은 여성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채식주의자가 많아 거의 모든 부스에서는 채식만을 취급했고 (채식이 이렇게 맛있다는 것을 이때 알았다), 길거리 어디서나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집에서는 착한 맏딸로, 학교에서는 공부만 하는 범생이로, 사람들이 말하는 일탈 한번 없이 특정한 박스 안에서 길러지길 선택했던 나는 처음 보는 경계가 없는 삶이 황홀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것은 히피 페스티벌의 한 단면일 뿐이었다. 일을 하는 중 사장이 '몸에 좋은 버섯 물' 이라면서 우리에게 먹어보라고 했었는데 뭔가 미심쩍어서 먹지 않았던 그것은 코카인을 녹여 버섯 조금을 얹은 액체였다. 그것이 이 페스티벌의 취지를 의심하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 의심은 현실이 되었다. 맥주와 마약을 챙기느라 우리의 잠자리를 전혀 챙기지 않은 사장 덕에 우리는 좁은 차에서 앉아서 2일을 잘 수밖에 없었는데 그 역시 맘 편히 잘 수 없었기 때문이다. 비가 와 진흙 범벅이 된 몸을 씻으러 간 샤워실에서는 남녀의 신음소리가 번갈아서 들렸고 나는 수 없이 '여자 샤워실' 임을 확인하고도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했다.
또 샤워실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남녀 여럿이 뭉쳐 한쪽에서는 코로 마약을 흡입하고 한쪽에서는 온몸의 모든 것을 빼내는 것처럼 꾸역꾸역 구토를 하는 사람들과 마주쳤다. 결국 우리는 이박 삼일을 참다가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사장과 그 친구도 정상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오는 길에도 짐 운반을 맡은 사장 친구가 마약 때문에 붙잡혀 면허를 따고 딱 10번 운전해본 내가 행사장소까지 운전을 해야 했다.
너무나 실망스럽고, 안전하지 않다고 느껴졌다.
무언가를 강제로 경계 짓는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고, 항상 그 안에서 자유를 외치는 사람들을 응원해 왔다. 그 안에 들 용기가 없었던 나를 원망해본 적도 있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용기를 내는 사람들을 남몰래 부러워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 경험을 통해 태어나 처음으로 '경계의 필요성'을 느꼈다.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은 그 사람의 자유고 지지해 주는 것이 마땅하나, 개인의 욕망이 누군가의 삶에 지장을 준다면 그것은 적절한 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수많은 히피들이 얽혀 광란의 파티를 벌였던 3박 4일의 페스티벌. 음식 준비로 인해 아침 8시에 나온 내 눈에 비친 것들은 더 이상 포스터에서 보았던 아름다운 행사가 아니었다. 아름다웠던 취지 뒤에 숨은 범법이 가득한 현장이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