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트 패밀리를 신고했다.

피해자는 많지만, 그들을 지킬 법은 없다.

by 보통의 다지

호주에 와서 가장 날 스트레스받게 한 것은 호스트 패밀리와의 문제였다. 일한 지 한 달이 조금 넘었을 때부터 돈이 없다고 임금 지급을 미루더니, 결국 아이의 인종차별 대화로 인해 면담을 요청했던 것이 불씨가 되어 휴가를 내고 멜버른에 가 있는 사이 해고를 당했다. 그것도 문자로.


전날 히피 페스티벌에서 비를 쫄딱 맞고 무거운 몸을 끌고 간신히 도착한 멜버른. 하루에 4계절이 있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착륙을 할 때까지만 해도 세상 쨍쨍하던 하늘이 작은 공항에서 나오자마자 진흙탕 색으로 변하더니 무섭도록 비가 내렸다. 언제까지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어 또 한 번 비에 몸을 맡겼는데 이게 화근이었는지 도착한 날, 그토록 기대했던 여행에서 체크인을 하자마자 약을 먹고 밤까지 뻗어버렸다.


으슬으슬해진 몸이 낯설었던 것인지 중간에 한번 잠에서 깼었는데, 이때 온 메시지. "너는 잘렸어." 그 뒤로는 A4 한 장에 간신히 담길만한 아주 길지만 어이없는 거짓말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그가 날 자르는 이유를 정리해보자면 이렇다.


1. 일을 할 때 불평이 너무 많다. 음식도 비싼 것만 먹는다.
: 그의 집에는 먹을 게 없었다. 항상 없었다. 일주일에 한 번 그의 차를 타고 마트에 갈 수 있었는데 집에 인스턴트와 단 음식밖에 없어서 아이들의 건강한 도시락을 위해서 건강한 채소와 유제품들을 사기를 권유했을 뿐이었다. 저녁은 매번 햄버거 같이 패스트푸드를 시켜먹는 탓에 패스트푸드를 입에 대지 않는 나는 살은 살대로 빠지고 예민해졌다. 내 돈을 내고서라도 건강한 음식을 먹고 싶은데, 너무나 먼 마트가 원망스러웠다. 비싼 것이 이것들이라면, 나는 할 말이 없다.


2. 설거지를 안 한다. 쓸데없이 식기세척기를 많이 쓴다.

: 내 계약사항에는 청소가 없었다. 하지만, 오전에 1시간은 집안 정리에 사용했다. 돌도 안된 아이가 지내기에는 위험한 음식과 먼지가 뒤섞여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무엇보다 내가 그런 환경을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가족들은 다 먹은 접시를 식기세척기에 넣을 노력조차 하지 않았고, 몇 번을 얘기하다 포기해서 나와 아이 들것만 설거지를 했다. 이 역시도 엄청난 배려였다.


3. 주말에 집에 있지를 않는다.

: 살고 싶었다. 3달을 이렇게 청소부 취급을 받으면서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사는 삶이 짜증 났고, 근처에 얘기를 나눌 친구가 없다는 사실에 너무나도 외로웠다. 그래서 주말마다 루시 언니가 사는 브리즈번에 기차를 타고 가서 언니의 하우스 메이트들과 놀았다. 월-금 오전만 아이들을 봐주기로 되어있었고, 항상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들였기 때문에 주말만은 나에게 자유와 행복을 부여할 권리가 있다고 느껴졌다. 물론 나만의 생각이었지만.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멜버른에서 돌아온 날, 나는 심하게 불어난 짐과 함께 쫓겨났고 루시 언니 방에 짐을 맡겨 놓고 남녀 20명이 뒤섞여 지내는 냄새나는 호스텔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브리즈번의 호스텔은 하나같이 가격 대비 최악이다) 그리고 다음날, 나는 Work Fair 옴부즈맨에 신고를 했고, 더 이상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 내가 그를 만난 페이스북 오페어 페이지에 글을 올렸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고, 충격적인 메시지들을 수 없이 많이 만났으며 다양한 피해자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옴부즈맨 신고는 우선 신고서를 제출하고 번역가와 함께 전화로 진행이 되는데, 너무 느리고 생략해주는 내용이 많아서 정중하게 번역 서비스는 필요 없다고 말씀드렸더니 다짜고짜 소리를 지르면서 "진작 말하던가, 영어 할 줄 안다고 유세야 뭐야 귀찮게." 하면서 뚝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제 담당자와 둘이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희망은 금세 좌절로 변했다. 페이스북에서 만나 면접을 보았다는 것과, '오페어' 자체가 법으로 보호를 해 주는 일자리가 아니기에 내가 다시 돈을 돌려받기 어려울 수 있다는 답변이 돌아온 것. 페이스북 페이지는 현재까지도 오페어를 구하는 가장 빠르고 쉽고 큰 플랫폼이면서 하루에도 수천수만 개의 공고가 올라온다. 그리고 거기에 워킹홀리데이로 온 세계의 수많은 젊은 여성들 (여성이 90%로 압도적으로 많고, 호스트 패밀리들도 여성을 선호한다) 이 일자리를 구해 살고 있는데 만약 문제가 터졌을 때 보호를 해줄 법적 테두리가 없다는 것이다.


혼란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 페이스북으로 많은 메시지가 왔다. 나와 비슷한 일을 당한 피해자들이었다. 하루 동안 2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린 글 속에서 피해자들의 대부분이 보상을 받지 못하고, 심지어는 길거리에 자신의 물건을 쏟아서 버리고 폭력을 당했다는 사람도 있었다. 호주에서 그 사람을 해고하고 싶을 때는 그 일이 어떤 일이든 2주 노티스를 주어야 한다. 그 사이에 다른 일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직원들도 똑같고. 하지만, 그 어떤 댓글에서도 적법한 해고 절차를 확인할 수 없었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는 해당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처럼 부여받은 기간만큼 어디서든 노동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비자다. 하지만, 사각지대는 있고 나는 그 사각지대에서 당했다.


이후 몇 달을 더 싸우다 결국 한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밀린 임금을 돌려받지 못했다. 호주를 떠나면 신고가 무효처리가 되기에 그냥 끝이었다. 코로나가 심해져가는 상황에서 나에게 임금을 줄 능력이 안된다는 것을 그쪽에서 계속 어필했고 (하루에 700씩 벌던 사람이 120만 원을 못 줄까) work fair 옴부즈맨에서는 나에게 더 이어나가고 싶다면 변호사를 선임하라고 했다. 외국인이 변호사까지 선임해서 소송을 진행해서 이길 확률이 얼마나 될까. 이쪽이 돈이 더 들고 스트레스만 계속 받아서 포기했다. 그쪽에서도 은근히 포기를 원하는 것 같았고.


만약 호주에서 오페어를 하고 싶다면, 이런 부분까지 잘 생각해서 지원하자. 그리고 만약 문제가 생긴다면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자. 외국인이라고 겁내고 입을 다무는 것이 그들이 원하는 일일 거니까. 겁나는 환경이 없다면 그게 더 좋겠지만 말이다.


일 년에 수많은 이민자들을 받아들이고, 또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가장 받기 쉬운 나라로 인기가 많은 나라 호주. 그들에게 고마워할 줄 모르고 사각지대를 알면서도 이렇게 무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혹시 아는가. 몇 년 후에는 가장 가기 쉬움에도 가장 기피하는 나라가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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