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눈물부터 났다
호스트 패밀리 집에서 어이없는 이유로 쫓겨나고 한국에서 함께 온 H와 브리즈번 시내 South Bank에서 살기 시작할 때쯤 호주에도 코로나가 스멀스멀 나타나기 시작했다. 전국에서 2000명이 나와야 4단계를 실시하는 한국과는 달리, 한 주에서 10명만 나와도 락다운을 실시하는 호주이기에 주로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나와 같은 워홀러들은 불안에 떨고 있었다. 수중에 돈은 다 떨어져 가고 이제 꼬박꼬박 집세도 내야 하는 입장에서 서둘러 일자리를 구하려던 나에게도 최악의 상황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현지 식당부터 인원 감축을 하면서 일자리를 뽑는 곳이 현저하게 줄어들었고 이제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한인 잡까지 눈을 돌려야 했다. 물론, 그 마저도 3일 후 실시된 락다운 조치에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지만 말이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지금 당장 일자리가 없어도 굶어 죽지는 않을 만큼의 식량이 있었고 (다행히 호주는 식료품이 한국보다 저렴하다) 강력한 국경 봉쇄를 하고 있기 때문에 금방 다시 제 자리를 찾을 거라는 희망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졌다.
집에서 도보로 약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울월스에 가서 장을 본 후 H와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브리즈번 시티 남북을 가르 지르는 꽤 긴 다리를 건너고 있는데, 아프리카계 호주인 가족들과 마주쳤다. 우리는 평소같이 어깨를 피해 주며 어쩌면 길어질지도 모르는 이 백수생활을 어떻게 견딜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한 1분 정도 지났을까.
'퍽'
순식간이었다. 그 가족 중 중고등학생처럼 보이는 여자아이가 빠른 속도로 뛰어와 우리를 가격한 것이.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음부터 났다. 이건 도대체 뭘까.
그 아이는 연신 욕을 퍼부으며 "가난한 너희 나라로 꺼져. 더러운 바이러스 종자들."이라고 소리 질렀다. 아마 우리의 외형을 보고 중국인으로 생각했겠지.
"우리는 한국인이야. 근데 중국인이면 뭐가 달라져? 어디서 이런 무식한 짓이야? "라고 나도 소리치며 이미 H의 긴 머리를 뜯어내고 있는 아이를 밀어냈다. 아이는 집요했다. 떨어뜨리면 달려와 머리를 때렸고, 침을 뱉었고 결국 자기 멋대로 되지 않자 우리의 장바구니와 핸드폰을 뺏으려 했다. 아이의 부모는 다리 끝에서 아이를 지켜볼 뿐이었다.
다리 한가운데에서 누가 봐도 폭행을 당하고 있자, 다리 반대쪽에서 그걸 지켜본 아저씨가 소리를 치며 그만하라고 했다. 아이는 그 아저씨에게도 욕을 했다. "이 바이러스들은 없어져야 하니 닥치라고." 굳이 휘말리고 싶지 않아 맞고 있는 우리를 보고도 못 본척했던 사람들과 달리 다행히 아저씨는 높은 다리 철장을 건너면서까지 우리를 구해줬다.
헝클어진 머리와 옷매무새를 다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 짧은 5분 동안 머리에 돌을 세게 맞은 듯 어지러웠고 눈물이 났다. 길거리에서 수 없이 캣 콜링을 당했고, 이 일이 있기 며칠 전에는 시티 한가운데에서 5명의 백인 남성들에게 둘러싸여 "Asian Bitch"라고 불리며 침도 맞았으나, 이런 직접적인 폭력은 처음이었다. 근처에 경찰들이 많았지만 그들은 우리를 보지 못했고, 전화를 해도 오지 않을 거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이미 해 봤으니까. 또한 미성년자 아이에게 그가 했던 것처럼 똑같이 폭행을 가한다면, 정당방위임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에서 추방당하고 앞으로도 빨간 줄이 그어지는 것은 나뿐이라는 것 또한 알았다. 가장 억울하면서도 무서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게 그 어떤 것도 없다는 생각 때문에 흘린 분노의 눈물이었고 꿈을 안고 온 나라에서 더 이상 꿈을 찾을 수 없을 거라는 것에서 온 실망의 눈물이었다.
이후, 밖에 나가는 것이 너무나도 무서워졌다. 또 언제 어디서 그런 사람들이 나타나 나를 해코지할지 몰랐고, '시티 한가운데서 한국인 남성 두 명이 이유 없이 호주인 남성들에게 폭행을 당했습니다.' 같은 뉴스가 매주 끊임없이 나오고 있었으니까. 다행히도 H와 떨어져 다른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면서 함께 지내던 멕시코와 브라질 친구들이 내가 밖에 나가야 할 때마다 동행을 해 줬고 그 덕분인지 한국으로 돌아올 때까지는 아무 일도 없었다. 너무나도 고마웠지만, 맞지 않기 위해 백인 남성들인 친구들의 도움이 필요해진 이 상황이 정말 짜증 났다.
오랫동안 '백호주의'를 표방하면서 인종차별 국가라고 유명했던 호주. 이 정책을 폐지하고 인종차별이 무지하다는 것을 교육시켜 그동안은 조용했었는데, 이번 펜데믹 이후 더 이상 자신이 인종차별주의 자라는 것을 숨기지 않는 듯하다. 인구의 약 3분의 1이 외국인 혹은 이민자로 되어 있는 브리즈번에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한 번도 경험해 보고 싶지 않은 것을 경험한 것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전 세계가 함께 고통받고 있는 상황 속에서, 비겁하게 인종을 가지고 사람을 차별하거나 폭행을 하는 일이 없기를. 또한, 그것이 자신의 얼굴에 똥을 묻히는 것임을 깨닫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