락다운과 함께하는 슬기로운 백수생활

돈은 없고 걱정은 많아도 웃을 수 있던 유일한 이유.

by 보통의 다지

3월 15일부터 시작된 호주의 락다운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필수 사업장인 약국이나 마트 등을 빼놓고서는 모든 가게가 테이크 아웃으로 돌리거나 문을 닫았기 때문에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불가능했고, 일을 하던 사람도 해고당하기 일쑤였다. 또, 밖에서는 3인 이상 집합 금지에 갈 곳도 없어 조용히 마트를 다녀오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미치도록 좋았던 날씨가 야속할 따름이었다.


이미 호주에서 번 돈은 0에 가까워졌고, 서서히 한국 통장에 있는 돈을 호주 계좌로 옮기기 시작했다. 2주에 한번 방세를 내야 했기 때문 (다행히, 평소 870원까지 치솟던 호주 환율은 720원까지 하락해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아마 이 시기를 혼자서 견뎌야 했다면 아마 우울증에 심하게 걸렸을 것 같다. 내 나라가 아니라 외국이니까 더더욱.


하지만, 운이 좋게도 나에게는 모든 걸 털어놓고 기댈 수 있는 하우스 메이트들이 있었다. 한 없이 길어지는 락다운 속에서도, 심해지는 인종차별 속에서도 웃으면서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가족들이었다.


이집트에서 온 사미, 인도에서 온 사라바난, 브라질에서 온 루카스 그리고 멕시코에서 온 에릭. 그들은 우연히 게스트 하우스에서 만난 루시 언니가 지내는 곳의 하우스 메이트들이었다. 어느 날, 골드 코스트로 돌아가는 마지막 기차를 놓쳐서 언니 집에서 자야 했던 날 처음으로 그 친구들을 만났고, 우리는 새벽 4시까지 둥글게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성격도 모습도 그리고 국적도 너무나도 각양각색이지만 호주에 온 지 정말 오랜만에 웃을 수 있었다. 호스트 패밀리에게 지치고 골드코스트에서 너무나 외로웠던 나는 그 뒤로 매주 놀러 가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 - - - -


오페어를 하고 있던 호스트 패밀리에게서 쫓겨났을 때 차를 렌트해 함께 골드코스트까지 가준 것도 이들이었고, 집에 침대 하나가 빈다며 "네가 와야 해, 같이 살면 너무 좋겠다." 하면서 다시 브리즈번에 온 나를 두 팔 벌려 반겨준 것도 이들이었다. 그렇게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기까지 이 친구들과 함께했다. 그중 특히 루카스와 에릭은 성격이 잘 맞아서 항상 함께했는데 시티 한가운데에서 폭행을 당한 나를 걱정해주며 근처 마트에 갈 때도 항상 함께 해줬고, 어떤 이야기를 하든 편견 없이 들어주었다.


락다운 기간 동안 우리는 잘 이겨냈다. 식탁에 앉아 떡볶이를 먹으며 온갖 카드게임을 했고, 낮부터 밤까지 와인에 스모크 치즈를 먹으며 영화를 보았고 때때로 각 나라의 정치와 문화에 대해 얘기했다. 그러는 동안 두 번의 생일 파티를 했고, 깊은 이야기도 나눴다. 게이라는 이유로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몰라 아침마다 엄마와 작별인사를 했던 이야기부터, 회사에서 당한 부당한 조치들 그리고 성적 트라우마와 외모 콤플렉스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무기력했을 때 그래서 더 생각이 많아지고 그 상처가 다시 올라오는 것 같을 때, 소소한 일상들이 이렇게 힐링이 될 수 있는 줄 이때 알았다.


하지만 이별은 다가왔다. 언제 코로나에 걸릴지 모르고, 코로나에 걸려도 호주에서 절대 책임지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며 불안에 떨던 루시 언니와 나는 결국 4월 말에 전세기를 예약을 했기 때문. 그러면서도 발걸음을 떨어지질 않았다. 떠나는 당일 아침까지도 수 없이 돌아가는 것이 맞는 선택인지 후회하진 않을지 고민했고, 공항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는 택시 아저씨가 당황할 정도로 울었다. 몇백 번을 생각하고 선택한 귀국행 비행기였음에도 친구들의 모습이 아른거려 입국장까지도 느릿느릿 걸었다.


1년이 더 지난 지금도 우리가 살던 노란색 집과 우리가 함께 밥을 먹던 낡은 식탁과 이 모든 것을 함께한 친구들이 그립다. 언제나 거친 말로 놀리지만, 그 안에는 누구보다 나를 아끼는 마음이 가득했던 사람 루카스. 얼마 전에 다시 돌아간 브라질에서 더 이상 상처 받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고, 부끄럽지만 나에게 정말 오랜만에 설렘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해 주었던 에릭도 자신의 꿈을 이루면서 잘 지냈으면 좋겠다. 그리고 사라바 난과 사미도 호주에서 자신의 일을 지키고 공정하게 그 일에 대한 보상을 받으며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같은 일을 하고도 월급이 3000불이 적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판데믹 상황 속에서 어쩔 수 돌아왔지만, 솔직히 그때를 생각하면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조금 더 친구들과 함께 했었으면 어땠을까라는 후회도 하고, 너무 쉽게 꿈을 포기하고 돌아온 내가 밉기도 하다. 그래도 정말 행운인 것은 이렇게 끝까지 고민을 하게 만들고, 지금까지 'What if?'라고 질문을 하게 만드는 친구들이 내 호주 일상에 있는 거다. 내년에는 원래 계획대로 멕시코에 가서 살아보려고 하는데 가능하다면 꼭 친구들을 다시 만나고 싶다. 만나서 고맙다며 찐-하게 안아주고 싶다.


"Obrigada, Lucas."

"Gracias, Erick."

그리고 고마워 루시 언니, H.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시티 한가운데에서 폭행을 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