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 카운터에서 휴지를 뺏겼다

사재기 열풍 속 우리는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다.

by 보통의 다지

락다운 한 달째, 호주 전역에서 사재기가 심해졌다.


마트에서 음식 때문에 사람들이 온 힘을 다해 싸우는 영상이 인스타그램과 트위터에 돌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정말 미친 듯이 쇼핑을 했다. 주로 집 안에 오래 둘 수 있는 가공식품들, 쌀, 휴지, 파스타면을 비롯해 당장 먹을 수 있는 빵과 고기까지. 청정우의 나라답게 매일 쉬지 않고 채워지는 고기 진열대는 더 이상 없었다. 조금이라도 늦게 가면 아주 비싸거나 아주 큰 덩어리를 빼고서는 품절. 처음 경험하는 락다운에 사람들은 패닉 상태였고, 마트는 카오스였다.


그리고 그 카오스에서 우리는 살아남아야 했다. 호주에 가서도 저녁은 밥을 먹어야 했던 우리는 쌀을 찾아 브리즈번 시내 전체를 돌아야 했고, 그마저도 한국 쌀과 비슷한 종류가 아닌, 대체로는 초밥용 쌀을 사야 했다. 홀홀 날아가는 것보다는 떡이 되든 죽이 되든 찰진 게 나으니까 (참고로, 초밥 쌀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세 명이서 브리즈번 시티를 나눠 돌면서 힘들게 구한 쌀

사재기 현상이 계속되자, 이를 통제하기 위해 정부가 나섰다. 주식(빵, 쌀, 면, 고기, 우유 등)과 필수 생활품(샴푸, 린스, 생리대, 휴지, 키친타월, 갑 티슈)에 수량 제한을 걸었고 주로 1인당 1개에서 2개까지만 구매가 가능해졌다.


당시 나는 H와 떨어져 루시 언니 집에서 친구들이랑 같이 살기 위해 미리 근처에 있는 마트에서 H와 장을 보기로 했다. 새로 가는 집은 시티 한가운데여서 분명 필요한 것들을 사지 못할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평소처럼 H와 카트 하나를 끌고 필요한 것을 차례차례 담는 도중, 점원이 휴지를 채워 넣는 것을 보았다. 이런 소중한 기회가 있나! 그동안 우리는 남은 휴지 롤 5개로 어떻게 남은 날들을 버틸지 큰 고민에 빠져 있던 터였다. 새로 이사 가는 곳의 친구들도 "노라, 휴지가 보이면 그냥 어떤 브랜드든, 얼마가 됐든 사 와줘. 고기도 종류 안 가릴게"라고 신신당부를 했었다. (집에 남는 음식이 없어 모두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카트를 그 자리에 박아두고 가장 빨리 뛰어 휴지를 각각 한 개씩 소중히 안고 카운터로 갔다. 오늘의 쇼핑은 대성공이라고 외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기쁜 마음으로 담은 휴지. 그리고 빠르게 동나고 있는 파스타면.



"미안한데, 너희 이거 못 사. 하나만 가져갈 수 있어."


"무슨 소리야, 1인 1개라고 되어 있는데."


"근데 너희 같이 왔잖아, 카트도 하나고."


"우리 따로 살고, 그냥 쇼핑만 같이 하러 온 거야. 이거 정말 필요해."


"미안, 룰을 룰이라서."


단호하게 말하며 손에 있던 휴지를 뺏어간 직원에게 우리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그 이후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대신,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같이 와도 주소지가 다르면 1개씩 살 수 있는데, 아마 이 직원이 뭔가 오해를 한 것 같았다)


'그래, 우리가 따로 살지만 같이 와서 카트를 하나만 끌어서 문제라는 거지?'


H에게 마무리 계산을 부탁하고 나는 다시 통로로 들어와 휴지를 들고 그 점원이 보이지 않는 셀프 계산대로 갔다. 그와 슬쩍 눈이 마주친 것 같았으나 나름 변장이랍시고 머리를 묶고, 겉옷을 입은 나를 다행히도 그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혹여 간신히 구한 휴지 한 개를 뺏길까 H와 매장 정문에서 만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 사연 많은 휴지 한 팩은 친구들에게 나보다도 더 환영을 받았고 우리 4명이 남은 날들을 화장실에서 행복하게 마무리를 하고 올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주었다. 친구들은 내가 휴지를 구하지 못해 키친타월이나 물로 해결해야 할까 봐 전전긍긍했다고 한다.


브리즈번의 사재기 열풍은 락다운이 시작되고 두 달 반쯤이 넘어갈 때쯤 잠잠해졌다. 하지만, 코로나가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면서 사재기는 비단 브리즈번에서만 끝나지 않고 시드니와 멜버른까지 번졌다. 호주의 인구는 한국의 2분의 1밖에 되지 않고, 한국의 72배가 되는 면적에서 나는 풍부한 자원들은 이들을 모두 먹이고도 남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카오스 속에서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저 눈앞에 보이는 것을 집어넣는 것으로 안심을 해야만 했다. 내가 조금이라도 늦는다면, 다른 사람들이 그 물건을 가져갈 테고 언제 그 물건을 다시 얻을 수 있을지 모르니까 말이다. 물론, 사재기에 동참을 한 적은 없지만 나 역시도 미리 필요한 건 사놔야 하나 잠깐 생각한 적은 있다.


그렇게 호주에서 강렬했던 락다운과 사재기에서 벗어나 몇 달 후 나는 한국에 돌아왔다. 하지만, 사재기의 '사'도 찾아볼 수 없는 편안한 쇼핑을 하면서도 나는 몇 달간 쌀이나 휴지를 보면 움찔움찔거려야 했다. 어이가 없었다.


내가 몇 통을 사든 이제 카운터에서 휴지 뺏길 일은 없는데 말이다.

습관이란 게 이렇게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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