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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의 다지 May 15. 2022

축하 대신 걱정을 받는 혼인신고

그 무엇보다 힘든 결정이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두 달만 더 지나면 남자 친구와 연애를 시작한 지 1년이 된다. 다른 커플들에게는 설렘과 즐거움으로 가득할 1주년이 국제 커플인 우리에게는 걱정거리가 되었다. 그 시기가 되면 학생 비자로 한국에 온 남자 친구가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 물론 이건 우리 둘 다 원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비자가 끝나는 7월 중순쯤 함께 호주에 가려고 했었다. 펜데믹과 함께한 호주 생활이었기에 그리 좋은 기억은 없지만, 함께 있으면서 둘 다 합법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아직 나의 스페인어 실력으로는 스페인에서 일자리는 고사하고 부모님과 일상적인 대화를 이어나가기도 버겁다) 


하지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본 면접에서 합격 연락이 왔고 그렇게 나는 한국에 남고 싶다고 말했다.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신청하는 것이 한국인인 나보다 몇 배는 더 까다로운 그는 이미 아이엘츠를 본 상황이었는데도 흔쾌히 나의 새로운 시작을 누구보다 축하해 주었다. 


경력을 쌓고 싶다고 몇 년간 한국에 남고 싶다고 한 것도 이기적이었는데 나는 남자 친구를 보내기도 끔찍이 싫었다. 방법이 전혀 없다면 장거리 연애를 하겠지만, 내 옆에 이 사람이 없다는 것을 상상할 때마다 숨이 막혀 왔다. 


남자 친구도 다행히 같은 마음이라며 한국에 남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제는 방법이었다. 현재 풀타임(?)으로 일하고 있는 한국 회사에서 비자를 스폰해 주겠다고 했지만 이민성에서 이미 5번을 거절당한 상태였고, 개발자로서의 경력이 5년이 되지 않아 워킹 비자를 신청할 수 없는 상태였다. 남은 방법은 2개 하나는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받아서 한 달 후 다시 한국에 방문하는 것이었고, 또 다른 하나가 바로 혼인 신고였다. 


하지만 워킹홀리데이 비자에는 큰 결점이 있었다. 바로 주 25시간만 일할 수 있고, 그러기에 주로 외국인들은 이태원이나 강남 식당에서 일한다고 들었다. 개발자로서 꽤 탄탄한 커리어가 있고 자기 일을 누구보다 끔찍이 사랑하는 그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행복하지 않으면 함께 살 나도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게 바로 내가 최후의 방법인 혼인 신고를 선택한 이유였다. 서류를 제출하면 약 10일 정도의 검토 과정을 거쳐 (문제가 없다면) F6비자가 나온다 (결혼 이민 비자) 그리고 이 비자가 있으면 한국에서 일을 구하는 데 있어 한국인과 동일한 권리를 누릴 수 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경제적인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데 안 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이 바탕에는 '한번 사는 내 인생을 투자할만한 사람'이라는 확신이 깔려 있었다. 


이 결정을 하기까지 스스로도 정말 많은 고민을 했고, 남자 친구와도 깊은 대화를 자주 나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 과정을 잘 모르기 때문에 축하가 아닌 걱정 어린 말을 했다. 특히, 남자 친구가 외국인에 4살 연하라는 것에 많은 걱정을 했다. 너무 즉흥적인 거 아니냐며, 어린데 나중에 후회하지 않겠냐는 말도 들었다. 부모님도 많이 당황해하셨다. 결혼식은 고사하고 일생일대의 결정을 너무 쉽게 결정한 거 아니냐면서 "나는 네가 한 번이라도 평범한 딸로 살았으면 좋겠다. 왜 자꾸 이상하고 힘든 길로 가려하니." 하시면서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이해한다. 

남들 눈에는 어린 마음에 지른 실수가 될 수도 있다는 거. 이러다 잘못되면 나중에 꼬리표처럼 나를 따라다닐 거라는 것도. 아직 한국 사회에서는 그 꼬리표가 나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도. 


하지만 나는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도, 그 행복의 중심에 이 사람이 있다는 것도 안다. 후회할 수도 있겠지. 그리고 분명 같이 살다 보면 싸우는 일도 있을 거다. 하지만 우리도 성숙한 어른이고 그 안에서 우리만의 방법을 찾아낼 거라 믿는다. 


그러니, 다음에 만날 때는 제발 내 선택을 응원하고 축하해주라. 

그러면 나 더 힘낼 수 있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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