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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의 다지 Oct 23. 2023

그건 처음 듣는 비자인데요?

출입국 사무소 직원도 모르는 비자로 거주 연장 신청을 하다.

스페인에서 온 그에게 첫눈에 반해 달콤한 연애를 시작한 지 7개월. 그의 학생 비자가 끝나가는 시점에서 우리는 장거리 연애를 할 것인가, 언제나 곁에 함께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했다. (**참고로 학생 비자가 끝나면 2주 안에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미 그를 마음에 둔 회사가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문제없이 E-7 (워킹 비자)를 받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지만, 이 비자를 받기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슬프게도 그가 일할 곳은 자본이 많은 튼튼한 기업이 아니었고, 우리는 이미 혼인신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F-6 (결혼 비자)가 아닌 그를 내 옆에 둘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얼마 후, 그는 나에게 소리를 지르며 드디어 방법을 찾았다고 말했다. 


그건 이름도 특이한 D-10-3 비자였다. 그의 간절함이 이 비자를 찾을 수 있게 빛을 비춰준 것일까. 기존 D-10 (구직비자)에서 파생되어 새롭게 만들어졌다는 이 비자는 AI, 로봇 같은 첨단 산업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외국인에게만 특. 별. 히 내어주는 비자라고 했다. 


결혼까지 했건만 식도 올리기 전에 언제 이 나라에서 쫓겨낼지 모르는 상황에서 몇 주째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던 우리는 아주 오랜만에 깊은 잠에 빠질 수 있었다. 


다음날, 정확히 어떤 자료가 필요한지 한 번 더 확인을 하기 위해 출입국 사무소로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통화를 하면서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오르지 않았던 적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드디어 방법을 찾았군요. 가지고 오세요.' 라며 조금은 다정한 말을 듣길 기대하기도 했다. 


"안녕하세요. (지난번 내용 설명 ~~~) 남자친구가 E-10-3 요건에 부합하는 것 같아 해당 비자를 신청하려고 하는데, (필요한 자료 설명 ~~)만 준비해서 가면 될까요?" 


"D-10... 뭐요? 한국에 있는 비자 맞아요?" 


"네! 홈페이지에서 찾아서 여쭤보는 거예요 (어이상실)."


"아, 저는 처음 듣는 비자라... 좀 알아볼게요 기다리세요." 


"(5분 후) 아, 구직 비자네요. 근데 첨단 산업이면 무슨 일 하시죠?"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예요. AI 쪽이라 가능하다고 되어 있는데, 맞나요?" 


"음... 네 뭐 일단 가져는 와 보세요. 너무 기대는 하지 마시고." 


감사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마지막 인사말을 고민하고 있을 때 이미 전화는 끊겨 있었고 우리는 출입국 사무소에서도 처음 듣는 이 비자에 모든 희망을 걸고 자료를 준비하기로 했다. 


해당 비자는 E-7 비자와 달리, 회사에서 바로 잘려도 비자가 유효한 6개월 동안은 한국에 체류를 할 수 있는 나름 괜찮은 비자였는데, 대신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인 내 남자친구가 이 회사에 필요한 이유에 대해 어마무시한 양의 자소서(?) 같은 것을 회사 HR팀에서 작성해서 제출해야 했다. 아, 회사 내의 모든 사람의 직급 및 연봉 그리고 회사 소개서 같은 것들도 함께 말이다. 남자친구를 동료 이상으로 아끼고 응원해 주던 HR 매니저 덕분에 이 모든 준비는 아주 수월하게 끝났고, 신청을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비자를 받게 되었다. 


그가 말하길, 완벽하게 서류를 준비해 갔음에도 출입국 사무소에서는 제출하는 그 순간까지도 겁을 줬다고 한다. '다 잘 준비해 오셨는데, 너무 기대는 하지 마세요. 요즘 웬만하면 외국인을 받지 않으려 해서.'라며. 


우리나라의 이민법이 약해지는 걸 원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치안면에서도 그리고 교육과 국방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문제가 터질 것을 다른 국가의 사례를 통해서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한국이라는 나라가 좋아서 이곳에서 학위를 받고 또 우리나라가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인재라면, 그리고 그 인재가 이 나라에서 아이를 낳고 평생 살아가고 싶어 한다면 어느 정도는 기회를 주는 게 맞지 않나 싶다. 


남자친구의 회사만 보더라도 안타까운 사례가 종종 있다. 특히, 그의 절친한 친구이기도 했던 동료는 카자흐스탄에서 와서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에서 대학원을 다니며 이 회사에서 백앤드 개발자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같은 대학을 졸업한 고향의 여자친구와 사랑에 빠졌고, 한국에서 일을 하며 정착을 하고자 했으나 학생 비자로는 일을 구할 수 없었고, 그 후 같은 D-10-3 비자로 일을 했으나 작은 스타트업이었던 이 회사가 E-7 발급의 기준 요건을 만족시키지 못하면서 결국 얼마 전 본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곳에서 잘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가끔 한국이 그립고 대학 동기들이 부럽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정말 속상하다고 했다. 


그렇게 쉽지 않았던 비자 신청. 하지만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이 비자는 6개월, 최대 1번 연장해서 1년까지만 체류 가능하다는 팍팍한 조건과 함께 꼭! 첨단 산업 분야에서 인턴십만 가능하게 했고 (남자친구는 4년 차 풀스택 개발자다...) 우리는 빠르게 결혼 비자를 신청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찾아야 했다. 


그리고 정말 신기하게도 그렇게 욕을 했던 이 D-3-10 비자 덕분에 F-6 비자를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받게 되었다. 바로, 학생 비자와 달리 이 비자로는 일을 할 수 있었고, 소득 요건에는 스폰서 (나) 뿐 아니라 본인이 직접 스폰서가 될 수 있다는 허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혼인신고를 한 지 6개월 만에 결혼 비자를 손에 쥐게 되었다. 이제 쫓겨날 걱정은 없는데, 슬슬 결혼식에 대한 압박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행복은 잠시, 또 다른 고난의 시작이다. 

이것이 국제 커플의 숙명일까? 



[사진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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