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이별을 위해 한 걸음 더 내딛기
끓어오르는 모정을 확인하기에 3주는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재작년 12월 마지막 날 가장 안전해야 할 공간인 집에서 꼬리뼈가 골절되는 사고를 겪었습니다.
3주의 병가는 편하게 앉을 수도, 누울 수도 없는 시간이었지만 짧았던 출산휴가 이후 처음으로 아이들과 햇볕이 환한 낮을 함께 보냈습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 아이에게 필요한 건 질적인 시간보다 물리적인 시간임을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퇴사는 단숨에 결정할 수 있는 그리 가벼운 일이 아닙니다.
아이를 덜 사랑해서가 아닙니다. 집이 아닌 회사에만 정체성을 찾는 워커홀릭도 아닙니다.
다만 15년 동안 회사형 인간으로 살아온 삶의 방식과 단 하나로 귀결할 수 없는 우리 가족 모두가 만들어 온 시간과 경험. 그리고 이미 익숙하게 자리 잡은 맞벌이의 수입도 간과할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실제적인 삶과 이상적인 삶의 균형을 찾아야 하는 또 다른 시간이 필요하다.
자녀와의 물리적인 시간이 더 필요한 엄마들이 활용할 수 있는 제도가 있습니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과 ‘육아 휴직’
원래는 육아 휴직과 근로시간 단축을 합하여 최대 1년이었는데 2019년 10월부터 최대 2년으로 기간이 늘어났습니다.
고민 끝에 딸의 초등학교 입학 시점과 함께 단축 근무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출근 시간을 앞당기고 하루에 5시간 일하기로 했는데 8개월간 단축 근무 제도를 활용한 사람으로서 제 개인적인 의견은 아주 매력적이고 완벽한 제도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회사마다 상황은 다 다르겠지만 단축된 시간 만큼의 업무 공백은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습니다.
감사하게도 3시간 동안 저를 도와 일해줄 직원을 채용했지만 한 사람이 8시간 일하는 만큼의 효율성을 만들기는 어려웠습니다.
단축 근무가 일하는 시간만큼 급여를 받을 수 있어서 육아 휴직보다는 경제적인 면에서 더 낫지만 약속한 퇴근 시간을 지킨 날 보다 지키지 못한 날이 더 많았습니다.
일하는 시간은 줄었지만, 회사가 내 업무의 양을 줄여주지는 않거든요. 결국 친정엄마께 아이의 하교를 부탁드리거나 아이들을 재우고 남은 업무를 하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팀의 업무가 한창 바쁜 시기에는 집에 와서도 휴대폰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계속 업무를 하다가 아이가 부르는 소리도 듣지 못했어요. 그 모습을 본 남편은 아이들과 더 시간을 보내기 위해 선택한 단축 근무가 오히려 아이들과의 시간에 방해가 되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저 또한 지칠 대로 지쳐갔습니다. 상사가 원하는 만큼의 속도는 나오지 않고 하루 집중하면 끝낼 일도 며칠이 걸리니 스스로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단축 근무를 잘 활용하려면 챙겨야 할 것 (Tip)
- 단축 근무는 만 8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의 자녀가 있는 남녀 근로자가 신청할 수 있습니다.
- 육아 휴직과 달리 여러 번 분할해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단 1회 기간은 3개월입니다.
- 회사와 충분한 상의가 필요합니다. 업무의 공백을 어떻게 채울 것인지 함께 의논하고 계획합니다.
- 단축된 시간 동안 할 수 없는 업무가 있다면 미리 회사와 이야기해서 업무 조정을 합니다.
- 약속한 시각에 퇴근이 힘들 수도 있으니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합니다.
- 업무의 특성상 회사가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회사가 허용하지 않을시 어떠한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회사와 협의가 필요합니다.
- 단축분만큼 국가에서 급여를 보전해주지만, 상한액이 있어서 100% 지원받지는 못합니다.
- 단축 근무 전처럼 업무 효율성을 발휘하기 힘듭니다. 이에 대해 인정하고 업무 압박감에서 좀 더 자유로울 수 있는 정서적 관리가 필요합니다.
1년간 하기로 한 단축 근무를 8개월에서 멈췄습니다. 지친 심신을 달랠 필요가 컸고 아이들과 좀 더 만족스러운 양적 시간을 가져야 했습니다. 그래서 육아 휴직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육아휴직도 준비가 필요합니다. 주어진 시간 안에 처리해야 할 업무가 있고 정해진 점심시간이 있고 정해진 퇴근 시간에 익숙한 여성들이 갑자기 생긴 여분의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지 못하면 그에 대한 죄책감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육아 휴직 전에 틈틈이 하고 싶은 일을 적었습니다. 물론 휴직의 가장 큰 목적은 자녀 양육이었기에 이 목적을 해치지 않으면서 얼마나 생산적으로 딴짓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이 시기에 남편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회사원 장세정으로서 육아 휴직은 제가 신청하고 얻는 것이지만 엄마로서 전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이기에 육아 휴직은 온전히 저만을 위한 시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가족 모두를 위한 시간이라 여기며 부부간에, 자녀간에 서로 기대하는 수준을 맞추기 위한 대화 시간은 꼭 필요합니다.
육아 휴직은 복직하지 않을 때를 대비할 좋은 기회입니다. 물론 휴직 안에 원하는 만큼의 대안을 만들기는 어렵겠지만 시작을 하느냐 마느냐의 차이는 크다고 생각합니다.
육아 휴직 5개월 동안 원했던 공부의 자격 과정을 마쳤고 이 일이 앞으로 또 다른 직업이 될 수 있을지 살펴보는 중입니다.
전혀 해보지 않았던 ‘복싱’에도 도전했습니다. 육아와 살림과 업무를 모두 챙겨야 하는 일하는 엄마에게 운동은 사치여서 엄두를 못 냈는데 해보지 않았던 것에 도전하는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무엇보다 정서적으로 안정되어가는 딸을 보면서 육아 휴직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고 있습니다.
서로의 부족함을 드러내고 인정하는 모든 시간이 아름다운 시간입니다.
육아 휴직을 잘 활용하려면 챙겨야 할 것 (Tip)
- 정기적인 업무뿐 아니라 비정기적으로 해야 하는 업무까지 꼼꼼히 인수인계를 해야 육아 휴직에 더 잘 집중할 수 있습니다.
- 육아 휴직을 하는 가장 큰 목적이 무엇인지 잊지 않으며 이 기간에 할 수 있는 일들을 적어보고 우선순위를 정해보세요.
- 맞벌이에서 외벌이가 되면서 바꿔야 할 습관은 무엇인지,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고 있었다면 휴직 기간 어떻게 할 것인지 남편과 논의가 필요합니다.
- 늘 마셨던 커피 한 잔을 참아야 할 때 웃어넘길 마음의 여유를 비축해두세요.
- 휴직 기간 개인 성장의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남편의 지지와 이해를 요청하세요.
- 안전한 퇴사를 준비하며 확장할 수 있는 커리어를 계획해보세요. 전문가를 통한 커리어코칭도 매우 도움이 됩니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여성이라면 경기도 워라밸링크를 통해 무료 커리어코칭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 양가 부모님의 도움을 많이 받은 워킹맘이라면 그동안 함께 만든 시간에 대해 감사를 표현해보세요.
엄마로서, 여성으로서 끊임 없이 성장을 꿈꾸는 당신을 응원합니다. 다음 레터에선 커리어 코칭을 받은 경험을 토대로 보유하고 있는 경력과 미래 브랜딩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지 찾아가는 사례를 공유할게요.
아름다운 이별, 안전한 퇴사를 위한 준비는 계속 됩니다.
글 : 장세정 여자라이프스쿨 연구원
(IT 글로벌 기업 교육개발자)
기획 : 여자라이프스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