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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단절 안에서 성취감 찾기




예기치 않게 다시 시작된 경력단절 기간 동안 제일 힘들었던 것은 성취감의 부재와 불안감과 싸우는 일이었다. 일을 다닐 때는 주어진 일을 잘 해내면 바로바로 피드백이 주어지기에, 무언가 큰일을 해내지 않더라도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집에 있으니 해도 해도 끝나지 않는 집안일만이 나를 반길 뿐, 그 어디에서도 성취감을 느낄 수 없었다. 점수가 올라가지 않는 <무한의 계단>을 하는 기분이랄까.(<무한의 계단>은 남자아이들이 즐겨하는 모바일 게임이다. 끊임없이 계단이 나오고, 계단을 오를 때마다 점수가 올라간다.) 아이들이 즐겨하는 게임에서 점수를 빼버리면, 아이들이 게임에 중독되는 일은 없지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도 해본다. 혹자는 아이들 커가는 모습에서 성취감을 느끼면 되지 않느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엄마로서 뿐만 아니라, 나로서도 우뚝 서고 싶다는 욕심이 있는 사람으로서 내 이름 석 자로 성취감을 느끼는 일은 중요했다.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나의 성취감 획득 게임이 시작되었다.


처음 시작한 것은 일기였다. 성취감을 느끼기 위해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타이탄의 도구들>이라는 책을 읽다가, 팀 페리스가 ‘5분 저널’이라는 일기를 쓴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나도 활기찬 하루를 만들기 위해 5분 저널을 써보기로 했다. 5분 저널에 들어가는 내용은 내 마음대로 바꿨지만, 아침저녁으로 일기를 쓴다는 방식은 유지했다. 틀은 만들었으나, 그냥 쓰면 내 성격 상 오래가지 못할 것이 뻔했다. 그래서 블로그에 매일 일기를 올렸다. 이웃 수도 적었고 아무도 반응을 해주지는 않았지만, 누군가 보고 있다는 생각에 꾸준히 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이웃 수도 늘어나고 시간이 지나니, 사람들이 댓글을 달아주기 시작했다. 꾸준히 하는 게 대단하다던가, 일기 양식이 좋다거나 하는 반응이 생기니 성취감과 함께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동기부여도 됐다. 그리고 점점 일기 양식을 달라고 하는 요청이 늘어나, 5분 저널 프로젝트까지 운영하게 되었다. 그렇게 성취감이라는 성에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아 올렸다.


일기 쓰기와 함께 내 성취감의 벽돌이 되어 준 것은 강의 듣기였다.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무언가 달성하는 일도 아닌 강의 듣기가 어떻게 성취감을 느끼게 해 주는지 의아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장 내가 스스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없는 상황에서, 강의를 들으며 지식을 습득하고, 매 강의마다 과제물을 통해 작은 결과물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나에게는 성취감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강의 수강 일정을 계획하고 하나씩 하나씩 수료해 나가다 보면, 게임 레벨이 올라가는 듯한 묘한 쾌감을 느낄 수 있다. 혼자서 계획하고 공부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꼭 강의를 들을 필요는 없다. 본인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계획대로 실행하면 된다. 다만, 나는 혼자서 꾸준히 하는 것이 어려운 사람이고, 공부도 함께 할 때 신나서 더 열심히 하는 성격이다 보니 강의를 활용했다. 계획을 실행하는 것은 쉬우나 계획을 세우는 것이 어렵다면, <딱 1년만 계획적으로 살아보기>라는 책을 참고하기를 추천한다. 공부 계획에 관해서는, 오래되어 절판된 책이지만 <새벽 2시에 일어나면 뭐든지 할 수 있다!>라는 책을 추천한다.


마지막으로, 내 성취감을 담당해준 것은 서평단 활동이었다. 나는 자기 계발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후로 책을 사 모으는 것을 취미처럼 즐기고 있었다. 다 읽지 못해도 한 달에 적게는 십만 원에서 많게는 이십만 원 가까이 책을 사들였다. 그러다 몇 달 전, 우연히 읽고 싶었던 신간 도서의 서평단 모집글을 보게 되었다. 책도 공짜로 읽고 서평까지 작성하니, 기록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나에게는 일석이조의 기회였다. 비록 그 책의 서평단 명단에는 들지 못했지만, 그 일을 계기로 적극적으로 서평단 신청을 하게 되었다. 첫 서평단 책을 오자마자 읽고 서평을 남기니, 다음 책은 당첨이 쉬웠다. 그렇게 한 권, 한 권을 넘어 하루에 두 권, 세 권까지 당첨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출판사에서 서평 제안 메일을 받았던 날은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며칠 전에는 블로그 방문자가 갑자기 폭발적으로 늘었다. 이상하다 싶어 확인해보니 네이버 메인에 내 서평이 올라가 있었다. 그때 느낀 성취감과 뿌듯함은 퇴사 이후, 단연 최고였다. 게임으로 치자면 보스몹을 만나기 직전의 단계에 간 기분이랄까. 이 판만 깨면 보스를 만날 수 있다는 설렘과 기대감. 과연 내가 이 판을 깰 수 있을지 궁금하다.


전업주부라고 성취감이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물론, 사람마다 차이가 있기에 나처럼 일부러 만들지 않아도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에서 성취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성취감의 부재로 인해 무기력감을 느끼고 있다면, 적극적으로 성취감을 만들 필요가 있다. 이미 한 번 7년이 넘는 경력단절 기간을 겪었기에, 성취감이 없다고 주저앉아만 있다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을 넘어 좌절감만 쌓여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 번에는 내 손으로 만들어 가기로 했다. 엄마의 성취감 게임은 게임의 퀘스트도, 레벨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 모든 장애물을 뛰어넘어 마침내 보스몹을 물리쳤을 때, 느낄 성취감은 그 무엇보다 크지 않을까. 이 모든 과정을 게임을 한다고 생각하고 접근한다면, 이 또한 즐길 수 있지 않을까.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처럼.




글쓴이 : 임혜경 여자라이프스쿨 원구원(커리어코치)

원고 기획 : 여자라이프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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