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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meralda Sep 01. 2020

너무 복잡해서 위로가 되는 앨범, 혁오 <사랑으로>

혁오(HYUK OH)의 정규앨범 <사랑으로(2020)>를 들어봅니다.

Morning sun set back to normal Waiting is always here it never ends But what are we waiting for The end is here another Beginning of the end  

평범하게 돌아온 아침 일상, 기다림은 항상 여기서 끝나지 않아 하지만 우리가 무엇을 기다리고 있을까 . 종말은 다른 곳에 있지 바로 끝의 시작에

- 1번 트랙 [Hey sun]


기괴한 행위 예술을 볼 때에나, 혹은 문장 하나하나가 행위 예술 같아 보이는 어려운 철학책을 읽어 내려갈 때 드는 복잡함을 혁오에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은 행운입니다.  


 [26]이라는 이전 앨범들과 이어지는 시리즈가 나올 줄 알았는데, 왠지 그들은 숫자 대신 ‘사랑으로’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많은 팬들이 이 의중에 대해서 궁금해하고, 한편으로 감탄했습니다. 확실히 혁오의 음악적 행보로 인해서 대중들 또한 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많이 변해졌음을 느낍니다. 그들의 복잡함을 하나하나 해부하지 않으려고 하는 그들만의 존중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혁오가 음악시장에 가져다주고 있는 패러다임은 계속되고 있음을 이 또한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게 무슨 내용인데?”


명확한 근거를 도출해내고 싶은 마음은 늘 성급한 우리들에게 디폴트 값으로 존재합니다. 꼭 어떻게든지 이 앨범을 뭐라고 규정하고 싶어 하는 대중들에게 혁오는 반항하듯 점점 더 복잡하고, 순수한 본성의 재료들만으로 표현해내고 있습니다. 저에게도 어려운 이 앨범을 리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이 앨범을 추천합니다


 현대미술의 어려운 감상도 즐기는 사람

누군가가 필요하지만 너무 따뜻한 위로는 싫은 사람

 꽉찬 밴드 사운드를 선호하는 사람



About the TRACK


01. Help

 ‘새들이 여깄을 피’라고 들리는 기묘한 첫 소절을 듣고 신기한 한국어 가사인 줄 알았는데, ‘take a look’이 들리는 순간 오, 아니구나! 했다.

 이전 정규앨범 [23]에서는 그래도 수록곡 반 이상이 한글 노랫말이었는데, [24]에서는 그 수가 한 곡으로 눈에 띄게 줄었다. 다음 앨범에서는 아예 알아들을 수 있는 곡이 없어지는 것은 아닌가 전전긍긍했는데 고맙게 이번 앨범은 2곡의 자비를 베풀었다. 나 같은 리스너들에게 신토불이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밴드다.

 혁오의 음악에서 보사노바 장르는 처음 접했다. 보사노바 리듬의 쉐이커가 나오다가 기타가 나오면서 본격적인 '혁오화'가 시작된다. 용수철 같은 사운드 이펙트와 보컬 코러스, 플룻 사운드가 뒷받침해주는 것을 들으며 진정 도전적인 앨범일 것이라고 예상하게 되는 첫 트랙이었다. 기분 좋은 신선함으로 시작한다.


02. Hey sun

 갈수록 이들의 음악에는 드럼 사운드가 점점 더 둔탁하고 선명하게 들린다. 다른 악기들보다도 리듬 사운드를 의도적으로 아날로그하게 뺀 느낌이 드는데, 개인적으로 리듬 악기가 선명하게 들릴 때에는 곡에 현실감이 더해진다고 생각한다. 공간감을 많이 주어 몽롱하게 믹싱을 하더라도, 리듬만은 선명하게 살아있다면 다른 차원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조금 진정시켜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상에 눈이 멀어있는 우리에게 현실을 절대 잊지 말라는 외로운 힌트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노래는 현실과 이상을 초(秒) 단위로 왔다 갔다 하며 여행하게 만든다. 그것은 가사에서도 나타난다. 날 구원해줄 아침해를 기다리면서도 밤의 익숙함을 벗어나기는 싫어하는 듯한 마음으로 느껴졌다. 오혁은 아마 인간은 언제까지 이렇게 변덕스러운 여행을 해야 하는 것인지 해에게 한탄하며 이 곡을 써 내려갔을지도 모르겠다.  


03. Silverhair express

 오혁이 한국어 영어 중국어에 이어, 새로운 언어를 시도했구나. 또다시 깜빡 속아 넘아갈 뻔했다. 보컬은 신이 내린 최고의 악기라고 하지 않았던가. 보컬이 악기 역할을 톡톡히 하는 곡이다.

 이 곡으로 가사가 짧은 노래는 깊은 흔적을 남긴다는 사실을 확실히 굳힐 수 있다. 우효의 [teddy bear rises]처럼. 그리고 한 가지 확실해진 사실은 혁오는 플룻 처돌이다.


04. Flat dog

 'Flat dog'는 악어를 가리키는 말이다. 정글의 무법자인 악어가 사실 납작한 개였다니, 생각에 잠겼다.


05. World of the forgotten

 강물은 움켜쥔다고 그 강물의 의미나 흐르는 성질 자체가 변질되지 않는다. 내가 움켜쥐어도 계속 흐르고 있고, 흐르는 것을 흐르게 두면 그것이 강물의 정체성이 되는 것이다. 이번 트랙까지 들으니 이 앨범을 말로 리뷰하는 것의 의미를 잃어버린 것 같았다. 드디어!

 어떤 책을 읽을 때 그것이 나에게 주는 교훈이 없는 채로 에필로그가 끝날 때도 있다. 글을 쓰는 사람도 그것을 원치 않는 글은 존재한다. 그냥 읽히는 대로 읽어나가는 것. 그것으로 다인 작품들을 우리는 그냥 그렇게 소비해야 할 의무가 있다. (아마 혁오 스스로도 지금의 혁오를 규정지을 수 없을 것이다.)


06. New born

 이 노래도 그렇고, 바로 전 트랙도, 그 전 노래도 마찬가지로 내가 듣기에 오혁은 왠지 인생이라는 굴레에 이미 설렘 따위는 더 이상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나 스스로의 과거를 망각하고, 나 또한 누군가에게 잊히고, 어떠한 존재감이 무뎌지는 것에 무뎌진 사람처럼 그렇게 무기력한 모습. 다만 그 모양새가 낙담도, 희망도 아닌 그 언저리에서 원을 그려 돌고 있는 것 같다. 그 원 안에서 애써 어떤 힘을 내보려 한다거나, 달린다거나, 함께 손을 잡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렇게 원을 그리며 돌다 보면 그게 형태가 되는 것이고, 그게 다 닳아서 없어지면 그걸로 그만인 것이다. 또, 하늘 위를 바람 부는 대로 떠돌다가 결국에는 땅으로 내려와 긁혀 닳아 멈춰버리는 비행기 같기도 하다. 그렇게 닳아버리는 것으로 다시 태어나고, 또다시 닳아버려서 삶의 의미 자체를 그 정도로 규정지어버린다. 그렇게 내 삶의 스크래치를 인정하는 것이 가장 큰 삶의 의미가 되지 않는가.



 

정말 친숙해지기 어렵다.

 혁오는 우리에게 결코 가깝고 친숙한 인물은 아닙니다. 항상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처럼 우리 곁에는 늘 있지만, 왠지 친숙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어딘지 모르게 나와 비슷한 사람일 거라는 동질감을 은은히 풍기기도 하죠.

 신이 혁오를 만들 때 외로움 한 꼬집과 태평함 한 꼬집과 분노 한 꼬집과 똘끼 한 꼬집과…. 하여튼 뭔가를 너무 많이 넣으신 것 같습니다.


 '톤빨 세대'인 요즘, 톤이 좋은 가수들은 우후죽순으로 나옵니다. 중요한 건, '오랫동안 듣고 싶은가'인데, 자연스럽지 못하고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톤은 금방 질립니다. 그것은 몇 소절 지나지 않아 발음으로 판가름 납니다. 발음에 구애받지 않고 한 가지의 톤으로 이어지는 목소리는 몰입감에 방해를 주지 않기 때문에 오래오래 들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오혁의 보컬은 그런 점에서 지속적으로 듣고 싶어 집니다.

갈수록 혁오의 앨범에서는 고음이 적어지고 있습니다. 보컬의 다이내믹(강세의 다양성)이 점점 없어지는 경우는 두 가지인데, 고음이 필요 없거나, 고음보다 더 중요한 것을 곡 안에 담았기 때문입니다. 오혁의 경우 둘 다라고 생각됩니다.

 

 사실 혁오의 [사랑으로]를 리뷰하면서 많이 피곤해진 것도 사실입니다. 한 곡 한 곡의 악기 구성이 복잡할뿐더러 가사 또한 한 번에 이해되는 가독성은 매우 낮기 때문에 한 곡을 몇 번이나 다시 들으며 여러 가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또 단어로 쪼개어 의미를 찾아보며 다시 여러 생각으로 뻗어나가는 일을 6번씩 하는 것은 여간 어지러운 작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 제목을 그렇게 지었는지 숨은 의미를 알고 싶어서 단어 백과나 다큐멘터리, 혁오 인터뷰를 다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나 혁오는 그리 친절한 아티스트는 아니었습니다. 정보가 없는 채로 리뷰를 하려니 나의 주관적인 감상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그것 또한 최대한 창작자의 의도에 부합하고 싶어서 쉽게 써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고행을 충분히 해낼 가치가 있는 앨범이라는 것은 단언할 수 있는 것이, 곡마다 ‘혁오만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아이덴티티가 확고함으로 단연 독보적인 앨범이었습니다. 어쩐지 음악계의 혁명운동가와 같은 면모도 보이는데, 한편으로는 이런 리뷰들이 많을수록 혁오가 하고 있는 순수한 음악연구가 변질될까 봐 두려운 노파심이 들기도 합니다. 대중 눈치 보지 않고 오직 자신의 양심만이 판사가 되어 깊은 곳으로 파고 저울질하고 또 파내는 열정만을 따르는 와중에, 자신이 이 시대의 음악발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게 되는 순간 다른 뮤지션들과 똑같은 실수를 범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유니크한 뮤지션인 만큼 누군가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으면서, 앞으로도 여전히 인터뷰가 어색하고, 자신을 소개하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부끄러운 그들이기를 팬으로서 소망합니다.


 이 작품이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회한들이 첩첩 쌓였으랴. 대중이 쉽게 이해하고 부를 수 있는 노래는 얼마든지 사랑받기 쉽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이해할 수 없는 뮤지션이 있다면, 그 동력이 오직 순수함이라면, 그걸로 누군가에게는 위안이지 않을까요.


작가의 Pick   

 Hey sun, New born



혹시나 [사랑으로] 앨범 한 모금이 당신의 취향에 맞았다면, 반드시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부른 [New born] 무대 영상을 보기를 바랍니다. 마치 지구종말을 맞으며 묵묵히 노래를 이어가는 초연한 태도의 그들을 볼 수 있습니다. 덧붙여 2020 혁오 월드투어 공연 영상 중 오프닝이었던 [Hey sun] 영상도 추천합니다. 미세먼지 가득 낀 오줌 필터 속 아득히 보이는 야생 괴도들의 실루엣이 점점 선명해지고 곧이어 막이 걷힐 때 랜선으로도 충분히 느껴지는 환상적인 해방감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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