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smeralda Sep 04. 2020

016# 여름아 나 젤라또도 못 먹었는데 가는 거야?

 언니가 오늘도 먹었다며 보내준 아이스걸크림보이 가게 젤라또 사진을 받고, 아 오늘 언니한테 답장 써야겠다 결심하고 캡슐 하나 내려서 노트북 앞에 앉았습니다. 저는 며칠 전에 새언니한테 다이어트 아이스크림을 기프티콘으로 받아가지고, 고거 야금야금 먹으면서 언니의 젤라또 사진을 봐서 그나마 쬐끔 덜 부러웠습니다. 이거 생각보다 *친놈이에요 언니. 칼로리에 비해 맛의 가성비가 너무 좋아서 한 입 먹고 깜짝 놀랐어요. 저희 엄마 말마따나 참 다이어트하기 좋은 시대입니다.


젤라또만큼은 절대 못하지만 그래도 대체품의 느낌 없이 오롯이 맛있는 맛입니다. 저만큼 먹었다는 걸 말하려고 첨부합니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 말하는 언니의 글은 들떠있는 것 같아 좋아요. 그중에 제 앨범을 이야기해준 게 감동이에요. 정말 고마워요. 글에서 마지막에 언니가 말한 부분 있잖아요, 어떤 부분은 자신과 같아서 그걸 상대가 좋아해 주면 궁전의 정원을 가꾸어낸 정원사처럼 흐뭇해진다고. 언니가 지어준 문고리를 저는 꽤 많이 잡았던 것 같아요. 책이랑 영화랑 이제는 곧 젤라또까지! 젤라또가 제일 기대되는 건 어쩔 수 없어요.. 이제는 다른 작품들을 봐도 이건 누가 좋아하겠다, 이건 누가 좋아하겠다, 싶다가 '이건 강다은이다' 싶은 거 가끔 마주치더라고요. 언니를 많이 모르지만, 어떤 것들에서는 언니 냄새가 나요. 그런 것들을 자주 저도 챙겨줄게요. 오늘은 혜원이 편에 대신 저희 동네 빵과 언니가 좋아하는 [콜미 바이 유어 네임] 원작 소설을 보냅니다. 맛있게 읽어주세요!


 저 요즘 코로나가 준 강제 휴식을 원치 않게 보내고 있는데요, 덕분에 책을 더 많이 읽게 되었습니다. 드라마도, 영화도요. 한동안 끊었던 음악 감상도 많이 하게 돼서, 돌연 앨범 리뷰까지 브런치에 연재하게 되었는데 따로 카톡으로도 말했지만 제가 다시 본격적으로 글을 쓰는 것이 여간 어색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인생이었는데 분명. 그러다 연필을 잡으면 괴로운 나날들이 있다가, 이제는 세월이 아까워서라도 써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집 밖을 나가지 않아도 생각은 넘쳐흐르고, 새로운 경험 없이도 낡은 기억들로 쓸 수 있는 이야기들이 많더라고요. 그 기억들을 주우러 깊숙한 다락으로 가는 일이 두려운 거지 충분히 할 수는 있는 일들이었어요. 곡을 쓰지 않은 날 수가 신기록을 세워가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는 것을 지금 쓰면서 조금 깨닫네요. 어떤 이야기는 곡으로 꼭 써지지 않으면 안 되는 이야기들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곡이 완성됐을 때 어떤 불행이나 아픔이 겹쳐 보이게 되는 불편함이 있더라도, 음이 붙어야만 하는 시간들이 있어요. 그 기준도 매우 주관적이고, 개인적이라 그건 어떤 노래라고 규정짓기는 어렵겠지만 분명히 있어요. 제 노래 중에서 3년 전쯤 만든 '차트'라는 노래를 한 번 얘기해볼게요.


모처럼 쉬는 날 근처 서점에 갔는데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건 best seller shelf

서점에 있는 그 많은 책 중 선택받은 단 50권 


둘러보고 나온 거리엔 흘러나오네

오늘도 차트 1위 한 가수의 노래네

옷 가게 몇 곳 지나지 않아서 들리는 또 그 노래 


미술 학원 광고엔 대학 간 애들 이름만

꿈만 꾸는 거북인 받아줄 수 없어 돌아가래 


선택하기 쉬우라고 만든 차트에 어리숙한 우린 들 수 없다네

선택받기 어려운 기대 우린 왜 또 굳이 그 안에 들려 하나 


매일을 기도해 내가 변하지 않기를

순순히 이 시대를 따라가지 않기를

팔리는 음악 말고 살리는 음악을 만들어야 해 

1등만 좇다가는 분명 중요한 걸 잃겠지

꿈만 꾸는 거북인 잘하고 있어 그게 맞아 


선택하기 쉬우라고 만든 차트에 어리숙한 우린 들 수 없다네

선택받기 어려운 시대 우린 왜 또 굳이 그 안에 들려 하나

선택하기 쉬우라고 만든 차트에 어리숙한 우린 들 수 없다네

선택받기 어려운 시대 우린 왜 또 굳이 그 안에 들려 하나  


진심이 사심이 되니 자극은 비극이 될 뿐이야


 처음 들어 본 노래인데? 했겠죠. 맞아요. 아직 제 드라이브에서 연명하고 있는 곡들 중에 하나인데요, 몇 년 전에 앨범 수록곡을 위해서 회사 사람들과 같이 회의했을 때 1차에서 잘린 노래였어요. 가사의 흐름처럼 서점에 가서 책을 보다가 나와서 옷가게를 지나치고 바로 옆의 미술학원 배너를 보면서 '뭔가가 잘못됐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바로 메모장을 켜서 가사를 써 내려갔어요. 가요 탑 백의 전채 재생 배너는 없어져야 해요. 청자가 어떤 노래를 듣고 싶은지 본인도 알고 취사선택할 수 있어야 하는데 스트리밍 플랫폼은 그것들을 다 필요 없게끔 만들고 있으니까요. 미술학원의 합격자 대자보는 어째서 '패배감'이라는 마케팅을 쓰는 걸까요. 사회적 기준을 만들어서 그 기준 위로는 잘 살고 있는 것이고, 그 기준 이하는 스스로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게끔 만드는 사회에 제기를 들고 싶었어요. 그렇지만 너무 무겁지는 않게 멜로디도 쉽고, 편곡 구성도 위트 있게 구상했었어요. 하고 싶은 이야기를 센스 있게 만들면 사람들은 좋아할 거라고 생각해서 자랑스럽게 꺼낸 카드였는데 그건 제 생각일 뿐이었어요. 모두가 숨죽여서 가이드를 듣고, 다 끝났을 때 사람들의 얼굴을 봤는데 떨떠름했어요. 신인의 이미지에는 너무 주관적이고 센 주제라고 하셔서, 더 이상 피력할 수 없었죠. 어쨌든 너희도 차트에 들어야 할 것 아니냐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어요. 감동이 되거나 후킹(hooking)하거나 해야 하는데 그 둘 중 어느 것도 아니었거든요 이 아이는 그냥 불편하게 다가왔던 거예요. 회의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빨간 버스 안에서 차오르는 거절감을 결국 울음으로 쏟아내는데, 동료 가수가 버스에 올라탔어요. 저만 봤는데 그 친구는 전 달에 낸 정규앨범이 무척 성과가 좋았었어요. 그 친구 얼굴을 보는데 더더욱 제 자신이 초라해져서 집에 도착할 때까지 얼굴을 창문과 좌석 사이에 묻고 갔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초라할 필요가 없었는데 말이에요


 또 다른 곡 중에서 <여행>이라는 곡이 있어요. 친했던 사람이랑 함께 썼던 곡인데 이제는 더 이상 얼굴을 볼 수 없는 사이가 되어버려서 편곡까지 마친 곡이지만 끝내 세상에 나올 수는 없게 되었어요. 함께 바다를 보러 갔을 때의 추억을 기록해보고자 쓴 곡이었어요. 멜로디도 곡 분위기도 역대급으로 잘 뽑혀서 정말 아끼는 곡이었는데, 안타깝게 되었죠. 근데 사실 작사 작곡은 다 제가 한 곡이라 혼자라도 내보라면 그럴 수 있겠지만, 이게 참 그 낡은 시간으로 들어가서 혼자 그 기억을 파헤치고 있는 게 많이 힘들더라고요. 너무 불편한데, 또 꼭 나와야 하는 곡이라는 생각도 동시에 들어요. 작가들도 마찬가지겠죠? 이처럼 곡 작업하는 내내 괴로워서 견딜 수 없을 지경이 올 때에는 결국 피아노를 덮어두는 거예요 오늘까지. 그래서 여태껏 글을 쓰는 것도 곡을 쓰는 것도 안 하고 있었는데 이제 둘 다 시작해야 할 시기가 온 것 같아요. 그렇게 저는 써야만 하는 숙명을 지닌 전사인 양 없는 사명감을 만들어 내서 스스로를 괴롭힙니다. 오늘 글이 신기하게 뻗어가네요? ㅋㅋㅋㅋㅋ


 실수로 살짝 벌어진 냉동실 문 때문에 적절히 녹아있는 젤라토를 숟가락으로 부드럽게 뜰 때의 그 희열처럼, 모든 것이 약간씩 쉬워진다면 더 아름다울 수 있을 인생이, 늘 숟가락이 부러질 정도로 딱딱했네요. 스트레스가 한계치를 넘으면 냉장고 플러그를 확 뽑아버려서 다 녹게 만든 다음 모조리 후루룩 마셔버릴 수도 있어요. 다행히도 아직 그런 적은 없네요. 꽁꽁 얼었을 때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제 뺨을 후두려 때려줘서 정신 차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제 뜨거웠던 여름이 가고, 가만히 있어도 꽤 시원해졌어요. 그래서 내일은 청계산 오르려고요. 오르면서 올여름에게 미안했던 것들을 두고 오려고요. 모든 짜증을 더위 탓으로 돌리고서, 몸 관리한다고 젤라또 한 컵도 먹지 않았던 나를 용서해줘! 여름아! 내년에도 우리 얼굴 봐야 하잖아!


P.S. 가을방학 신보가 5년 만에 나왔어요. 제가 정말 애정 하는 가을방학이 5년 만에 정규앨범을 냈다는 건, 뭔가 대단한 가을이 왔다는 거예요. 가을에도 같이 글 써요

매거진의 이전글 015 내가 좋아하는 것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