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하다, 애달프다, 마음이 쓰인다. 셋 중 내 감정이 무엇이었을까 생각을 하다가 셋 다 해당한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어제 나의 아홉 살짜리 조카를 떠올리며 들었던 생각이다. 그와 동시에 그 나이만 했을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리며 든 생각이기도 하다.
임신, 출산, 육아로 인해 약 10년 정도 일을 그만두었던 언니가 직장을 다시 구하려 아침 일찍부터 교육을 받으러 가야 하고, 형부도 아침에 출근을 늦출 수가 없어 조카가 아침에 혼자 등교를 하게 되었다. 초등학교 1학년도 아닌 2학년이고, 학교는 집 바로 앞에 있어서 가는 길이 험난하지는 않겠지만 여태까지 한 번도 조카 혼자 등교를 시킨 적이 없으니 언니와 엄마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나는 2학년 정도면 가까운 거리의 학교는 혼자 갈 수 있을 것이고, 조카가 야무진 아이라서 큰 걱정은 안 되었는데 말이다.
보통은 아침 출근길마다 다자 통화를 하는 탓에 어제도 언니와 조카, 나, 엄마 셋이 할 수 있는 통화를 거니 엄마만 받는다. 맞다, 언니는 교육 갔지.
“OO이랑 아까 언니가 집에 두고 간 옛날 폰으로 영상통화 했는데 처음엔 괜찮다더니 조금 지나니까 「할머니 근데 기분이 좀 이상해요.」라고 하더라고. 내가 『아까는 기분 괜찮지 않았어?』 그랬더니 「근데 기분은 변할 수 있는 거잖아요.」라고 하더라고. 네가 전화 좀 해봐.”
“근데 기분은 변할 수 있는 거잖아요.” 제법 성숙한 아홉 살 조카의 이 말이 나에게 같이 어렸을 때의 기억들을 모래바람처럼 몰고 왔다. 맞벌이를 하시던 부모님의 퇴근은 언제나 나의 하교 시간 보다, 학원이 끝나는 시간보다도 늦었고, 나이 차가 많이 나던 언니들은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이라 집에 늦게 오거나 따로 떨어져 산 시간이 더 길었다. 그렇게 혼자 있는 늦은 오후쯤이면 나는 자주, 아무도 없는 안방에서 침대에 기대앉아 TV를 봤다. 내가 좋아하는 만화를 볼 때가 대부분이었고, 더러는 내가 좋아하는 과자를 먹으면서 만족감이 큰 시간이기도 했다.
그러다 만화가 끝나고, 리모컨으로 몇 개 없는 채널을 아무리 돌려보아도 재미없기만 한 뉴스나 해외 프로그램에 자막만 달아서 송출하던 어른들의 프로그램들을 몇 바퀴 돌다 보면 풀 죽은 얼굴로 그냥 TV를 꺼버리기도 했다. 그러고는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가만히 있는 것이다.
큰 시계의 초침이 성큼성큼 움직이는 소리, 작은 시계의 초침이 큰 시계의 박자와 애매하게 어긋나며 째깍째깍 초침을 움직이는 소리, 냉장고에서는 어쩌다 한 번씩 위잉하는 소리, 여름에는 선풍기 날개가 돌아가는 소리, 내가 침대에 기대면 옷과 침대 커버가 맞닿으며 내는 부시럭거리는 소리. 이런 것들이 적막을 조금씩 채우는데 그런 소리를 듣고 있자면 왠지 더 적막함이 소리로 들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 고요에서 가장 주요한, 공간을 채우는 노르스름한 햇빛. 해질녘 노을처럼 강렬하지도 않고, 오전의 것처럼 하얗지만은 않은 누르고, 왠지 보드라워 보이는 그 누른 빛이 어린 나의 눈빛에는 쓸쓸해 보였다. 괜히 주변의 물건을 이것저것 뒤적거려 보기도 하고, 엄마의 바늘 광주리에서 실과 바늘을 꺼내어 없는 솜씨로 이것저것 꿰매어 보기도 하면서 심심하게 그 시간들을 보냈었다. 장난감도 없고, 친한 친구도 없던 그 시절의 나는 그랬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오후 시간은 어떻게 해야 잘 보내는 건지 잘 모르고 있다.
어쩌다 한 번씩 부모님 두 분 모두 집에 늦게 들어오시는 날이면 또 다른 느낌으로 쓸쓸했다. 강한 백색 전구로 거실은 환하게 밝혀져 있지만 해가 져 집 곳곳이 어두웠던 그 느낌. 오후보다는 TV에서 재밌는 프로그램을 몇 개 더 하기는 하지만 왠지 엄마가 보고 싶어지는 느낌. 엄마 한 사람이 없는 것인데도 집의 온도가 더 낮고, 저 방문을 열면 왠지 귀신이 서있을 것 같기도 하고, 나 혼자 있는 게 그저 너무 싫은 그 느낌. 어렸을 때 체득한 외로움은 그런 모습이었다. 어린 시절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이 적막한 집안에서 내 눈치를 보지 않고 돌아가던 집기들의 소리, 누런 빛의 텅 빈 안방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조카의 그 말이 마음 깊이 자리 잡았다. 좋았던 기분이 엄마가 집에 없는 것을 점점 더 자각하면서 쓸쓸하게 변한 것이 아닐까하면서 말이다. 조카가 내가 느꼈던 그 외로움, 무서움을 혼자 느끼고 있지는 않을까. 나는 알고 있는 그 느낌을 조카는 느끼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 언니의 옛날 폰에 전화할 수 있는 방법, 영상통화 방법을 강구해보았지만 끝내 통화가 성사되지는 못했다. 조카는 내가 보낸 문자를 못 읽었는지 답장이 없었다. 짠하고, 애달프고, 마음이 쓰이는 그 감정으로 그대로 안고 출근하는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불과 몇 분 지나지 않아 언니가 조카가 잘 등교했다며, 옛날 폰으로 연결해 놓은 가정용 CCTV의 모습을 몇 장 캡처하여 가족 단체 채팅방에 업로드를 했다. 조카는 힘차게 웃으며 혼자서 옷도 잘 챙겨 입고 등교를 마쳤다. 엄마가 차려 놓고 간 아침도 분명 잘 챙겨 먹고 양치까지 마쳤을 것이다. 제 엄마가 보고 있는 걸 알아서 일부러 더 씩씩해 보이려고 한 표정들인지는 몰라도 내가 걱정할 만한 표정은 아니었다.
이렇게 조카의 환한 웃음을 보고 있자니 다시금 생각이 든다. 내가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인 그 노란 빛의 방을 나는 사실 좋아한다는 걸. 고요한 적막감, 초침 소리만 울리는 그 방은 사실 다른 의미로는 여유, 포근함, 안정이기도 했다. 다시 돌아간다 해도 오래 있고 싶은 방은 아니지만 햇빛이 그런 색도 있다는 걸 알게 관찰하게 해준 시공간이었다.
나는 그 순간들 때문에 신나는 노래보다는 우울한 노래를 좋아하고, 혼자 있는 시간을 잘 못 견디며, 외로움을 종종 느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조카는 그런 느낌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조카의 빈 시간을 채워주려 전화를 걸어댔던 것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조카가 커서 어른이 되었을 때, 밝은 노래만 듣고, 혼자서만 지내면서 아무렇지 않아하고, 외로움이라고는 눈곱만치도 모르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가지런히 생각해 보니 나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조카가 어른이 되어서는 기분의 고저, 감정의 다양, 음악의 풍부를 물씬 느끼고, 자신에 대해 더 깊이 알기를 나는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더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나도 그렇게 살기를 바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