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 스타일

by WLS

어렸을 때부터 마이너 기질이 좀 있었다. 일단 키부터 독보적으로 컸기에 못된 남자애들은 나를 '자이언트'라고 부르며 놀려댔다. 아동인데도 아동복을 입지 못 했고, 덩치값을 하라는 주변의 말에 어린이 같은 동심 기르기 보다는 애늙은이 소리를 듣기가 일쑤였고 성숙해야만 하는 줄 알았다. 그러다 보니 딸 셋 있는 집의 늦둥이 막내 딸인데도 다들 첫째 아니냐며, 동생이 있을 것처럼 생겼다는 소리를 들었다. 생김새부터 평균 밖에서 살면서 마이너로 존재하는 것은 어쩌면 내 삶에서 아주 흔한 영역이었다.

취향도 그랬다. 다른 애들은 이제 막 유행하는 아이돌의 노래를 좋아할 때, 나는 이미 해체하고 없어진, 언니들이 좋아했던 나보다 12살 많은 사람들을 아이돌이라고 목숨 바칠듯 좋아했었다. 초등학교 6학년 시절, 소풍에 갔다 돌아오던 관광버스에서 다른 아이들이 리드믹한 유행가를 부를 때, 나는 이미 대학에 가버린 언니들의 CD에서 나오던 가수의 노래, 심지어 타이틀곡도 아니라 아무도 모르던 노래를 진지하게 불러 관광버스의 신명 나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어 버렸다. 그나마 친했던 친구 하나의 "노래 좋다"는 선의의 거짓말에 쭈그러들어 잔뜩 주름이 간 마음에 손다림질이나마 해볼 수 있었고 말이다.

크면서 연애도 마찬가지였다. 남들은 10대에, 갓 대학에 들어서면서 다들 연애를 시작한다는데 나는 그러지를 못 했다. 키가 크다는 이유로 남자 선배들은 내 옆에 오는 것조차 부담스러워 했으며, 여자 동기들은 남자를 소개시켜주기는 커녕 나만큼 키 큰 남자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콧노래나 부르고 있었다. 면역이 되어서는 "나도"라며 응수를 해주었지만, 햇빛 쨍쨍한 날이면 내 뒤로 숨어들어 아무 말도 않고 몰래 나를 가로수 삼아 햇빛을 피하던 아이들은 나를 더 주변인으로 만들어 갔다. 잔뜩 주눅이 든 마음으로는 내 매력을 보여줄 수도 없었고, 누가 다가오면 믿지 못하고 의심만 해댔다.

그러던 내가 다행히 나를 나로 봐주는 사람을 만났다. 연애를 하면서 한 번도 내 키를 물어본 적이 없는 사람. 웨딩 드레스를 보러 가서야 신부님 키가 몇이냐는 웨딩 플래너의 질문에 내 답을 듣고는 흠칫 눈이 동그래지던 그런 귀여운 사람을 말이다. 부시시한 얼굴로 일어나 머리가 엉망진창이어도 예쁘다 해주고, 화장하지 않는 게 더 이쁘다는, 아직도 믿을 수 없는 말을 하는 나의 배우자.

이 배우자를 만나고 나는 내 세상의 중심이 내가 될 수 있었지만, 덕분에 나의 취향은 더욱 마이너해져 갔다. 물욕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나의 배우자에게 물들어 가며 명품 가방보다는 같은 값의 여행에 더 큰 행복이 있음을 배우고, 한 철 입을 수 있는 나약한 옷 여러 개 보다 품질 좋은 옷 하나가 더 나음을 깨달았다. 점차 남들과 비교도 덜하게 되고, SNS도 하지 않으며 마음의 평안을 얻어 갔다.

행복추구권은 누구에게나 있기에, 인간은 누구나 다른 정의로 행복을 말하고 있다. 사람들 간에 공통적인 부분도 있겠지만 70억 인구가 서로 각기 다른 모양의 행복을 그리고 있을 것이다. 지금의 내 삶이 편안하지만 최근에는 문득 내가 그리고 있는 행복의 모양이 미련해보이진 않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피부과에서는 이런 종류의 시술과 레이저를 받고, 자가는 이렇게 마련하고, 주식은 저걸 사고, 코인은 얼마에 들어가고, OTT에선 이걸 보고, 맛집은 여기를 다니고, 결혼식에는 이런 가방을 들고 가고, 소개팅을 시켜줄 때면 여자는 어리고 예뻐야 하고 남자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이런 것들에 반발심이 생긴다면, 나의 마이너 스타일은 남들 눈에 마이너스일까?

글쎄. 난 마이너 스타일이지만, 정작 내 삶은 점점 플러스인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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