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상상

by WLS

하루 용돈이 300원이던 시절이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과 2학년 쯤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맞벌이를 하시던 엄마는 아침마다 나를 학교 앞 큰길에 내려주며 이순신 장군이 그려진 100원짜리 동전 3개를 매일 용돈으로 주셨다. 엄마가 직접 오후 간식을 따로 챙겨주실 수 없으니 하굣길에 군것질이라도 하라는 의미라는 게 이제서야 이해가 된다. 그러면 어린 나는 그 300원을 주머니에 넣고, 동전이 서로 부대끼는 작은 쇳소리를 들으며 엄마가 내려준 큰길에서부터 나즈막한 동산에 있던 나의 초등학교까지 상상을 하면서 걸어가는 것이다. '오늘 오후엔 또 뭘 사먹지?'

지금이야 300원으로는 막대사탕 하나 겨우 사먹을 수 있지만 그때는 300원으로 먹을 수 있는 것이 꽤나 다양했다. 말로만 비타민인 재료가 무엇인지 모를 가루가 똘똘 뭉쳐진 캡슐, 옥수수를 튀긴 과자, 콩알만 한 연갈색과 진갈색 알맹이가 어우러진 밀가루 과자, 빨대에 색색깔로 들어차있던 액체도 고체도 아닌 그런 반죽 같은 것, 옥수수로 만들었다는데 주황색인 쫀득이, 씹으면 비닐 같은 소리가 나던 반투명 탄수화물 테이프, 먹으면 혓바닥이 지나치게 파래지면 사탕, 귤맛인데 귤은 거의 안 들어 있는 하드 이런 것들이 죄다 100원이었다. 이 모든 것들을 어른들은 '몸에 나쁜 불량식품'이라고 했다. '불량'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식품 위생은 더더욱 모르는 꼬마에게 "불량식품은 몸에 나쁘다!"고 외쳐봤자 '맛있는데 어른들은 왜 자꾸 먹지 말라고 잔소리지?'라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나는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학교 앞 문방구의 단골손님이 되었고, 맛있는 간식을 사먹지 않고 집에 가는 것은 내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는 선택지였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했던 식품은 따끈따끈한 일품(一品) 불량식품이었다. 고급 식당에 가면 요리를 멋진 접시에 내어준다는데 나의 일품 불량식품은, 지금 그런 음식을 내어준다면 까무라치게 놀라겠지만, 날짜가 지난 신문지를 네모낳게 자른 후 그 위에 올려주는 계란과 소세지 구이였다. 계란은 100원, 소세지는 50원. 소세지 2개에 계란 하나를 더해 200원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 중엔 그게 세상에서 가장 맛있었다. 문방구 주인 아주머니께 사투리로 "아줌마, 소세지 두 개랑 계란 하나요."라고 말씀드리면 아주머니는 문방구 셰프로 변신했다. 손가락 끝마디 부분만 잘라낸 꼬질꼬질한 면장갑을 낀 손으로 아주 능숙하게 소세지 2개와 계란 하나 깨뜨려 구워주신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신기하게 생긴, 쇠 상자인데 상자 윗면의 한쪽 끝은 경첩으로 손잡이 달린 뚜껑이 연결된 그 불판은 아랫부분 한 쪽은 뚫려 있어 땔감을 넣고, 판을 달굴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문방구 셰프께서 소세지와 계란을 판에 올리고 뚜껑으로 꽉 눌러 소세지와 계란을 익혀주셨다. 약간의 기름 위에서 지글지글 익는 소리, 뚜껑으로 납작하게 눌러 치지직 거리는 소리는 10살 미만 어린이들의 군침을 힘껏 돌게 했다. 심지어 여러 학생이 한번에 주문을 하면 계란이 흘러넘쳐 서로의 경계가 혼탁해지면 안 되기 때문에 문방구 셰프께서는 소세지만 먼저 판에 올려 납작하게 눌러서는 세로 결로 찢어 삼각형으로 테두리를 만들고, 그 테두리 안에 계란을 깨 넣어 하나의 디쉬를 완성해주시는 경지에 다다르셨다.

셰프의 킥으로 맛소금까지 흐드러지게 뿌린 가공식품과 고소한 계란의 만남은 그 소세지가 불량식품이든, 담긴 접시가 신문지든, 엄마와 선생님 모두가 먹지 말라했든 상관없이 너무나 맛있었다. 엄마가 어쩌다 한번씩 하굣길에 나를 데리러 와서 내가 신문지 위의 따끈한 계란과 소세지를 너무 행복하게 먹는 모습을 보면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을 보이셨지만, 나는 엄마가 왜 착잡한 얼굴로 맛있냐고 묻는지 알지 못 했고, 몰라서 그저 맛있었고, 나는 그렇게 활자가 찍힌 계란과 소세지를 수 년 동안 먹으며 문방구의 단골 고객이 되었다.

그렇게 자라다보니 뱃고래는 커졌는데 용돈은 계속 300원이었다. 물가인상률을 반영해주지 않은 엄마 덕에 나는 때로는 간식과 오락을 위해 기껏 모은 저금통에 손을 대기도 했다. 그러다 보면 크게 담대하지 못 했던 나는 부정적 감정의 순환에 빠져들곤 했다. '이러려고 저금통에 돈을 모은 게 아닌데', '그렇다고 내가 당장 돈을 벌 곳은 없는데', '나는 더 먹고 더 놀고 싶은데', '우리 반 누구는 용돈 500원 받는다던데', '심지어 걔네 엄마랑 우리 엄마랑 같은 일 하는데' 하면서 말이다.

그런 날이면 돈을 많이, 아주 많이 버는 상상을 했었다. 성공한 사람들은 어떤 물건을 만들면, 이걸 어떻게 팔면 이런 상상을 한다는데 나는 그쪽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의 상상은 절대로 현실 불가한 돈 벌기 방법이었다. '전세계 인구가 60억이라는데 그 사람들이 나한테 1원만 주면 좋겠다. 그럼 60억 원이 내 돈인데.' 이런 류의 상상이었다. 그렇게 상상을 하다 보면 일상 곳곳에서 엉뚱한 상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컴퓨터를 할 때면 '사람들이 키보드로 한 타 칠 때마다 나한테 10원이 들어오면 좋겠다', 언젠가 박수 치는 상황에서는 '사람들이 박수 한 번 칠 때마다 나한테 5원 만 박수 사용료 냈으면 좋겠다', 체육시간에 달리기를 하면 '사람들이 한 발짝 뛸 때마다 나한테 100원 냈으면 좋겠다' 이런 상상 말이다. 이런 상상은 나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기에 보통 5초 안에 끝나는 상상이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불로소득의 의미도 모르면서 불로소득으로 일확천금을 꿈꾼 당돌한 어린이였다.

그런데 좀 더 자라다 보니, 나의 이 말도 안되는 상상과 아주 살짝 비슷한 개념-사람들이 사용하면 돈이 들어온다는 점에서-이 세상에 존재하고, 심지어 이것으로 사람들이 크고 작은 수익을 올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새로운 아이디어로 물건이나 소프트웨어를 만들면 '특허'라는 것을 내고, 새로운 그림을 그리거나 노래나 글을 써서 등록하면 '저작권'이 된다는 것이다. 내가 컴퓨터에 쓰고 있는 프로그램들도 다 특허라서 네모네모난 창문 모양의 이 배경화면을 만든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부자고, 내가 가진 필통, 옷, 신발 여기저기 다 쓰이는 지퍼도 특허란다. 음료수 캔도 특허고, 이것저것 다 특허라기에 한때 세계인들을 놀라게 할 발명품을 만들어 세상도 이롭게 하고, 엄청난 거부가 되어 볼까 생각도 했지만 매년 열리는 학교 발명대회에 만들어 내는 나의 작품은 주인의 못난 손재주 덕에 누더기가 되기 일쑤였고, 상장은 다른 아이들에게만 돌아갔다.

저작권은 그래도 손에 닿는 구름 같았다. 내가 책을 워낙 읽지 않자 만화책부터라도 재미를 들게 하려 했던 엄마의 전략으로 나의 용돈은 도서 대여점으로 많이 흘러들어갔고, 세상에 정말 많은 만화책과 비디오 테이프와 판타지 소설이 발간되고 있음을 그 시절부터 어렴풋이 느끼게 되었다. 어느 순간 혜성처럼 등장한 마법사 소년에 관련된 소설이 나왔을 때는 독서를 거의 하지 않던 나도 용돈의 큰 부분을 할애해 책을 구입해 읽기도 했다. 가수를 좋아하는 언니들 덕에 집에는 CD와 테이프가 많았고, 나 또한 중학생이 되면서는 늘어난 용돈 덕에 좋아하는 가수가 새로운 앨범을 발매하면 CD를 이것저것 사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때로는 작가가 되어 재미있는 이야기로, 때로는 작곡가, 작사가가 되어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음악으로 돈을 벌고 싶다는 상상을 할 때가 많아졌다.

그런데 고등학생 쯤이 되었을 때는 그 꿈이 사그라들었다. 음악은 더이상 CD가 아닌 MP3 파일로 유통되기 시작했고, 만화책은 스캔본이 떠돌며 파일을 다운 받는 P2P 사이트에서 불법으로 거래되는 것이 횡행하기 시작했다. 여러 유명 가수와 배우들이 공익 광고에서 불법 다운로드 근절을 외쳤지만,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연예인은 돈을 잘 번다며 별다른 죄의식 없이 책도, 만화책도, 영화도, 음악도, 드라마도 무료로 나누었다. 누군가는 자신의 것인 마냥 돈을 받고 거래하기도 했다. 이러한 세태는 한 사람의 저작이 별 다른 가치를 발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글이나 음악을 창작하는 직업에 대한 동경도, 흥미도 사라지게 되었다.

그 후로 다시 한번 세상이 바뀌면서 사람들은 간편하게 OTT, 웹툰 플랫폼, 음원 사이트 등을 크게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온라인에서 광범위하게 누리게 되었다. 불법 다운로드를 근절하자는 캠페인은 이제는 자주 볼 수 없게 되었고, 유명한 음악인들은 자신의 곡이 저작권 협회에 몇 곡이 등록되어 있고, 저작권료로 1년에 얼마를 벌어들인다고 밝히는 것이 자랑스러운 화제가 될 정도로 분위기의 반전이 일어난 듯하다. 저작권이 밥 먹여주고, 꿈을 채워줄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최근 발레 수업을 배우며 손을 상체 앞으로 나무을 껴안듯 동그랗게 만드는 앙 아방[en avant] 자세를 배우며 갑자기 '사람들이 앙 아방 할 때마다 나한테 천 원씩 주면 내가 지금 얼마를 벌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 동작을 만든 것도 아닌데, 수 십 년 전에 내가 이와 비슷한 상상을 했었다는 사실을 잊은 지도 오래 됐었는데, 갑자기 이런 공상이 또다시 머릿 속을 스친 것이다. 상념과 삶의 무게로 눌러 담아 두었던 어린 시절의 엉뚱한 상상이 다시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그만큼 직장에서, 삶에서 자본을 위해 일하는 상황에 염증이 나서일까, 아니면 폴짝폴짝 뛰는 어린이 같은 발레 동작에 오래된 상상을 다시 해보고 싶어진 것일까.

과거의 내 상상과 지금의 상상이 다른 것은 과거에는 얼만큼의 돈을 '주면 좋겠다'였지만, 지금은 '그랬다면 내가 얼마를 벌었을까?'라는 질문의 형태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과거에 더 염치가 없고, 불로소득에 대한 염원이 강력했다면 지금은 그것이 불가능함을 알기에 그저 호기심으로만 멈춰 있다는 점일 듯하다. 그리고 그 호기심은 생산적인 흥미로, 나의 꿈으로 다시 돌아가게 하기도 한다.

내가 글로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글로 정당한 돈을 벌 수 있을까. 내가 글로 상상을 일상으로 만들고, 일상을 상상으로 마음껏 채워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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