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년쯤부터였다. 엄마와 아빠의 대화가 줄어들고, 웃음이 줄어들고, 우리집의 행복이 줄어든 것은. 사랑이 줄었다고도 볼 수 있겠다. 자식인 나에 대한 사랑이라기 보다는 엄마와 아빠가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줄어든 것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세 명이 서로 주고 받던 사랑에서 한 쌍의 사랑은 줄어든 셈이니까.
아빠는 엄마의 마음을 돌리려고 애를 썼던 것 같다. 엄마가 좋아하던 수국꽃을 괜히 한번씩 사오기도 하고, 주말엔 엄마가 좋아하는 떡볶이나 잡채를 만들기도 하고(로빗이 거의 다하긴 했지만), 엄마의 눈치를 살피며 밤늦게 오는 일도, 엄마 대신 나를 돌보는 시간도 많이 늘렸었다. 그런데 엄마는 좀처럼 아빠에게 살갑게 대하지를 않았다. 엄마와 아빠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는 것인지 자세하게 알진 못했지만, 집안의 분위기가 무겁고 차가워질 때면 나는 괜히 더 엄마, 아빠에게 내가 잘하는 블록을 조립해서 보여주기도 하고, 엄마와 아빠, 내가 그려진 세 가족의 그림을 그려서 보여주기도 했다. 밥투정도 안 하고, 보고 싶은 영상을 보여달라고 떼를 쓰는 것도, 메타버스 게임을 하게 해달라고 조르는 것도 세 번 할 것을 꾹 참고 한 번만 하기도 하고 했다. 그래도 별로 소용이 없었다. 힘이 빠지기도 했지만, 내가 잘못해서 엄마와 아빠가 사이가 나빠진 게 아니라는 면에서 이상하지만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내 잘못은 아니구나.
엄마와 아빠 사이가 멀어지고 나서는 배가 자주 아팠다. 학교 가는 길에도 아프고, 엄마와 아빠가 퇴근할 때쯤에도 아프고, 자기 전에도 싸르르 아팠다. 화장실에 가보면 막상 별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괜히 아프다고 하면 엄마, 아빠가 가뜩이나 더 예민해질까 봐 배 아프다는 말을 별로 하지도 못 했다.
그 날도 그랬다. 하필 엄마, 아빠가 큰 맘 먹고 셋이서 놀이공원에 가기로 한 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나는 신나서 엄마와 아빠에게 우리 놀이공원 진짜 가는 거냐고 물어봤고, 엄마가 오랜만에 직접 만들어준 햄치즈계란 샌드위치도 1개 먹고도 반이나 더 먹었다. 아빠도 왠지 입가에 웃음이 있는 것 같았다. 엄마는 무표정했지만 나를 신경쓰고 있었고, 부지런히 썬크림, 물, 가방, 얇은 가디건 같은 옷가지들을 챙겼다. 내 것뿐만 아니라 아빠 것까지도. 기분이 너무 좋아졌다. 옷도 나 혼자 입겠다고 큰 소리치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내가 좋아하는 파란 옷. 그리고 지난 번에, 한 4년 전쯤 놀이공원 갔을 때 아빠가 사줬던 팝콘통도 서랍에서 꺼내 어깨에 걸어 맸다. 거울을 보고 씩 웃어보는데, 또 배가 아팠다.
"로빗, 나 또 배아파."
"어디 보자."
로빗은 따스한 손을 내밀어 내 티셔츠 속의 배로 갖다댔다. 내 배위에 가만히 올리고 3초 정도 배의 가운데, 양 옆, 위아래를 쓱쓱 만지더니 손을 떼고는 티셔츠 매무새를 만져주었다.
"평소보다 좀 차갑긴 하네. 아침에 화장실 다녀왔어?"
"응."
"응아 했어?"
"알면서 뭘 물어."
"흠, 설사는 아니던데. 잠시만."
이번에는 내 긴 소매를 살짝 접어 걷더니 자신의 손가락 3개를 손목에 갖다댔다. 마치 옛날 한의사들처럼 말이다. 눈을 감고 3초 정도 있더니 이번에도 손을 떼고, 옷소매를 다시 펴 가지런히 두었다.
"혈압도, 맥박도 정상이야. 체온도. 혹시 오늘 엄마, 아빠랑 놀이공원 가는 거 좀 긴장돼?"
"나? 아니. 긴장은 안 되는데."
"내 눈 쳐다 봐."
로빗은 늘 내가 진심으로 말을 하지 않는다 싶으면 꼭 제 눈을 보라고 한다. 엄마도 그렇고. 내 눈을 보면 뭘 알 수 있는 건가? 내 눈동자로 어떤 정보를 읽는 건지, 뭔지 알 수는 없지만 이상하게 로빗이 자기 눈을 보라고 하면 진실만 말하게 된다. 로빗의 눈동자는 너무 맑고, 깊고, 나에게 집중하고 있어서 정말이지 그 눈을 보고있자면 빨려 들어갈 것 같기도, 무섭기도, 무한정 내 편일 것 같기도 한 감정들이 뒤섞인다.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의 눈 모양으로 주문 제작을 넣었다는 저 인공 눈. 잠시간 그 눈에 홀려있다가, 나는 또 진실을 말한다.
"조금."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로빗은 잔잔한 미소와 걱정이 감도는 얼굴을 하며 내 손을 자신의 두 손으로 꽉 잡는다.
"그래? 그럼 달콤달콤한 사탕 하나 줄까?"
"응. 딸기맛 줘."
"그래, 여기."
나는 베시시 웃으며 로빗이 주머니에서 빨간 사탕 하나를 꺼내주는 것을 기다렸다. 테두리가 동글동글한 타원 모양의 사탕인데, 너무 시지도 않고, 딱 내가 좋아하는 딸기향이 나서 로빗이 사탕을 준다고 하면 가장 많이 달라고 하는 맛이 이 딸기 사탕이다. 로빗이 까준 사탕을 입에 넣고, 내 방 의자에 앉아 잠시 녹여 먹으니 아빠가 내 방 문을 노크하고선 문을 열었다.
"옷 다 입었어?"
"응, 아빠는?"
"아빠도 다 입었어. 그래, 이제 놀이공원으로 출발해 볼까요?"
아빠는 일부러 더 목소리를 크게 내고, 어색하게 팔까지 휘둘러 가며 나의, 아니 우리의 흥을 끌어올리게 만들었다. 나는 아빠가 일부러 그러는 것이 조금 안쓰러우면서도 엄마, 아빠 둘 모두와 같이 놀이공원을 간다는 게 좋아 활짝 웃으며 아빠에게 달려가 안겼다. 그런데 아빠 얼굴이 갑자기 굳어졌다. 아빠는 살짝 나를 떼내고 선 내 양 어깨를 잡고 굳은 얼굴로 물어봤다.
"너 입에 그거 뭐야?"
"응? 이거? 사탕인데."
"무슨 사탕이야?"
"딸기 사탕. 로빗이 줬어."
아빠의 얼굴이 굳어졌다. 아빠는 로빗을 쳐다보지도 않고 내 입을 쳐다보며 말했다.
"로빗, 이 사탕 뭐야?"
"딸기 사탕입니다."
"무슨 사탕이냐니까."
"애가 배 아프다고 해서 평소에 좋아하던 사탕을 줬습니다."
"사탕. 애 엄마가 주라고 했겠네."
로빗은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겁먹은 내가 로빗을 쳐다보자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맞습니다."
아빠는 로빗을 화가 난듯 노려보았다. 나는 아빠가 왜 사탕 하나에 이러는지 알 수 없었다. 지난 번에 내가 충치가 생겨서 엄마, 아빠가 서로를 탔했었는데 그것 때문인가 싶어 나는 얼른 아빠에게 웃는 얼굴로 말해보았다.
"아빠, 나 이제 충치 없어. 그거 치료 다 했어."
"응, 그래. 알지. 우리 충치 치료 했지."
아빠는 나에게 애써 웃어보였지만 전혀 화가 풀린 것 같지가 않았다. 아빠는 나를 안아들고는 다시 의자에 앉히며 내 손을 잡고 말했다.
"잠시만, 여기서 로빗이랑 조금만 더 기다리고 있어. 로빗, 애 잠깐만 더 보고 있어줘."
"네, 알겠습니다."
아빠는 문을 닫고는 안방으로 갔다. 나는 아빠의 저렇게 화난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아빠가 왜 그러는지 알 수가 없어서 아빠가 나간 방문만 쳐다보고 있었다.
"로빗, 아빠가 왜 화가 난 거야?"
로빗도 같이 멍하니 문을 바라보다가 내 옆에 다가와 내 눈높이에 맞게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선 나의 등을 토닥이며, 느리게 토닥이며 안심시켜 주었다.
"글쎄, 나도 잘은 모르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 아빠랑 엄마랑 잘 얘기하는 중이셔.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응."
마음이 쿵쾅대고, 손톱 끝을 물어 뜯었지만 아빠도, 엄마도 빨리 내 방으로 오지를 않았다. 로빗은 내가 좋아하는 노래도 틀어주고, 사탕도 또 주었다. 나는 사탕 때문에 아빠가 화가 난 것 같아서 먹고 싶지 않았지만 로빗이 이미 사탕을 까버린 상태라 그냥 먹었다. 로빗이 내 눈을 빤히 쳐다보기도 했고. 입에 넣고 얼마 안 있을 때였다. 아빠가 갑자기 내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로빗의 멱살을 잡았다.
"이 쳐죽일 놈의 인공지능. 이게 뭐라고, 이게 뭐라고! 이게 대단해봤자지."
로빗은 아빠에게 멱살이 잡혔지만 놀란 표정도 아니었다. 다만 손을 뻗어 내 눈을 가리고, 자신의 멱살을 잡은 아빠의 손을 떼어 냈다. 아빠의 손은 로빗의 손에 의해 별다른 저항도 해보지 못하고 떨어지는 것 같았다.
"아이 앞에서 이런 폭력적인 행동은 좋지 않습니다."
"하, 누가 보면 네가 아빠인 줄 알겠어. 내가 얘 아빠고, 내가 저 사람 남편이야. 넌 그냥 로봇이고, 우리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는 거라고."
"네,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다. 그렇지 너는 알고 있지. 너무 잘해서 문제지. 내 말 말고, 저 사람 말대로만."
로빗은 내게 다가와 나를 옆에서 꼭 안아주었다. 나는 로빗의 품에 안겨 눈을 살짝 떴다. 고개를 살짝 돌리니 너무 많이 화가 난 아빠가, 힘이 빠진 채 눈물이 그렁하고, 이를 꽉 깨물고선 나를 바라봤다. 그리곤 나에게 저벅저벅 다가와 나를 안아 들었다.
"놔. 이제 사탕도, 뭣도 주지마."
아빠가 나를 안아들고 방문을 나서자 엄마는 거실에 서서 우리를 지켜보았다. 엄마는 알 수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화가 난 것 같기도, 미안한 것 같기도, 짜증이 난 것 같기도 했다. 놀이공원에 가려고 편한 복장을 하고서는 너무나 불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한 손에는 모자를 꽉 움켜쥔 채.
"지금 뭐하는 거야?"
"따라올 생각 하지 마. 내가 데려갈 거니까."
"무슨 소리야. 진짜 대체 왜 이래."
"왜 이러냐고. 내가 모를 줄 알았지. 저깟 인공지능한테 휘둘려서 애한테 뭘 먹이는!"
순간적으로 로빗이 다가와 내 두 귀를 막아버렸다. 로빗이 내 두 귀를 막으면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나를 안은 아빠의 목 핏대가 굵게 튀어 오르고, 아빠가 내지르는 소리의 진동이 맞닿은 피부로 느껴졌다. 볼로, 손으로, 심장으로 느껴졌다. 엄마는 모자를 바닥에 내팽개치고선 아니라는 듯 두 손에 힘을 꽉 쥐고 소리를 질렀다. 짧고 굵은 둘의 싸움이 끝나고, 아빠는 내 귀를 막은 로빗에게서 신경질적으로 떨어지며 밖으로 나갔다.
"따라 나오지 마."
엄마는 거실에 서서 굵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었다. 아빠는 나를 안고 현관문으로 나갔고, 아빠가 문 닫기 전 마지막으로 본 것은 엄마 곁으로 다가가 등을 토닥이며, 끌어안으며 엄마를 달래는 로빗의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