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빗 [4]

by WLS

"그립지도 않은데 기억해서 뭐 해."


일순간 굳은 눈으로 나의 생일 케이크를 바라보며 엄마는 말했다. 3년 전, 아빠가 나를 데리고 집 밖으로 나갔던 날 우리는 결국 놀이공원에 가지 못 했다. 아빠는 집 앞 공원 벤치에 나를 앉혔고, 나에게 놀이공원에 갈까 물었다. 나는 우리 둘 중 누구도 놀이공원에 가고 싶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고개를 저었다. 아빠는 나를 보며 미안한 듯 웃다가, 머뭇거리다가, 미안하다고 했다. 놀이공원에 가지 못 해서 미안하고, 무섭게 말해서 미안하고, 그리고, 그런 걸 먹게 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 눈으로 쳐다보자 아빠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흩으며 "내 새끼"라고만 했다. 우리는 같이 벤치에 앉아 멍하니 벤치 앞 나무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하늘을, 바닥을 쳐다보다가 아빠의 "좀 걸을까?"라는 이야기에 손을 잡고 집 앞 동네를 걸었다. 내가 다니던 유치원도 지나고, 엄마의 단골 미용실도 지났다. 아빠랑 가본 적 있는 노래방도 지나고, 오랜만에 들른 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는 아빠가 두 가지 맛이나 고르라고 해서 제일 좋아하는 맛으로 2개를 골랐다. 녹아서 흐를까봐 컵으로 살까 했는데 아빠가 괜찮다고 해서 콘에 받아다가 이빨로도 깨물어 먹고, 혓바닥으로 핥아도 먹었다. 아이스크림이 녹아 손으로, 손목으로 계속 흘러내렸지만 아빠는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물티슈로 계속 닦아 주었다. 기분이 조금 좋아지는 것 같았고, 아빠도 그래 보였다.

해가 질 때쯤 집에 들어갔다. 꽤나 더운 봄이었기에 집에 들어오자마자 아빠는 나를 씻겨주었다. 머리고 감겨주고, 세수도 시켜주고, 양치도 시켜주고 아빠가 접어 올린 바지가 다 젖도록 열심히 씻겨줘서 미안하기도 하고, 좋기도 했다. 나 혼자 머리를 감으면 늘 얼굴 어딘가에 비눗방울이 남아 있었는데 아빠는 말끔하게 헹궈주었다. 내 몸에서 뽀독뽀독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아빠는 내 머리까지 말려주고는 오늘은 일찍 자라고 나를 방으로 보내고, 침대에 눕혀 얼굴도 쓰다듬어 주고, 굿나잇 키스도 해주셨다.

다음 날부터 아빠는 집에 보이지 않았다. 세 가족이었던 우리는 둘과 하나의 가족이 되었다. 아빠를 계속 찾았지만 없었고, 엄마는 이제 아빠가 집에 없을 거라고 했다. 로빗은 엄마가 자신의 주인이기 때문에 계속 엄마, 그리고 나와 같이 산다고 했다. 아빠가 나와 같이 살지 못 하는 이유는 어린이인 나의 앞에서 로빗에게 폭력을 쓰고, 엄마에게 고성을 질렀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나와 같이 살기 위한 아빠와의 다툼에 열성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놓치고 싶지는 않아 했다.

나는 그 날의 아빠가 무섭기는 했지만, 그게 아빠와 같이 살고 싶지 않을 정도의 일은 아니었다. 아빠는 나한테 미안하다고 사과도 했고, 나는 그 사과에서 아빠의 진짜 마음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계속 셋이서 같이 살고 싶었다. 엄마와 아빠가 방만 따로 쓰면 안 되나, 서로 말 안 해도 그냥 셋이 살면 안 되나, 셋이 살고 싶은데. 엄마에게 말해보았지만 이젠 법으로도 결정이 나서 아빠와 같이 살지 못 한다고 했다. 나는 너무 슬프고, 화가 났다. 그 법이 뭔지도 나는 모르겠고, 계속 셋이 같이 살자고 얘기했지만 내 마음을 얘기해도 엄마와 로빗은 같은 말만 반복했다.


"아빠가 한 행동은 정말 위험한 행동이야. 나중엔 너에게 그럴 수도 있어. 그래서 우리가 따로 사는 거야. 이젠 엄마, 로빗, 너 이렇게 셋이 가족이야."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아빠가 나에게 그럴 일은 없다는 것은 어리지만 알고 있었다. 나에게 사과하던 아빠의 눈빛이 나를 사랑하고 있음이 분명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 눈빛은 본 적도 없었고, 왠지 앞으로도 살면서 볼 일이 많지 않을 것 같다는 강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아빠의 사과를, 아빠의 마음을 믿었다. 그 마음과 같이 살고 싶었다. 심지어 로빗과 셋이 함께 사는 가족이라니. 엄마는 로빗이 사람이 아닌 것은 맞다면서도 그건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같이 살면 다 가족이라며. 로빗도 자신이 우리 가족이라며, 우리는 그렇게 세 가족이라고 매일 밤 나를 재우며 그렇게 말해주었다. 엄마와 로빗의 다정하고 분명한 그 말을, 나는 혼란스럽게 받아들였다. 나는 아직 엄마, 아빠, 그리고 내가 가족인 것 같은데 엄마는 본인이 주문하고 제작한 존재와 본인이 사랑했던 사람과 만든 나를 자신의 가족으로 정했다. 로빗은 엄마가 자신의 주인이라고 했는데 엄마는 로빗이 우리 가족이라고 했다. 어린 나는 선택권이 없었고, 내 머릿 속은 이해하지 못 한 물음표로 가득 찼다.

그래도 3년만이었다. 아빠 없이 보내는 나의 세 번째 생일이었다. 로빗은 내가 좋아하는 자동차 모양의 케이크를 만들어주었고 엄마는 로빗에게 사춘기 사용자 전용 영상 컨텐츠와 대화 프로그램 구독권을 생일 선물로 주었다. 별로 필요했던 선물은 아닌데 엄마는 본인에게 필요한 것을 내가 필요한 것이라고 착각한 것 같다. 선물이 마음에 안 들어서 심통이 났던 것은 아니고 아빠가 보고 싶어서, 내 생일엔 내가 가장 받고 싶은 것을 사주는 아빠가 보고 싶어서 나도 모르게 엄마에게 물어봤다.

"엄마는 아빠 안 보고 싶어?"

엄마는 갑작스러운 내 질문에 당황한 듯, 불쾌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빠 얘기는 갑자기 왜."

"생일이니까. 아빠가 보고 싶어서 그렇지."

"아빠 지난 주에 보고 왔잖아."

"응. 근데 그거랑 내 생일 축하 다같이 하는 거는 다른 거잖아."

"... 다같이 하지는 못 해도 엄마랑 로빗이랑 같이 하잖아. 로빗이 오늘 밤에 진짜 재밌는 영상 제작해서 보여줄 거야."

엄마는 로빗에게 기대에 찬 눈빛을 보내며 나에게 말했다.

"맞아. 지금 만들고 있는 영상 네가 주인공이야. 니가 좋아하는 게임 캐릭터들이랑 아이돌도 나올 거야. 니가 좋아하는 노래 편곡해서 넣고 있고."

로빗은 내장된 프로그램으로 영상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일부러 더 고화질로 만들고 시간도 내가 딱 집중해서 보기 좋아하는 16분 정도로 만들었다고 한다. 로빗은 시나리오부터 영상 CG, 편집, 편곡까지 다 만들어서 보여주는데 사실 재미있기는 하다. 내가 보고 있다가 지루해하는 것 같으면 바로바로 다음 내용을 바꿔서 틀어주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향도 나고, 터치 박스에 손을 넣으면 영상 속 온도와 질감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오늘은 그 실감 나는 영상이 그렇게 구미가 당기지가 않는다. 영상도, 구독권도 다 흥미롭지가 않다.

"엄마, 나 8살 생일 때 아빠랑 엄마랑 바닷가 놀러 갔던 거 기억 나?"

"그 얘긴 또 왜."

"그 때 진짜 재밌었잖아. 엄마랑 아빠랑 나랑 바닷가에서 모래성도 쌓고, 엄마랑 아빠랑 펜션 가서 물고기랑 바베큐랑 잔뜩 먹고. 나랑 아빠랑 모래 잔뜩 묻은 채로 차에 타서 엄마가 우리 둘 다 엄청 혼내고. 그, 다음날 3인 자전거도 타고. 기억 나지?"

"그립지도 않은데 기억해서 뭐 해."

나의, 우리의 추억에 금 가게 만드는 엄마의 날카로운 말. 부드러운 케이크를 앞에 두고 딱딱하게 굳어버린 엄마의 눈빛과 표정. 내가 태어난 날이지만 내 추억은 죽어버린 나의 13번째 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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