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빗 [5]

by WLS

소득별 AI 구독료 격차 점차 커져... 최대 2000배 격차 (AI데일리, 2040.4.5.)

취약 계층 AI 구독료 지원 서비스 지역별 격차 커 (주간로봇, 2040.4.5.)

AI로 공부만 하던 시대는 끝났다 - 양육, 가사, 노동 대리부터 연애와 결혼까지 (로봇IN, 2040.4.6.)

[칼럼] 휴머노이드 기술의 퀀텀점프, 인간의 퇴화 (월간 휴머노이드, 2040.4.6.)



엄마는 아침이면 습관처럼 뉴스 헤드라인을 모아 거실 전면 스크린에 띄워놓았다. AI세(世)에서 인간이 최종 결정권을 쥔 몇 안 남은 직종이라며 뉴스 보는 것을 좋아했다. 요즘 기자들은 AI로 기사를 다 쓰면, 팩트를 체크하고, 자신이 속한 언론사의 가치관과 맞는지 확인한 후 내보내기에 기사를 쓰는 실력은 이전보다 줄었지만 팩트체크 능력, 그리고 어떤 기사를 싣을 지 결정권을 쥐었기 때문에 필요해진 정치력 등은 이전보다 훨씬 강해졌다고 들었다. 그래서 나도 다른 애들보다는 뉴스나 신문이랑 좀 친한 편이다. 요즘 웬만하면 정치에 아예 무관심하거나 자기가 지지하는 정치인의 개인 채널만 주로 보는 집이 대부분인 데다 정치인은 웬만하면 AI가 분석한 내용으로 시민들이 원하는 말만 읊는 앵무새라는 이미지가 강해져서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다. 기업도 다 AI가 기술을 개발하고, 업무도 처리하고 있어서 아무리 큰 기업이라도 극소수의 경영진만 남아 결정을 내린다는 얘기를 들었다. 뭐 그렇다 보니 중학생이 되고 나서 국어 시간에 선생님께 기사를 잘 쓴다거나 토론문을 잘 생성해왔다는 칭찬을 들은 적도 있다. 뭐, 엄마가 보는 뉴스에서 몇 개 얻어 걸린 걸로 로빗이랑 같이 쓴 거지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AI랑 연애는 좀 그렇다. 뭐, 유치원 때부터 휴머노이드랑 애착 관계를 형성한다고 연애 같이 옆에서 챙겨주는 게 좋다는 휴머노이드 회사의 광고 때문에 연애 기능을 포함해서 구독하는 집들이 많은 것 같기는 하다. 그런데 나도 엄마를 닮은 것인지 사람이 해야 할일, 사람이 사람이랑 해야 할 일은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신문 기사나 법원 판결처럼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일도 그렇고, 종교도 그렇고, 선생님도 그런 것 같다. AI 휴머노이드에 지식도, 기능도 넣을 수 있고, 감정도 넣긴 하지만 인격과 인품까지 넣기는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말그대로 사람 인(人)이 들어간 거니까. 인격도 인품도 없는 AI가 기사를 내보내고, 시민의 죄를 벌하고, 신도의 죄를 사하며, 인간의 성장을 지도하는 것은 믿음직스럽지가 않다. 마음에서 받아들여지지가 않는다. 그래서 연애도 그렇다. 인간이 아닌 것이 나를 사랑한다는데 애초에 그게 기계에게 줘도 되는 권한인가? 그게 된다면 과거의 인간들은 왜 다른 기계와는 연애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휴머노이드는 인간을 닮은 것일 뿐, 인간은 아니니까 기계와의 연애는, 거북하다.

그런데도 아이들도, 어른들도 AI와 연애도, 심지어 결혼까지도 한다고 한다. 아직 국가에서 공인이 되진 않지만, 조만간 될 거라는 뉴스도 지난 번에 봤다. 엄마도 그 뉴스를 보면서 혀를 쯧쯧 차기도 했다. 엄마는 정치색도 보수쪽이라 그런지 저런 일을 쉽게 허용하는 분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 엄마는 로빗을 구독하면서 연애 기능을 포함하지 않았다. 로빗은 나를 먹이고, 가르치고, 씻기고, 입히고, 가르치고, 재우고, 같이 놀고, 돌보는 일을 하고, 엄마를 도와 집안일을 하는 기능들로 이루어져 있다. 나를 재우고 나면 엄마의 친구 역할도 하는 것 같았다. 지난 번에 잠결에 들으니 둘이 거실에서 즐겁게 웃고 떠드는 소리도 들렸다. 왠지 엄마는 평소보다 좀 더 높은 목소리로, 로빗은 좀 더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것 같았는데 꽤나 피곤했던 터라 바로 다시 잠들었다.

"로빗, 로빗은 언제 쉬고, 언제 자?"

잠결에 엄마와 로빗의 대화 소리를 듣고 난 다음 날, 나의 교복을 입혀주는 로빗에게 물어보았다.

"쉴 필요도, 잘 필요도 없으니까 안 하지. 왜 갑자기 그게 궁금해졌어? 너 6살 때 물어보고는 오랜만에 물어보네?"

맞다. 로빗은 모든 것을 기억하지. 나는 다시 한번 이 사실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아니 그냥. 내가 자는 시간도 늦은데 엄마 말 상대까지 해주면 언제 충전하고 쉬나 해서."

"아, 어제 엄마랑 얘기하는 소리가 들렸구나."

"응. 로빗 바쁘네. 나 챙기랴, 엄마랑 놀으랴."

"뭐, 그게 내 일인데. 다 됐다."

내 교복의 단추를 다 잠그고선 로빗은 내 책가방을 들었다.

"가자."

로빗이 내 책가방을 들고 방을 먼저 나섰다. 나는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려고 안경을 쓴 엄마에게 인사를 하며 집을 나섰다.

"다녀오겠습니다."

로빗은 매일 내 가방을 들고 나를 학교에 데려다 준다. 엄마가 내 키가 더 컸으면 좋겠다며 무거운 가방을 안 들게 했으면 좋겠다고 해서이다. 가방에는 어차피 태블릿이랑 물병이 전부이긴 한데 엄마는 그냥 그것도 안 들게 하고 싶은 것 같다. 어떤 애들은 자기 집 휴머노이드한테 업혀서 등교를 하기도 하고, 휴머노이드가 변신한 킥보드나 자전거를 타고 오기도 하고, 부잣집 애들은 자가드론으로 오기도 한다. 나는 아주 피곤한 날 몇 번 업혀온 적은 있지만 웬만하면 걸어서 오는 편이다. 걸어야 건강하기도 하고, 휴머노이드가 변신한 걸 타고 오는 거면 몰라도 업혀서 오면 다른 애들에게 인기가 좀 떨어지기도 한다. 너무 자기 관리 안 하고, 애 같다나. 나도 비슷하게 느끼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특히, 8시 15분쯤 그 아이와 마주칠 것 같으면 내가 가방까지 매기도 한다. 항상 휴머노이드가 뒤따라오기만 하고, 당당한 걸음걸이로 까만 머릿결을 날리며 들어오는 그 아이. 구릿빛 피부를 자랑하며 딱 봐도 근력이 세 보이는 그 아이는 이상하게 자꾸 눈길이 간다. 자외선이 시대악이 되어버린 지금 까무잡잡하게 태운 피부는 자연스럽기도 하고, 자유로워보이기도 했다. 이제 그 아이가 나타날 때 쯤엔 로빗도 자연스럽게 나에게 가방을 내어준다. 어떨 땐 내 머리 매무새를 가다듬어 주기도 한다. 아직 그 아이에게 말 한번 걸어본 적도 없지만 나는 그 아이를 만날, 아니 마주칠 준비를 이렇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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