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깜깜한 방 안에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조용히 눈물만 뚝뚝 흘렸다. 소리가 나면 로빗이 우는 소리를 감지하고는 바로 방문을 열고 들어올 것이다. 그래서 입술을 꽉 깨물고,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게 숨도 얕게만 쉬면서 눈물만 흘렸다. 눈을 떠봤자 아무것도 안 보이는 이불 속인데도 방금 봤던 그 장면이 너무 끔찍하고 싫어서 눈을 질끈 감았다. 감은 눈 사이로 계속 눈물이 흘렀다. 소리가 안 나게 울려고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는데, 점점 더 화가 솟구치고, 이 상황이 너무 싫은 마음에 결국 끅끅거리는 소리가 나버렸고, 문이 열렸다.
그 아이는 아주 소란스럽지는 않을 정도로는 인기가 있었다. 하얗고, 적당히 근육이 있지만 절대 눈에 띨 정도로 몸의 선이 굵지 않은 사람이 인기인 요즘 구릿빛 피부에 운동을 많이 해서 다부진 그 아이는 보편적인 이상형과는 달라서, 오히려 지금의 세상이 추구하는 정답과 같지 않아서 자꾸 떠오르고, 기억이 나는 아이였다. 새까만 머리에 새까만 눈, 별로 크지 않은 키에 여름 교복을 입을 때면 보이는 팔과 종아리가 '가늘다'보다는 '굵다'에 가까운 아이였다. 살짝 꼬불거리는 머리카락, 오른쪽 귀밑에 보이는 작지 않은 선명한 점, 쌍꺼풀이 없지만 깊은 눈빛, 무릎엔 언젠가 뛰어놀다 다쳤을 법한 조금은 희미해진 흉터도 있었다. 그 모든 게 자연스럽고, 자연스러워서 특별한 아이였다.
그 아이는 대체로 혼자서 학교에 오는 편이었다. 그 아이가 보통 학교에 올 때는 혼자서 오기 때문에 나는 내심 그 아이가 집에 로봇이 없어서 그렇게 혼자 오는 건가 생각을 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집은 AI 휴머노이드를 사거나 구독하기 어려워서 집에서 휴대폰이나 노트북 정도만으로 AI를 활용한다는 뉴스를 들은 적이 있다. 그래도 늘 당찬 에너지를 가진 아이였기에 그런 것쯤은 별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 아이와 마주칠 때면 시선이 빼앗겼고, 내 생각도, 시간도, 마음도 그 아이로 점점 채워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반대항 혼성 농구대회가 열렸다. 여태까지 2주 정도 리그전으로 다른 반들이랑 경기를 치렀고, 나는 몇 번 경기에 참여하기는 했지만 득점은 못 했다. 휴머노이드랑 섞여 있기 때문에 공평하게 하기 위해서 반별로 5명의 선수 중 최대 2명까지만 휴머노이드 선수로 세울 수 있고, 3명 이상은 꼭 인간이 포함되어야 했다. 그 사이에 기술이 발전해서 초등학교 때와는 다르게 인간과 휴머노이드의 구분이 더 어려워져서 우리도 이제 누가 휴머노이드이고 인간인지 구분 짓기도 어렵고, 너무나 당연한 광경이라 아이들은 딱히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그 아이는 그 반에서 운동을 잘해 주전 선수로 자주 뛰는 것 같았고, 나도 그 아이와 경기를 같이 뛰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반과 그 아이 반의 경기가 준결승전으로 열린 날이었다. 학교 체육관에서 나는 관중석에 있고, 그 아이는 코트 위에 서 있었다. 그 아이의 빨간색 유니폼이 까만 머리와 제법 잘 어울렸다. 어깨 정도의 기장이던 머리를 하나로 깔끔하게 묶은 그 아이. 몸을 풀며 주장의 말을 주의 깊게 듣는 깊은 눈동자. 나는 우리 반 아이들을 응원해야 하겠지만 눈은 계속 그 아이를 쳐다보았다. 아이는 같은 반 선수들과 손을 한데 모아 구호를 외치고서는 자신의 포지션으로 살살 뛰어갔다. 심판 선생님이 휘슬이 불고 경기가 시작되었다. 경기장에는 설레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1쿼터에서 그 아이는 별다른 득점을 하지 못했고, 결과는 우리 반의 승리였다. 옆자리 애가 내 몸을 잡고 흔들며 환호성을 질러대는 통에 얼굴이 흔들리고 귀가 먹먹했지만, 그 아이가 물을 마시러 자리로 들어가며 굳은 표정을 하고 있는 게 너무나 선명하게 잘 보였다. 나도 같이 마음이 안 좋아졌지만, 우리 반 아이들 앞에선 그냥 웃으면서 좋은 듯 작은 환호를 어색하게 보였다. 아이는 코치님이 하시는 말씀을 주의 깊게 들으며 물을 마셨다.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듣는 그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신난 우리 반 아이들의 응원가와 응원 구호 속에서 나도 장단을 맞추어 따라하긴 하지만, 내 응원의 모든 방향은 그 아이였다.
2쿼터에서 우리반 점수를 동점으로 따라잡은 그 아이 반은 3쿼터에서 3점을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우리반 아이들은 악에 받쳐 응원을 하고, 그 반 아이들이 점수를 낼 때마다 우리 반 선수들을 향한 것인지, 그 반 선수들을 향한 것인지 모를 야유와 욕설을 뱉어댔다. 한창 호르몬이 들끓을 시기라 그런지 아이들은 생각보다 거셌고, 선생님들도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았다. 그 아이는 3쿼터에서 점수를 3점슛으로만 6점을 내면서 두각을 보였는데, 남학생이나 여학생 할 것 없이 잘한다며, 멋있다며 쑥덕거렸다. 별로 크지도 않은 키인데 멀리서 3점슛을 넣는 그 모습을 오래토록 기억하고 싶었다. 나는 이제야 그 아이의 멋을 알아본 아이들이 가소롭기도 하고, 질투가 나기도 하면서 뿌듯하기도 했다.
4쿼터가 시작되고 우리 반은 죽을 쑤기 시작했다. 이미 뒤엎어진 기세는 되돌릴 수가 없었다. 그 아이와 합이 잘 맞는 남자애가 한 명 있었는데, 그 아이가 패스를 해주면 그 남자애가 골을 넣는 상황이 세 번 연속 펼쳐졌다. 그 남자애는 학교에서 꽤나 인기가 많은 애였다. 키도 크고, 훤칠한 외모에, 집도 엄청난 부자라고 했다. 아빠가 미국 AI 로봇회사의 우리나라 지사장이라던가. 엄청 유명한 로보티스트라고 들었다. 그래서인지 그 아이가 잘하고 있는데도 이전과는 다르게 응원하는 마음보다는 질투가 났다. 왜 저 남자애와 이토록 합이 잘 맞는 걸까. 그 아이가 잘하고 있음에 기분이 좋으면서도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좀 짜증이 나서 발로 괜히 바닥을 긁고 차는 순간 아이들의 함성이 점점 커지는 게 들려왔다. 그 아이가 우리 반 골대 부근에서 공을 잡아 드리블을 해서 파죽지세로 반대편 골까지 가져갔다. 정말 빨라서 나도 그 아이가 하프라인 부근을 지날 때부터야 볼 수 있었다. 내 눈과 입이 동시에 커지며 '와'하는 소리가 나도 모르게 나왔다. 다급하게 우리 반 수비수가 그 아이에게 다가섰고, 그 아이는 멀리서 골을 시도했다. 또 한번 3점슛을 쏘려나 싶어 모두의 시선이 쏠린 그 순간, 그 아이는 우리 반 선수의 몸통을 피해 옆으로 점프를 하며 슛을 시도했는데 우리 반 아이가 바로 뒤따라 뛰면서 둘이 부딪혔다.
찰나였다. 덩치가 큰 우리 반 선수에게 밀려 그 아이가 그대로 바닥에 내동댕이 쳐진 것은. 휘슬이 울리며 경기는 일시 정지되었고, 모두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선생님들이 나왔고, 우리 반 수비수는 미안해 어쩔 줄 몰라하며 옆에 서 있었으며, 아까 그 죽이 잘 맞던 남자아이는 곧장 뛰어가 그 아이가 괜찮은지 살폈다. 그 아이는 잠시간 가만히 있다가 괜찮은 듯 웃으며 툭툭 털고 일어나 보였다. 그 반 아이들은 엄청나게 큰 소리로 환호하기 시작했고, 아이는 고맙다는 듯 손을 흔들어 보였다. 정말 대단했다. 저렇게 큰 아이에게 밀쳐지고도 웃을 수 있는 여유를 보이다니. 그 아이가 웃으며 자유투를 던지러 가는 모습에 괜히 나도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마음 속에 하나의 강한 마음이 솟아올랐다. 오늘은 저 아이에게 꼭 말을 걸고 말 것이다.
경기는 그 아이 반의 승리로 끝났다. 우리 반 아이들은 마지막 그 자유투가 다 성공해서 역전의 기회마저 사라진 것이라며 수비하던 애를 욕받이로 몰아갔다. 수비수를 둘러싸고 애들이 실컷 욕하고, 어떤 아이들은 말리는 틈을 타 나는 그 아이를 찾아 나섰다. 그 반 선수들이 서로 기분 좋게 웃으며 땀을 닦는 구역에도 없었고, 코트는 일찌감치 떠난 뒤였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다 라커룸으로 들어가는 그 아이를 보았다. 우리 반 아이들은 이미 딴 데 정신이 팔려 있었고, 나는 이 때가 기회인 듯 싶어 그 아이를 따라갔다.
라커룸 앞에서 기다릴까 하다가 너무 대놓고 여자 라커룸 앞에 서 있는 것은 오해를 살 수도 있겠다 싶어서 나는 체육관 문 쪽에서 그 아이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왠지 쑥쓰러운 마음에 문 뒤에 숨어서 그 애가 나올 때를 기다리며 고개만 빼꼼 내밀어 보았다. 그 아이가 나오면 뭐라고 말하지? 멋있었다고 할까? 오늘 진짜 고생 많았다고 할까? 아니, 나를 알려나. 내 소개부터 할까? 너무 좋아하는 티가 나려나? 아니 근데 내 친구들은 벌써 여친이 몇 번이고 바꼈는데 나도 좋아하는 사람과 연애 한 번쯤 할 수 있지 않을까? 나 오늘 머리 스타일 괜찮나?
혼자서 머릿 속으로 여러 가지 상상을 하고, 시나리오를 쓰며 꽤 오래 기다린 순간. 딸깍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길래 그 아이이려나 싶어 기대가 되어 문 옆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소리가 난 쪽을 쳐다보니 남자 라커룸에서 아까 그 아이와 합이 잘 맞던 그 남자애가 나왔다. 흥. 조금 나쁜 기분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 남자애는 나와서 수건으로 머리카락을 말리고는 여자 라커룸 앞에서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 라커룸 문이 열리고, 드디어 그 아이가 나왔다. 농구 유니폼에서 사복으로 갈아입고, 머리도 다시 푼 아이였다. 선명한 색의 노란 브이넥 티셔츠와 파란색 짧은 바지가 잘 어울렸다. 남자 아이와는 다르게 머리카락도 언제나처럼 윤기가 흐르고 격한 운동을 하고난 후인데도 얼굴색 하나 변함이 없었다. 나는 머릿속으로 열심히 준비한 말들을 머리에 담고서는 그 아이에게로 발을 내딛었다.
그 순간이었다. 아까 그 남자애가 그 아이에게 다가가 자연스럽게 어깨에 손을 두르고, 그 아이의 머리에 입을 맞추었다. 저 남자애가 저 아이의 남자친구였구나. 나는 서둘러 다시 문 뒤로 숨었다. 너무 부끄러웠다.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면서 남자친구가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니. 저렇게 매력적인 아이에게, 남자친구가 당연히 있을 법도 하지만 그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는게, 그리고 이렇게 문 뒤로 숨어버렸다는 게 다 너무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침이 꼴깍 넘어가고, 손 끝이 차가워지는 게 느껴졌다. 그 아이가 라커룸을 나오기 전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더 심해졌다. 나는 다시 고개를 들어 두 아이가 함께 출구쪽으로 나오는 것을 보았다. 나는 더욱더 문 뒤로 숨었고 제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숨소리조차도 내지 않았다. 둘은 오늘 경기 재밌었다며, 남자아이는 여자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오늘 너무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었다. 여자아이는 기쁜듯 웃으며 남자아이의 어깨에 더욱 기대어 걸었다. 나는 둘의 행복한 모습을 보고 속상했다. 그리고 남의 행복한 모습을 보며 속상해하는 내 모습에 속상했다. 참 볼품 없다고 생각했다. 나 왜 이러고 있지.
아이들이 내 눈에서 조금 멀어졌을 때 나는 무릎을 털며 일어났다.
그래, 중학교 시절에 이런 첫사랑 실패 한 번쯤 있어도 괜찮지.
그 아이들의 등을 쳐다보며 어줍짢은 위로를 스스로에게 보내보았다. 괜히 화풀이 해보려 애꿎은 바닥의 돌을 하나 찾았고, 그 아이들 쪽으로 툭 차려고 목표물을 겨냥해 고개를 든 그 때, 나는 굳어버렸다.
그 남자애만 있고, 그 여자애가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남자애는 스쿠터 위로 올라 타고 있었고, 여자 아이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주변을 살펴 보았지만 여자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어디론가 달려간 건가 싶어 살펴 보아도 사람이 안 보일만 한 장애물이 없는 평지였기에 그 아이가 분명 근처에 있을 것 같았다. 의아하다 싶어 다시 그 남자애를 살펴 보는데 정말 묘한 느낌이 들었다. 그 여자애가 입고 있던 옷 색깔과 같은 색의 스쿠터에 올라탄 그 남자애. 노랗고 파란 그 스쿠터. 노랗고 파란 옷을 입고 있던 그 아이.
그 남자 아이는 스쿠터에 올라 핸들을 잡고는 한껏 만족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가자, 자기야."
자연스럽고 자유로워 보였던 그 아이가 기계가 되어 남자 아이를 싣고 엔진 소리를 내며 달려 나갔다. 가장 인간적인 모습의 내 첫사랑이 가장 기계적인 모습으로 내 곁을 떠나갔다. 노랗고 파란 스쿠터가 되어.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