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나를 가장 잘 아는 것은 로빗이다. 13개월쯤 됐을 때 혼자 걷겠다고 걸어보다가 엄마가 뜨거운 커피잔을 올려 놓은 간이 테이블을 건드려 쏟을 뻔 했을 때, 위험을 감지하고 순식간에 달려와 나를 뒤에서 와락 안아준 것도 로빗이었다. 로빗은 엄마에게 그 장면을 녹화해 보여주어 엄마는 그 이후로 내가 깨어 있을 땐 아이스 커피만 마셨다. 나는 그렇게 로빗과 엄마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유아기를 보냈다.
기나긴 대기 끝에 드디어 5살에 입성하게 된 코딩 유치원에서도 내가 AI 선생님들의 진도를 못 따라갈 때면 옆에서 보충 설명을 해주고, 숙제도 도와주고, 다섯 번도, 열 번도 짜증 한번 내지 않고 설명해준 게 로빗이다. 8살,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처음 하게 된 생일파티에는 친구들이 가장 좋아할만 한 음식과 음료수를 미리 친구집 로봇들에게 데이터를 전송 받아 만들어주고, 어깨 으쓱할 만한 데코레이션의 케이크까지 완성해주었다. 우리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모습으로 10번도 넘게 변신하며 주제곡도 불러주고 춤도 춰줬다. 로빗이 사실 아주 유명한 회사의 모델은 아니었는데, 그날 내 생일파티에 같이 오셨던 친구 엄마들 중 한 분이 로빗을 한 대 주문했다는 이야기는 나중에 전해들었다. 그집 로봇은 변신 불가 모델이었던 걸 알고 있었는데 주문하셨단 얘길 듣고는 우리집 로빗을 보고 꽤나 감명을 받으셨나보다 생각했다.
내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통합 학교이다. 통합 학교는 인간과 AI를 탑재한 휴머노이드가 같이 다니는 학교를 말한다. 엄마 말로는 출산율이 너무 떨어져서 학교들이 죄다 문을 닫거나 합쳐졌는데, 그렇게 해도 한 반에 학생 수가 너무 적었단다. 그래서 그 당시에 가장 컸던 AI 회사의 연구 결과로는 한 반에 적어도 15명은 돼야 인간들이 사회성도 기르고, 사회 질서도 배우고, 인성도 좋아진다고 해서 우리나라에서는 휴머노이드를 교실에 집어넣었다고 한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공립이라서 선생님은 다 인간이고-표현이 좀 이상한가? 하지만 진짜 인간 선생님이니 별다른 표현 방법이 없다- 학생들은 휴머노이드와 섞여 있다. 부자 동네의 사립학교는 어차피 인기가 많아서 15명이 넘지만, 애들이 사회성이 너무 떨어져서 높은 사회성을 지닌 AI를 반 별로 몇 명씩 투입하는데 인간이랑 일부러 구분할 수 없게 밥도 먹고, 화장실도 가는 것처럼 프로그래밍 해두었다고 한다. 심지어 반 별로 한 명은 인간 선생님, 한 명은 AI 선생님으로 두 명씩 들어가는데 AI 선생님이 수업을 하고, 인간 선생님은 보조 선생님 역할만 한다고 한다. 하기사, 인간 선생님은 화도 많이 내고, 아이들마다 수준이 다 다른데 거기에 다 맞춰서 가르치기도 어렵고, 애들이 싸우는 걸 놓칠 때도 있다. AI 선생님은 애들마다 다 다르게 설명해주고, 아이들이 모르는 것마다 다 다르게 문제도 내주고, 화도 안 낸다. 로빗처럼.
그래서 나도 우리 반 선생님도 AI 선생님이었으면 하고 바란 적이 있다. 인간 선생님은 때로 숫자 계산을 틀릴 때도 있고, 3월에는 내 이름을 두 번이나 틀리게 불렀었다. 그리고 AI 학생들이랑 인간 학생들을 대하는 게 너무 차이가 나서 사실 AI 학생들이 교실에 있는 게 진짜 도움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선생님들이 AI 학생들에게는 별로 신경을 안 쓰고, 인간 학생들만 더 많이 설명해주고, 여럿이서 떠들거나 싸워도 인간 학생들만 따로 상담실로 불러서 더 혼내기 때문에 2학년쯤만 돼도 반에서 누가 AI고 인간인지 다 파악이 가능하다. 어떨 땐 크게 웃었다가 어떨 땐 미간을 잔뜩 찌푸리는 선생님. 때로는 가까이 가면 커피를 마셨는지, 아침엔 무엇을 먹고 출근하셨는지도 입냄새로 다 알 수 있는 선생님. 그래서 우리 반 선생님이 AI 선생님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는데, 얼마 안 가 금방 그 생각을 접었다. AI 선생님은 뭐랄까. 좀, 숨을 안 쉬어서 무서울 것 같다. 숨을 쉬어야 살아있는 거 아닌가? 근데 AI 선생님은 숨을 안 쉬니까.
로빗도 그런 면에서 참 좋기도 하지만, 때로는 너무 거리가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학교가 끝나면 교문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로빗. 내가 내 가방과 신발 가방을 로빗에게 넘기고 '준비, 시, 작!'하고 말하면 늘 학교 앞 공원의 정자까지 뛰어가는데 매번 나만 숨을 헐떡거린다. 로빗은 내 가방을 등에 업고, 실내화가방을 손에 들고도 내가 뭐라고 할지 나를 쳐다보며 눈만 깜빡인다. 그럼 나는 한참을 그렇게 숨을 내쉬다가, 땀이 난 손을 티셔츠에 슥슥 닦고는 말하는 것이다. "나 그네 밀어줘."
로빗은 그네를 정말 잘 밀어준다. 엄마는 그네를 밀어줄 때 30번 쯤 밀고 나면 '엄마 허리 아파. 지난 번에 혼자 타는 법 알려줬잖아. 혼자 해 봐.'라고 하는데 로빗은 지치지 않는다. 내가 '더 세게!'라고 외치면 딱 위험하기 전 높이까지만 힘을 줘서 세게 밀어준다. 또 내가 '어지러워, 살살.'이라고 하면 속도를 줄어서 밀어주기도 하고, 나는 일어서서 그네를 탈 줄은 모르는데 나랑 같이 그네 위에 서서 나를 감싸 안고 그네를 타주기도 한다. 나는 구름사다리를 못 넘어가는데 로빗이 한 팔로 나를 밑에서 받쳐서 들어서 건너게 해주기도 하고, 시소를 탈 때도 내 반대편에 앉아 내 엉덩이가 아프지 않을 정도로만 신나게 태워준다. 로빗이랑 노는 건 진짜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