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M(Customized Medicine, 개인 맞춤형 약물)은 생물학뿐만 아니라 인류사에 있어 획기적인 발명이고, 발전이었다. 한국의 신약회사 TMUM(Take Me to the Universe Medicine)에서 개발한 기술로 같은 효과를 내더라도 개인의 질병 정도, 신체와 장기 크기, 유전자 지도, 체질 등을 활용해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최적화된 용량을 3D 프린팅 기술로 만들어주는 기술이었다. 이로 인해 인류 평균 수명이 최소 3년 이상 연장되었고, 단순한 감기, 해열, 항생제 종류부터 성인병, 자가면역질환, 심혈관계 질환, 암까지 각종 질병을 총망라하여 이 기술로 치료제를 개인화하여 사용하게 되었다.
TMUM은 세계에서 가장 각광 받는 기업으로 성장했고, 현재는 기존의 거대 제약회사들도 유사 기술로 CM 시장에 뛰어든 상태였다. 부유층은 각자 자기 집에 이 제약회사에서 제공하는 제약용 3D 프린터를 들여다 놓았고, 많은 약국에서도 이 기계를 들여다 놓아 사람들이 약을 만들어서 집에 가져갈 수 있게 해두었다. 의사와 대면 또는 비대면 진료 후 처방이 있어야 약을 처방 받는 것이 가능했던 이전과는 달리 의사 처방 없이도 TMUM은 의사 AI를 만들어 제약 키오스크에 탑재시켰고, 소비자가 말하고, 환부를 보여주는 등 의사와 하던 면담을 똑같이 기계에 대고 하면 그에 맞는 약을 제조해주었다. 가격은 병원 비용의 70%, 오진율은 15%로 가격도 오진율도 모두 인간 의사보다 낮았다. 수술이 필요한 환자들을 제외한 소비자들은 CM을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의사들은 태업과 휴업으로 거세게 반발했지만 TMUM의 로비는 국회에 먹혀들었고, CM은 거리마다, 부유층의 집집마다 퍼져나갔다.
우리집도 TMUM의 CM 키오스크를 빠르게 설치했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엄마는 잔병치레가 심했다. 그래서 우리집 소파 옆 협탁의 약 상자에는 하얀 알약, 파란 알약, 노란 알약, 물약 등 여러 약들이 즐비했다. 감기약, 진통제, 해열제, 소화제를 양약과 한약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엄마는 먹었다. 그 많은 약 중에 정신과 약도 포함되었단 걸 알게된 건 고등학생이 되어서였다. 소화가 잘 안 되어 구토와 두통이 심하게 왔던 날이었다. 엄마와 아빠는 친척 결혼식에 간 터라 집에는 나 혼자뿐이었고, 구급상자에는 설명서 없이 굴러다니는 색색의 약들이 반짝 거리는 포장재에 들어 한데 엉켜있었다. 급한대로 엄마가 소화가 안 될 때면 먹었던 파랗고 동그란 알약을 하나 꺼내 입에 털어넣었다. 머리가 너무 아파 바로 옆 소파에 앉아 쉬는데 30분 쯤 흘렀을까. 정신이 멍해지고 졸음이 몰려왔다. 아파서 그런가 싶어 깜빡 잠이 들었다. 그렇게 노곤하게 잠이 든 적은 태어나 처음이었다.
다급하게 엄마가 흔드는 바람에 화들짝 놀라 깨어났다.
"너 이거 뭐야? 이거 왜 먹었어?"
엄마는 내가 한 알을 꺼내 튿어져 너덜거리는 약 포장재를 손에 쥐고는 흔들면서 말했다.
"나 체해서 속이 너무 아파서. 엄마가 전에 소화 안 될 때 먹길래."
"엄마가 파란 약은 함부로 먹지 말라고 했잖아!"
"아니, 너무 아파서 그냥 아무거나 집어 먹었지."
"아니 얘가 아무리 급해도! 너 괜찮아?"
"응, 아직 배랑 머리는 아파."
엄마는 아주 다행이라는 듯 가슴을 쓸어내리며 숨을 길게 내쉬었다. 옆에서 인상을 쓰던 아빠도 같이 말이다. 대체 엄마와 아빠가 소화제 하나로 왜 이럴까.
"그거 엄마가 먹는 신경안정제니까 함부로 손 대지마."
"여보! 그걸 왜 얘기해!"
"신경안정제가 뭐 어때서. 요즘 사람들 절반은 그거 먹는 것 같더만."
"그래도 애한테 그걸 뭐하러 말해."
"애한테 계속 숨겨서 뭐해. 그리고 얘도 이제 알 건 알아야지."
"아니 그래도 그걸 왜 내 의사와 상관없이 당신 마음대로 말하냐고!"
엄마가 아빠를 그렇게 노려보는 것은 처음 봤다. 엄마는 한 순간 치부가 드러난 사람처럼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엄마는 신경안정제를 먹는구나. 내가 신경안정제를 먹어서 어떻게 될까봐 걱정이 됐구나. 그리고 아빠가 저렇게 함부로 말해서. 엄마는 오늘도 신경안정제를 먹으려나. 무슨 약인지도 잘 모르지만 꽤나 포장재에 튿어진 구멍이 많은 걸로 봐서는 엄마는 내가 안 보는 곳에서 부지런히도 저 약을 먹었겠구나.
약 상자에서 그 약은 이제 내 눈에 안 보이게 어딘가로 감춰졌지만 나는 그 사건 이후로는 엄마는 잔병치레가 많은 사람이 아니라 심약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엄마는 가능한 한 내가 보지 않는 곳에서 약을 먹으려고 했다. 그 사건 이후 얼마 가지 않아 TMUM이 출시되고 화제가 되지 거의 곧바로 우리집 안방에 키오스크가 들어왔다. 엄마는 기계가 들어오고 나서 조금 덜 아파하는 것 같았고, 그 기계가 들어오고 나서는 소파 옆 약상자는 얼마 안 가 사라졌다.
다만 CM의 거대한 맹점을 사람들은 간과하고 있었다. 부모와 자녀 관계로 인한 부작용 말이다. 어린이들이 소아과에 가서 증상을 부모가 대신 이야기하듯, CM도 부모가 대신 얘기해주는 시스템이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혼자 그 약을 지어 먹을 수가 없었다. 반대로 말하면, 부모가 원하는 대로 약이 제조되었다. 심지어 부모 혼자 아이에 대해 말하면 그 약을 지어주기도 했다. 내가 대학 입학으로 스트레스 받고, 동시에 나를 질투하던 친구와 관계가 틀어지면서 스트레스를 받던 시절, 엄마는 내가 집에 돌아오면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차를 내주셨고 그러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엄마는 차가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면서 꼭 마시라고 말씀하시곤 했는데 정말 유난히 마음이 편안해지고, 밤에 잠도 잘 왔던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차를 마시기 시작한 시점이 CM을 우리집에 들이고 나서였기에 강하게 의심했지만 엄마나 아빠, AI 내니에게 굳이 묻지 않았다. 어떤 답을 들어도 기분이 영 찝찝할 것 같아서였다.
나도 결혼하면서 엄마가 CM 키오스크를 결혼 선물로 사주셨다. 남편도 만족스러워했다. 부작용 없이 약을 먹을 수 있고, 사람 몸에 맞게 약을 제조해 먹을 수 있다는 데서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평소에 별로 쓸 일이 없다가도 갑자기 열이 나거나, 콧물이 나거나, 몸살 기운이 돌면 우리는 바로 약을 제조해 먹었다. 때로는 영양제도 조제해서 가루로 만들어 쉐이크에 타 먹기도 했다.
복병은 임신이었다. 임신을 하고 나서 나는 허리 통증, 골반 통증, 임신성 당뇨와 같은 여러 질병을 달고 살게 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제일 힘들었던 것은 불안한 마음이었다. 내가 이 아이를 잘 기를 수 있을지, 내가 한 생명을 책임질 수 있을지 이런 생각들에 사로잡혀서 심박수가 오르고, 잠을 잘 이루기가 어려웠다. 남편은 이런 나를 걱정하면서도 신경안정제라는 옵션은 극도로 꺼려했다. 본인이 그런 약물을 먹어본 적도 없고, 그의 가족도 먹는 것을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대부분의 측면에서 배려가 많은 사람이었지만 정신과 약과 관련해서는 요즘 사회적으로 중독되거나 잘못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아 겁을 내기도 했고, 임신 중이라 더 겁을 내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남편이 때때로 출근하거나 외출을 할 때면 나는 거부하기 힘든 유혹에 사로잡혔다. 잠을 며칠 째 못 자 컨디션이 말이 아니었으며 이 상태가 오히려 뱃속의 아이에게 더 위험하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기 때문이다. 결국 임신 5개월차에 접어들면서부터는 남편이 외출하면 CM 키오스크로 가서 임신부가 먹어도 안전한 신경안정제와 수면 유도제를 제조해 먹기 시작했다. 제조 이력은 키오스크에서 삭제를 해두어 남편은 알 수 없게 해두었다. 남편에게는 운동도 하고, 임신도 점차 안정적으로 유지되면서 컨디션이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해두어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
아이가 자라는 그 사이, 사회에서 신경안정제가 항생제나 진통제 급으로 아주 흔하게 사용하는 약물이 되었다. 나도 아이가 화를 잘 가라 앉히지 못 하거나, 떼를 쓰면서 길게 울면 처음에는 로빗에게 맡겼었지만, 그걸로도 잘 되지 않을 때 신경안정제를 썼다. 아이가 우는 것을 기다리면서 나까지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불안해져서 나와 아이 모두에게 신경안정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내가 스태시오포비아 세대라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약 한 알로 찾을 수 있는 평안에 도무지 끊어낼 수가 없었다. 남편에게는 계속 비밀로 지키고 싶었다. 괜한 분란을 만들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실수를 하기 마련이던가. 로빗은 남편에게 완벽하게 나의 비밀을 감춰주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초코우유에 약을 탈 때도 남편이 안 보이는 타이밍을 완벽하게 잡아서 탔고, 행여나라도 입밖으로 그 말을 꺼내지 않도록 조심했다. 그러나 내가 어느 날 나와 아이의 약을 제조하고 이력 지우는 것을 깜빡한 날, 남편이 두통으로 머리가 아프다며 CM 키오스크를 썼다가 들켜버리고 말았다. 남편은 나에게 처음으로 불같이 화를 냈다.
"어떻게 지금까지 말도 안 하고 이런 약을 먹을 수가 있어? 아니 먹일 수가 있어?"
"그럼 어떡해. 임신할 때 나 잠도 제대로 못 잤어. 당신이 그런 나를 이해해주기나 했어?"
"당연히 신경썼지. 내가 왜 안써. 약 말고도 할 수 있는 방법이 많았잖아!"
"무슨 방법? 마사지? 목욕? 차? 그게 도움이 됐으면 내가 약을 먹었을까?"
"그래도 좀 나아졌었잖아. 약이 무슨 부작용이 있을 줄 알고 먹어?"
"없었잖아. 그래서 나도 애도 건강하잖아. 무슨 걱정이 그렇게 많아? 당신이 임신을 했어, 출산을 했어?"
"하, 내가 임신을 안 하고, 출산을 안 했다고 그렇게 내 상의도 없이 약을 먹어온 거야?"
"응. 내 몸이고, 내 건강이야. 내가 결정할 일이지."
"당신 몸은 그렇다 쳐. 애는?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애한테 그럴 일은 아니지. 내가 애 아빠야. 나도 결정권 있다고."
"애 그래서 지금 문제 있어? 없잖아. 울다가 약주면 바로 뚝 그치고, 짜증부리다가도 착 가라앉고. 그래서 당신도 여태까지 애 보는 거 순하다고 좋아한 거 아냐?"
"그게 여태껏 약때문이었던 거야?"
"그치, 약 덕분이지."
"너 진짜, 중독됐구나."
"중독? 아냐. 안 먹으려면 안 먹을 수 있지. 다만 안 먹을 이유를 못 찾았을 뿐이지."
"그게 중독이야."
"아니야. CM 키오스크에서 부작용 사례로 보고된 수가 고작 0.01%랬어."
"넌, 사람들이 다 그 약에 의존하고 있어서 부작용으로 보고 안 한다고는 생각 안 해?"
"응 안 해. 그럴 필요가 없지. 내 삶에 너무 큰 도움을 주고 있는 약인데. 심지어 당신보다도."
"뭐라고?"
마지막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나 이미 입 밖으로 나가버린 말이고, AI가 아무리 발달했다 한들 한번 내뱉은 말을 주워담을 수 있는 기능은 없었다. 남편은 분노와 실망이 섞인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이런 싸움이 반복되다 결국 우리는 헤어지게 되었다. 나는 남편을 사랑하지만, 그를 사랑하기에는 참아야 할 것이 너무나 많았다. 남편도 나를 사랑하기에는 눈 감아줘야 할 것이 너무 많았을 것이다.
나는 그를 사랑하지만 떠나보내야 했고, 그가 떠난 날 나는 좀 더 많은 용량의 신경안정제와 수면유도제를 처방 받아 먹고 나서야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