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가 좋아 1
거제에 있는 어머니의 친구분의 댁을 자주 방문하곤 했다. 마침 아들 2명인 어머니 친구분의 집에는 딸 3명인 우리 가족이 제격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런 왕래가 짙은 어머니 친구분과의 교류는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되었다. 초등학생 무렵에도 이모(어머니 친구분)를 뵈었던 기억이 또렷한데 벌써 15년이 훌쩍 흘렀으니 세월이 빠르기만 하다.
마침 시간이 맞아 이모가 지내는 작업실에 놀러 갔었다. 어디를 가든 책 한 권이나 글을 쓸 수 있는 작업물을 가지고 갔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한 권의 책도 꺼내지 못했다. 커피와 차. 그리고 깊이 있는 대화만이 흐를 뿐이었다.
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나와 친분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대화를 하는 걸 즐기는 걸 알 것이다. 통화를 해도 1시간은 기본이고 길면 3-4시간을 하는 투머치 토커인 것도. 이렇게 글을 쓰고 나서도 이야기를 즐기는 사람이라는 것도 말이다.
대화를 하다 보면 어떤 대화를 금방 휘발이 된다. 또 어떤 대화는 오래 동안 기억 저편에 남아있는다. 어릴 때부터 깊이 있는 대화를 사랑했지만 대화가 깊이 있다는 걸 정의하기 어려웠다. 친한 교수님과 의미 없이 나눈 이야기도 어떤 순간에는 깊이를 느꼈다. 하지만 깊이를 추구하려고 했으나 비슷한 또래와의 비판이 가득한 대화에서는 깊이를 찾을 수 없었다.
이모와 함께한 커피 한 잔에서 대화의 깊이를 찾을 수 있었다. 다정하지만 생각이 오래 나는 대화. 그때의 시간이 좋아서 오래 곱씹고 싶은 대화가 깊이 있는 대화구 나를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깨달을 수 있었다. 어쩌면 내가 수없이 나누었던 대화에서 깊이를 찾지 못했던 건 깊이가 글이 아닌 삶에 있다는 걸 몰라서였던 건 아닐까.
여하튼 수많은 미디어에는 끝없이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스스로 막지 못하면 이를 제어하지 못할 지경이다. 그런 사회 속에서 깊이는 찾기가 어렵고 잘 속이면 깊이 있는 척을 하기란 쉽다. 그런 사회 속 책이라는 가치, 클래식의 가치는 폄하되기 쉽고 어쩔 때는 접하기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숭배되기도 쉽다.
연구의 공동 저자인 로저 본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합니다. 우리의 주의는 보다 짧은 간격으로 쪼개지고 있으며, 이것은 아마 더 깊은 사고를 위해서는 좋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연구에 쏟은 엄청난 노력을 우리는 충분히 인정합니다. 연구자들은 크게 지지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아마 더 깊은 사고를 위해서 좋지 않을 것”이라는 말은 어이가 없을 정도로 절제된 발언입니다.
<다시, 책으로> 중에서
놀랍게도 이모와 어머니가 함께 하는 대화에서는 미디어는 부속물에 불과했다. 잠깐의 사진을 보여주는 장치일 뿐이었고 대화는 사람이 주인공이었다. 깊은 사고를 해야겠다는 생각 없이도 '깊게 사고하는 나'를 볼 수 있었다. 짧게 치면서 새로운 일을 반복하고 TV를 보면서 폰으로 인스타그램을 하는 방식의 습관 따위는 우리에게 깊이를 주지 못한다.
집으로 돌아와 이모와의 대화처럼 마음속에 오래 가질 수 있는 대화를 하고 싶어졌다. 예전이라면 그 조건을 하나씩 나열하거나 나의 문제점을 체크 리스트처럼 뽑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장 그렇게 해서 대화에서 깊이를 발견하지 못하는 걸 이젠 안다. 어색하게 하는 행동들은 오히려 삶에 독이 되기도 한다.
다시 돌아보는 정도만.
이 정도만 나에게 주어주고 싶다. 더 크게 바라지 않고 이전에 나누었던 소소하며 웃음이 넘쳤던 대화를 돌아보고자 했다. 또래에 비해서는 어른과의 대화가 잦았고, 내 마음속 깊은 구석에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도 많았다. 힘든 순간에 대화를 통해 누군가를 위로해주기도 했고 위로받기도 했었다.
인생 속 몇 사람의 친구만 있다면 된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내 생각을 더하자면 몇 사람의 친구 말고도 인생에는 더 많은 넓은 개념의 친구가 필요하다. 은사님이라고 부르기 애매하지만 절친한 교수님도 좋고, 어머니의 친구분도 좋다. 그런 가깝지 않으나 나를 애정하는 어른들이 있다면 삶이 더욱 풍부해진다.
참, 인생 속 수없이 많은 나를 애정했던 어른들. 그분들이 있었기에 나의 대화는 더욱 깊어지고 있고 열매가 익어지고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감사함을 따로 전해야지 하며, 올해는 미루지 말고 감사인사를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