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을 잃은 시대
“분명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른다. 하지만 그와 나의 시간은 그 농도가 너무나도 달랐다.”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의 한 대사입니다. 시간은 누구에게 공평하다는 이야기는 귀에 못 막히게 듣는 말입니다. ‘시간은 금이다’와 같은 비유법과 비슷하기도 합니다. 말하고자 하는 건 시간의 흐름이 아닙니다. 시간은 지금도 흐르고 있고, 이 글을 보는 순간에도 1초, 2초씩 흐르고 있죠.
시간의 공평이 아닌 시간의 농도,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바입니다.
농밀한 시간을 쓰기 위해서 먼저 할 수 있는 건 몰입이라고 봅니다. 몰입하지 못한다면 시간에 끌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하는 일과 정신이 합쳐진 경험이 있어야 시간의 밀도가 바뀌게 됩니다. 독서를 좋아하다 보니 ‘온전히’ 몰입하는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홀린 듯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경험을 아는 사람이야 말로 기쁘고 즐거운 일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시간의 농도, 이를 다르게 표현한 건 얼마나 몰입했는지라고 대체해서 말해도 좋을 듯합니다.
몰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지금 시대에 몰입을 경험하는 이를 찾기란 어렵습니다. 중, 고등학생 때와 대학교의 공부가 다른 건 하나에 몰두하는 경험의 빈도에 있다고 봅니다. 한국에서 입시를 경험한 학생이라면 공감을 할 부분인데, 한국은 교육(수능을 위한)은 특출 납니다. 학생들이 더 잘 공부하기 위해 환경을 마련합니다. 폰을 내기도 하고 학원에 들어가 몇 시간 공부하기도 합니다.
이런 환경이 몰입을 이끌어내는 경험을 만든다고 봅니다. 대학에 오니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다니고 있는 대학 특성상 술집도 주변에 없고, 술을 마시는 학생을 자주 보지 않지만 동아리, 공동체, 외부 공모전, 봉사 등 여러 경험으로 공부에 대한 몰입을 떨어뜨릴 요소가 많습니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배움을 이끌어내는 건 좋지만, 모든 걸 얻고 싶어 하나도 얻지 못하는 밀도가 떨어지는 경험도 할 수 있습니다.
대학에 오면서 적었던 목표를 최근에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20살의 패기가 가득 적힌 목표라 웃었지만 그중에서 실천하고 이루어왔던 게 몇 가지 있습니다. 그중 두 가지를 이야기하면, 매년 100권의 다양한 분야 책 읽기 캘리그래피로 재능기부와 강연하기가 있습니다. 365일 중 360일 넘게 책을 읽고, 글을 쓰다 보니 브런치 플랫폼에 글을 쓰게 되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꾸준히 캘리그래피를 하고 몰입했던 덕에 재능기부와 청소년을 가르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초집중>의 저자인 니르 이얄은 책에서 이야기합니다.
다만 요즘은 예전과 달리 수많은 정보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각종 기기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새로운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다 보니 딴짓을 하기가 훨씬 쉬워졌다. 지금처럼 딴짓하기 좋은 시절도 없었다. 그런데 그 대가는 무엇일까? 1871년 심리학자 허버트 A. 사이먼이 정확히 예언했다. “정보의 풍요는 다른 것의 빈곤을 의미한다. 즉 주의력 결핍이다.
초집중, p. 30 집중하기 힘든 시대 중에서
실제로 고등학생 때와 비교했을 때 책 한 권을 읽기가 어렵습니다. 글을 쓰는 기술적인 요소는 늘었지만 혼연일체와 같은 경험을 하기란, 힘듭니다. 10분을 집중하지 못하는 시대에 살아가는 요즘입니다. 수업을 들으면서 카카오톡을 하고, 노트북으로 몰래 쇼핑을 하는 대학생을 보기 쉬운 시대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잘못된 걸까요? 지루하다고 느끼게 하는 교수님의 수업이 잘못된 걸까요. 일어난 결과를 한쪽에 원인으로 돌릴 수 없습니다. 학생들의 집중력이 떨어진 건 지금 당장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Internet making us stupid?> 이를 주제로 영어 에세이를 작성 중에 있습니다. 멍청하다는 말 표현이 심한 거 같지만, 찬성에 한 표를 보내고 싶습니다. 정보의 발달로 얻은 긍정적인 요소가 분명히 있습니다. 인터넷과 기술의 발달로 인해 소외받는 사람들에게 기회가 공평하게 흘러가게 되었습니다. 연예계와 예술계만 해도 그렇습니다. youtube의 발달로 모두가 정보를 제공하고, 인플루언서가 되는 기회를 받게 되었습니다. 브런치를 통해서, 평범한 대학생도 카페 사장도 모두 작가가 되는 기회를 얻을 수도 있죠. 그러나 우리가 잃은 걸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부정적인 부분은 최소한으로 줄이고, 긍정적인 부분을 극대화하는 노력이 없다면 기술에 휩쓸려갑니다. <시간의 농도>라는 제목으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시간의 농도를 결정하는 건 몰입이라고 앞서 이야기했습니다. 인터넷이 몰입을 방해하고 있다는 사실과 다시 돌아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저와 이 글을 읽는 분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돌아보고자 합니다. 모두가 할 일이 있어 노트북, 스마트폰을 켰지만 눈을 뜨니 예상하지 못한 기사를 읽거나 SNS의 웃긴 이야기를 보면서 웃은 적이 있을 겁니다. 폰을 사용하는 이라면 모두가 한 번쯤은 겪는 일이겠죠.
잃은 건 몰입입니다. Here and now, 심리학에서 자주 이야기하는 지금 여기를 잃고 있습니다. 친구와 이야기할 때도 카카오톡을 살피고 알람이 울려 이야기가 끊어집니다. 과제를 하다가 youtube로 재미있는 영상을 보기도 하고, 공부를 하다가 친구와 야식을 먹다 시간을 놓치기도 합니다. 인간적으로 모든 곳에 몰입하기란 어려운 일이겠죠. 그러나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이 있다면 몰입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어야 합니다.
시간의 농도가 짙어지는 건 '시간의 흐름'을 망각할 때 일어납니다. 친구 중에서도 몇 시간 이야기하는 줄 모르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시간의 농도가 짙은 사람이죠. 일도, 공부도 같습니다. 시간의 흐름을 잃는 것 그게 제가 되찾고 싶은 일입니다.
“젊은이는 늙고, 늙은이는 죽어요. 그러니까 내일 산다고 생가하지 말고 오늘 이 순간의 현실을 잡으라는 거죠. 마치 사형수가 하루를 살 때 내일이 없다고 생각할 때 그 하루가 얼마나 농밀하겠어요.”
셀레브, 인터뷰 중에서
죽음을 앞둔 사형수의 하루가 농밀하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데드라인이 있는 과제를 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차이는 큽니다. 시험공부를 해도 한 달 전과 일주일 전이 다른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모든 게 마감이 있지 않습니다. 대표적으로 자기 계발이 이에 해당이 되겠죠. 운동, 독서, 대화는 마감, 데드라인이 없습니다. 그래서 시간의 농도를 결정하는 일은 미루기가 쉽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인터넷으로 인해 우리가 멍청해진다는 영어 에세이를 쓰면서 스스로 '몰입'을 하고 있는 삶을 살아가는지 끊임없이 묻게 됩니다. 몰입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10분을 집중하지 못한다"는 글을 노트북에 쓰고 나서 카카오톡이나 SNS에 왔다 갔다 하는 저를 발견합니다. 2-3시간 통째로 몰입하지 못하고 자투리로 시간을 주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스스로가 안쓰럽습니다.
결단이자 다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학 생활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아직은 감당해야 할 사람 없이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고 공부할 수 있는 날이 얼마 없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싶지 않습니다. 남들은 피곤하게 산다고 할 수 있지만 사형수의 하루처럼 농밀하게 살 아내 보고자 합니다. 다시, 몰입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