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는 불황이 없습니다
어머니와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시대에 대한 통찰을 하나씩 말하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즘 청년들이 안타깝다는 말 아래, 불안이 넘치는 시대에 살아간다는 통찰이 들었습니다. 코로나19 전에도 기술의 발전으로 ‘없어질 직업’에 대해 미디어는 떠들었습니다. 내가 가지고 싶은 직업이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을 더 조장하게 하는 듯합니다.
불안함이란 왜 생기는 걸까요?
불안은 예상치 못하는 일에 대한 초조함으로 발생하기도 하고, 막연하게 불쾌한 정서적 상태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불안 속에는 자신에 대한 불확신도 있지만 시대의 변화에 대한 두려움도 함께 합니다.
코로나 19로 사람들은 ‘앞 당겨진 10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코로나가 없었더라면 10년 뒤에 올 일들이 2-3년 만에 당겨져 왔으니 변화가 컸을 겁니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바뀌는 속도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졌습니다. 온라인과 SNS를 활용하지 못하는 이는 마치 ‘사회 부적응자’가 된 듯한 분위기가 생겼습니다.
불안이 더 높은 건 ‘청년’의 시기를 보내는 이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40-50대에도 불안이 있을 것이고, 10대에도 불안이 있을 테지만 청년이라고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진로’를 선택하고 취업시장에 뛰어들어야 하는 이들이 가지는 불안도가 높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2021년 대졸 청년 취업률이 경제협력 개발기국 (OECD) 국가 37개 국 중 31위에 그칠 정도로 저조했습니다. 이는 독일(88.4%), 일본(87.8%)과 비교해서 75.2%로 낮은 치수를 보여줍니다. 한국 경제 연구원에서는 대졸 청년의 취업이 지연되는 이유 중 하나로 ‘전공과 일자리’의 미스 매치를 꼽았다고 이야기합니다.(2021, 서울경제 ‘대졸 청년 취업률 75%…OECD 31위’)
취업 시장이 저조하다는 이야기는 어제 이야기가 아닙니다. ‘취업시장’이 환호성을 부르는 일은 별로 없었던 거 같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선택하듯 기업에 들어가는 일’은 꿈속에서나 가능한 일처럼 보입니다.
문송합니다라는 말이 유행했을 정도로 직업의 선호와 구하는 일자리가 편협합니다. 그런 취업 시장에 뛰어들어야 하는 수많은 대학생들과 취준생인 ‘청년’의 마음에는 불안이 꽃피우게 됩니다.
글을 퇴고하다 읽게 된 책의 대목이 인상 깊었습니다. 마침 이 글과 유사한 내용이라고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뜻밖에 지점에서 나는 상처받았고, 좌절했고, 화가 났다. "요즘 애들은 도전 정신이 없어"라는 말로 비아냥 거리던 어른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우리는 정말 도전 정신이 없어서 야망이 없어서 열정이 없어서 대기업 취직을 노래하고 철밥통 갖기를 꿈꾸며 살고 있는 걸까?
앞서간 어른들이 부동산 놀이로 선점해 놓은 부는 오로지 그들의 도전 정신과 야망, 그리고 열정의 결과물이었나. 우리 세대를 함부로 평가하는 어른들을 한 명 한 명 찾아가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실은 이 이야기는 제 이야기입니다. 대학 졸업을 최대 1년 반, 최소 1년을 남겨둔 저는 ‘문송합니다’를 해야 하는 사람이죠. 상담심리, 사회복지를 전공하지만 이 분야로 전공을 살려 직업을 가질 마음이 없습니다. 책에 미쳐있는 특이 취향으로 어떤 직업을 선택해도 ‘문송합니다’를 절로 하는 곳을 선택하기 쉽죠.
고민이 많았던 거 같습니다. ‘코딩’이라는 재미도 없어 보이는 길은 잘 닦아진 아스팔트 같아 보였지만, 제가 가고 싶은 곳은 걸림돌이 곳곳에 있는 흙길 같았습니다. 편한 곳을 추구하지 말라고 하지만, 그건 쉬운 선택이 아닙니다. 오히려 어려운 선택입니다.
불황인 곳으로 진로를 선택했다는 건 타오르는 불 속으로 들어가는 일처럼 보입니다. 지금도 진로를 고민하고 있는 중이지만 제가 원하는 길은 매년 불황이라고 소리치는 곳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때 들었던 말이 또렷하게 기억납니다.
그곳이 불황이라고 해서 내 꿈까지 불황은 아니잖아요
그 이야기를 듣고 아차! 했습니다. 19살, 대학을 결정하면서 제가 했던 생각이 떠올랐거든요. 참 무모하지만 멋진 생각을 가졌던 수험생이었던 거 같습니다. 대학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재고 판단하는 우리나라에서 ‘높은 대학’과 ‘낮은 대학’은 존재하는 듯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19살, 고3이라는 이름은 스트레스가 많이 받습니다. 그 당시 제가 가진 생각이 이러했습니다.
“어떤 대학을 가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는 것이다. 대학이 내 이름을 높이는 게 아닌 내 이름이 그 대학을 높일 수 있는 사람이 되자.”
<맨 오브라만차>의 ‘이룰 수 없는 꿈’을 자주 들었던 수험생 다운 발언이죠. 그렇지만 지금도 그 마음은 여전합니다.
“잡을 수 없는 별일지라도 힘껏 팔을 뻗으리라,
이게 나의 가는 길이요. 희망조차 없고 또 멀지라도
멈추지 않고, 돌아보지 않고
오직 나에게 주어진 이 길을 따르리라.”
자기소개서에 이 글을 실으면서 다짐했었습니다. 이상이 높은 사람이 아니라, 높은 이상을 이루는 사람이 되자고 말이죠.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쳐보지 않는 이가 하는 무모한 말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맞죠, 저도 자신까지는 없습니다. 꿈이 있는 자만이 그 꿈을 향해 달려갈 수 있기에 꿈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세상을 밝게 빛나리라,
이 한 몸 찢기고 상해도
마지막 힘을 다할 때까지
저 별을 다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