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에서 때 빼고 광낸 하루
주말에 어디 좋은데 다녀왔어요?
월요일 점심시간 단골 질문이다. 왠일인지 그럴싸한 여행지를 말해야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들기도 한다. 주말마다 여행을 다녀오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굳이 자랑할 게 없다고 느껴지면 대충 에둘러 집에 있었다거나 쉬었다 정도로 마무리 짓곤 했다.
20대엔 주말에 대해서 깊게 생각할 일이 없었다. 하고 싶은 게 많았던 나는 활기찬 거리에서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다보면 어느새 주말이 끝나있었다. 30대가 되고 드는 생각은 하고 싶은 건 많았지만 무언갈 생각하고 실행해내기 위한 시간은 부족했던 것 같다. 집에 붙어 있을 시간이 없었다.
사회생활이란 걸 시작하고 어디론가 떠나는 게 더 피곤한 날들이 많아졌다. 떠나는 짐 가방을 싸다 머리 아파 지치기도 하고, 꽉 막힌 도로에서 지칠때면 “이럴려고 나온 게 아닌데..” 라며 한숨 섞인 주말을 보내기도 했다.
주 5일 매일 지하철을 타는 일상을 보내니 아무것도 정해져있지 않은 주어진 주말이 얼마나 소중한지.
무분별한 약속은 어느새 안하기로 했다. 나만의 시간을 갖으면서 조금씩 에너지를 충전시키는 편이 좋아졌다.
최근 나는 경기도민이 되었는데 신기하게도 주말엔 대중교통은 쳐다도 보지 않는다. 아침만 되면 꽉 끼는 지하철 열차칸에 실려가듯 1시간 30분을 왔다 갔다 한다는 건 정신적으로 많이 지치는 일이었다. 주말이라도 적당한 사람, 적당한 차, 공백있는 삶을 누리고 싶달까..온전히 쉬는 하루하루를 만들기위해 애쓰고 있다.
쉬는 날에 동네에 사는 친언니와 목욕탕에 다녀왔다. 언니와는 서울에 같이 자취했을 때도 가끔 같이 목욕탕에 가곤 했는데 다 큰 성인이 목욕탕에 간다하면 친구들이 할머니 같다고 뭐라했던 기억이 난다. 목욕을 하고 나면 뭐랄까 한 주의 묵은 스트레스를 날려준달까
언니와 갔던 목욕탕은 내부시설이 깨끗했고, 안에서 밖을 볼 수 있도록 통창 설계가 되어있었다. 화창한 날씨여서 그런지 나무와 아파트가 보이는 통창 유리쪽으로 자꾸 시선이 갔다. 목욕탕을 둘러보니 사람들에게 느껴지는 어떤 차분한 여유와 씩씩함이 느껴졌다.
탕에서 창 밖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아주머니, 눈을 감고 곰곰히 탕 온도를 즐기는 아주머니,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시켜서 뜨끈한 탕에서 마시는 아주머니..각자의 방법으로 충전하는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따뜻한 탕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멍해졌다. 어릴 땐 바가지를 뒤집어 냉탕에서 힘껏 발차기도 하고 놀았던 기억이 스쳤다. (지금의 나는 냉탕 같은건 쳐다도 안보지만..)
스르르 탕에 몸을 담구자 평일에 한 껏 올라갔던 내 어깨가 이제야 좀 내려가는 것 같았다. 그동안 찬 바람이 부는 출근 길에 움크린 어깨, 넘쳐대는 사람에 끼여 잔뜩 올라갔던 내 어깨, 나 혼자 눈치보느라 사무실 책상에 앉아 딱딱히 굳어갔던 고장난 어깨가 풀리고 있었다. 어째서 내 몸이 감각이 주말이 되서야 찾게 되는걸까 이게 맞는걸까..
내 몸과 마음을 충전할 수 있는 공간이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었는데 멀리서만 찾았던 건 아닐까..
어디 갔다왔다고 자랑하기엔 어딘가 부족해보이는 것들이 있다. 목욕탕에 다녀오는 것, 글을 쓰는 것, 일기를 쓰는 것, 집을 청소하는 것, 쌓아두었던 분리수거를 한 것, 반찬을 만드는 것들에서 채워지는 확실한 만족감. 이렇게 나를 돌보고 채워가는 기쁨을 계속 쌓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