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매체에서 논란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있다.
“세상이 날 죽이려 한다.”
실제로 그들 중 일부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법이 있고 사람이 가득한 양지에서 사람이 죽는다.
이것은 대중매체의 발달 때문이다.
사람은 너무 많은 사람에게 주목받는 걸 힘들어한다.
그러한 규모의 의심과 비난을 견뎌내는 DNA가 없다.
진화의 역사에 없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던바의 수‘라는 이론이 있다.
인간이 안정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수가 150명 남짓이라는 것이다.
학창 시절의 한 학년은 던바의 수를 충족한다.
그래서 서로 알고 교류할 수 있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면 몇 천 규모로 늘어난다.
그 결과 무리는 작게 쪼개져 서로 남남이 된다.
정상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타인의 수가 DNA에 있는 것이다.
반면 대중매체의 발달은 급격하게 이루어졌다.
인터넷이 나온 지 겨우 반세기가 되었다.
그 사이 대중매체의 기술력과 파급력은 급변했다.
옛날에는 간단한 문자 정보를 직접 만나서 전달해야 했다.
이제는 얼굴, 목소리, 인격 그리고 인생사마저 담아낸다.
인기 아이돌의 뮤비 조회수는 종종 억 단위를 넘어선다.
대중매체는 전혀 다른 개념이 되었다.
대중매체에 적응한 DNA는 없다.
사람은 고작 다섯 명 앞에서 말할 때에도 긴장한다.
주목받는 건 다수에게 평가받는 중요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대중의 인기가 분노로 바뀌는 한 순간이다.
이는 던바의 수로 보았을 때 자연스럽지 않다.
논란의 당사자는 이렇게 표현한다.
“왜 나는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사람인가요.”
대중매체에는 레퍼토리가 있다.
논란이 터지면 당사자는 정글에 놓인다.
카메라 셔터, 조회수, 기사, 댓글은 갈겨진다.
그가 사람이라는 걸 모른 체한다.
양심은 분산되어 기능을 못 한다.
간혹 당사자가 자살하기도 한다.
그럼 가해자를 찾아 나선다.
하지만 범인이 잡혀도 사건은 반복된다.
스스로가 대중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대중을 뛰어넘는 갑은 없다.
반면 사람은 쉽게 상처받는다.
대중이 개인을 상대하는 건 무자비하다.
영원한 대중도 개인도 없는 법이다.
대중으로서의 자비를 가지자.
사람의 피부는 연약하다.
날아오는 돌을 맞으면 쉽게 찢어진다.
무쇠같이 겨눈 카메라, 펜, 말과 시선을 거두자.
거기에는 사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