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을 받아들이는 일, 그건 결국 나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이었다.
그 후, 정신과를 찾았다.
진료 전 검사지를 작성하고 상담을 받았다.
원장님은 말했다.
“확실하진 않지만, ADHD일 수도 있겠네요.”
우울 증세가 조금 안정되면 정밀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그 말을 듣던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가벼워졌다.
“이제 이유를 알겠구나.
내가 잘못된 사람이었던 게 아니라, 단지 내 뇌가 조금 다르게 작동하고 있었던 거야.”
그동안 나는 ‘자주 깜박하고 잊어버리는 사람’, ‘의지가 약한 사람’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제는 이름이 생겼다.
ADHD.
이 단어는 내 혼란을 설명해 주는 첫 번째 언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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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어서 정식 진단을 받고 싶었다.
‘ADHD 약을 먹으면 좋아질 거야.
이제 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이 시작될 거야.’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내 기대가 컸던 탓일까.
진단을 받고 약을 복용한 뒤에도 삶이 특별히 달라지진 않았다.
마음이 조금 차분해지는 느낌은 있었지만 특별한 변화는 없었다.
ADHD라 어쩔 수 없다는 진단까지 받았는데,
남편은 여전히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제는 좀 다를 줄 알았는데…’ 하는 실망이 마음 한켠에 남았다.
나는 진심으로 노력한다고 믿었다.
약을 챙겨 먹고, 일정을 적어두고,
작은 실수도 줄이려 애썼다.
그런데도 남편은 여전히 냉정했고,
그가 점점 나를 미워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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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망이 쌓이던 어느 날, SNS에 글을 올렸다.
“ADHD가 주변 사람에게 무슨 피해를 주느냐,
그냥 눈에 거슬리는 것뿐이지 않나.”
그건 진심이었다.
나는 정말 그렇게 믿고 싶었다.
‘나는 노력하고 있으니까, 게다가 특별히 못하는 게 없으니까, 나쁜 사람이 아니잖아?’
그 말속에는 인정받고 싶은 마음,
그리고 스스로를 지키려는 방어가 함께 있었다.
하지만 댓글은 예상과 달랐다.
수십 개의 메시지가 쏟아졌다.
처음엔 반가웠고, 곧이어 부끄러워졌다.
“작은 실수라도 계속 반복되면,
상대는 숨 쉴 틈이 없어져요.”
“감사하지 않는 태도는, 결국 외로움을 낳아요.”
“ADHD를 알고 약을 먹어도,
‘왜 저 정도밖에 안 하지?’ 싶은 순간은 찾아와요.”
한 문장, 한 문장이 내 안을 찔렀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사소하다’고 넘긴 행동들이
가족에게는 피로와 상처로 쌓여왔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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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는 오래 전의 나를 떠올렸다.
드레스룸에서 원피스 벨트를 보며 울던 그날의 나.
그 벨트는 죽음의 상징이 아니라,
내 감정이 어디까지 밀려나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마지막 신호였다.
그날의 나는 도망치고 싶었지만,
지금의 나는 직면하고 싶었다.
내가 왜 그렇게까지 몰렸는지,
왜 멈출 줄 몰랐는지를 알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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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ADHD는 나를 ‘설명’하는 언어일 뿐,
책임을 덜어주는 핑계는 아니다.
남편의 예민함 탓으로 돌리던 나는,
사실 내 기질을 너무 가볍게 여겼던 사람이다.
그래서 요즘은 감정을 적어둔다.
내 안의 상처받은 아이를 이해하고 안아주기 위해서.
그게 나를 조금씩 지지해 주는 일 같다.
그렇게, 나는 다시 내 삶을 배우는 중이다.
그리고 동시에,
나와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ADHD인 사람의 혼란도,
그 곁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의 고단함도.
우리는 서로 다른 리듬으로 살아가지만,
결국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이해받고 싶다.”
그리고, “함께 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