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속도, 이해의 거리

감정의 속도, 이해의 거리

by Haro adh


ADHD를 공부하면 할수록,

‘나’라는 사람이 점점 낯설어졌다.

내가 살아오며 좋아했던 나의 모습들 —

감정에 솔직하고, 즉흥적이고, 감각적이었던 부분들이

충동형 ADHD의 전형적인 특성이라니.


좋아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는 기묘한 마음이었다.



공부를 계속하다 보니,

ADHD가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하는 건 ‘충동’ 그 자체가 아니었다.

문제는 그 충동이 만들어내는 예측 불가능함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의 즉흥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ADHD의 즉흥성은

상대가 마음의 대비를 할 틈도 없이 이미 일어나 버린다.

그 한순간의 돌발이,

상대의 마음엔 불안의 그림자 한 줄기처럼 남는다.



첫째, 정리와 요약의 어려움.

ADHD를 가진 사람들은 정리하거나 요약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느낀다고 한다.

생각이 한꺼번에 밀려오다 보니,

설명이 길어지고 이야기를 하다 중간에 길을 잃기도 한다.

게다가 ‘지금 말하지 않으면 잊어버릴 것 같고’,

상대가 오해할까 봐 덧붙이다 보면

이야기는 금세 길어지고 복잡해진다.


그런데, 그걸 듣는 사람은 미궁에 빠진다.

결론을 듣기도 전에 이미 맥락을 놓쳐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그냥 결론만 말해. 왜 불필요한 얘기를 그렇게 많이 해?”


나는 오해를 피하려고 더 자세히 말했지만,

결국 그 부연이 새로운 오해를 만들기도 했다.



둘째, 사회적 맥락의 오해.

상대의 표정이나 말의 뉘앙스를 정확히 읽지 못해

상황을 잘못 이해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마음이 걸렸다.

나는 무서웠다.

내가 보고, 느끼고, 중요하다고 여긴 것들이

사실은 잘못된 판단이라면 어쩌지?


“내가 ADHD라서

나의 판단을 의심해야 한다고?”


그 생각이 스치는 순간,

가슴이 조용히 식어갔다.

내가 믿어온 감각과 해석이

모두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그동안 “난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라고 말했지만,

그 말이 결국은 상대에게 닿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진심은 통한다는 말이 있지만,

ADHD 진단을 받은 사람에게는

그 말이 꼭 적용되지 않는 것 같았다.



셋째, 감정 표현의 변화.

기분의 변화가 심하고,

때로는 과장되거나 상황에 맞지 않는 언행을 보이기도 한다고 했다.


나에게는 이 부분이 제일 이해되지 않았다.

‘기분의 변화가 심하다니, 그 기준은 무엇일까?’

‘감정이 과장됐다니, 감정을 느끼는 데에도 정도가 있단 말인가?’


기분이 변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데,

그건 나의 감정이고 내가 느낀 현실인데

왜 그것이 ‘심하다’, ‘과장됐다’는 평가를 받아야 할까.


글로는 알겠는데, 이해되진 않았다.



그러다 어느 글에서 이런 표현을 봤다.

“순간적인 감정 폭발.”


사람이 감정이 상하는 일이 생기면

그 감정이 점점 커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ADHD의 경우는 속도가 달랐다.


자동차의 제로백에 비유하자면,

제로백은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에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뜻한다.

일반적인 사람의 감정 제로백이 4초라면,

ADHD는 2초대 정도?!

순식간에 최고 속도에 도달해 버리는 감정의 가속도.


그 설명을 보고서야 비로소 이해가 됐다.

나는 감정이 점점 커지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커진 상태로 시작하는 사람이었다.


또 하나 이상한 점은,

진짜 큰일 앞에서는 오히려 담담하다는 말이었다.

사람들은 나를 냉정하다거나 초연하다고 했다.

하지만 사실,

‘내가 아무리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이미 마음속에서 내려놓았을 뿐이었다.


이것도 증상일까?

그렇게 생각하니, 감정이 아니라

감정의 속도가 나를 설명하는 또 하나의 언어처럼 느껴졌다.



이제는 조금 알겠다.

ADHD가 사람을 힘들게 하는 건 ‘특성’보다도,

그 특성을 서로 이해하지 못한 채

오해가 켜켜이 쌓여가는 시간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를 기록한다.

나의 언어로, 나의 속도로.

이건 변명도, 다짐도 아니다.

단지 나를 이해하고 싶은 사람의 기록일 뿐이다.

그리고 언젠가,

이 기록이 누군가의 마음에 닿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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